1997_신영복 교수님의 몬드라곤 방문기


1997년 중앙일보에 실렸던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님이 남기신 몬드라곤 방문기를 공유드립니다.

(무려 약 20년 전의 글이네요...)


한참 MCC가 만들어지고 해외 사업을 확장해나가던 시기의 이야기네요.


과연 오늘날의 몬드라곤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원문 출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392461


우리는 우리가 현재 서 있는 곳으로부터. 

그리고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면서 길을 만듭니다.



스페인의 역사는 크로마뇽인이 그린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속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니발. 시저. 나플레옹과 같은 전쟁영웅에서부터 사도 바울. 세네카. 프란시스 베이컨.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그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이슬람과 카돌릭 등 인류사가 보여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사의 출항지(出航地)이며 참혹한 내전이 휩쓸고 간 시련의 땅이기도 합니다. 세계사의 증인(證人)같은 땅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스페인이 모색하는 21세기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특히 몬드라곤 생산자 협동조합(Workkers Coorperation)에 대해서는 그것을 어떤 대안적 의미로 읽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엽서를 받고 느낄 당신의 실망이 마음에 걸립니다. 나 역시 비내리 는 빌바오 공항에서 몬드라곤을 떠나면서 Making Mondragon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그곳에 묻어두고 돌아온다는 것이 무척 서운하였습니다.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신부가 5명의 노동자와 함께 그들의 이름자를 따서 울고 (ULGOR)생산협동조합을 만든 것이 오늘의 몬드라곤의 효시입니다. 폐업한 작은 주물공장에서 석유난로를 만들기 시작한 지 40년. 지금은 무려 3만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협동조합 그룹으로 눈부신 성공을 이룩하였습니다. 

협동은 인류의 원초적 정서이고 공동체는 오랜 삶의 틀입니다. 20세기 역시 다른 세기와 마찬 가지로 그 엄청난 격동의 파고를 헤쳐오면서도 이러한 공동체적 이념이 포기되지 않은 세기였습니다. 인간적인 정서가 파편화되고 공동체적인 삶의 틀이 심하게 상처받을수록 오히려 귀소본능(歸巢本能)과 같은 그리움을 키워내기도 하였습니다. 

유럽 각국에서 광범하게 일어났던 60-70년대의 협동조합 운동이 또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협동조합 운동은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세를 잃게 됩니다. 혹은 이상주의로 말미암아. 혹은 현실의 높은 벽으로 말미암아 결국 실패하거나 변질되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MCC(Mondragon Collective Corporation)가 보여준 성공은 당연히 20세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다. 그것은 경제적 약자인 노동 자들이 자본가나 국가관리자들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정의롭고. 더 인간적인 경제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는 사례로서 이른바 대안(代案)의 맹아(萌芽)를 만들어 내는 운동적 의미로 읽혀졌 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몬드라곤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습니다. 실망의 상당부분은 어쩌면 나의 과도한 기대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초기의 많은 가치들이 포기되었다고는 하지 만 몬드라곤이 지향했던 협동의 가치에 대한 신뢰는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물론 MCC가 헤쳐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무한경쟁의 높은 파도를 모르지 않습니다. 몬드 라곤의 헤수스 이 힌또(J. E. Ginto)이사 역시 민주. 자치. 협동의 원리를 원칙적으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생산과 고용규모. 수출량 등의 통계치를 들어 MCC가 스페인 10대 그룹으로 성장한 사실을 앞세웠으며 교육과 기술투자를 바탕으로한 경쟁력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었습니다.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또다시 스페인의 몬드라곤에서 들었을 때의 착잡한 심정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쟁력이라는 요건은 자본주의의 바다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작은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한 일차적 조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엄습해오는 경쟁의 높은 파고는 가히 사활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이 아닌 경우는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중에서 가장 정곡을 찌르고 있는 답변은 ‘협동조합이 회사가 되는 경우’라는 ICA(국제협동조합연맹)의 명쾌한 답변입니다. 

협동조합과 회사의 차이는 제도면에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 수롭지 않은 차이야말로 결정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은 경쟁과 협동이라는 아득한 거리를 두고 갈라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오냐티의 ETEO(몬드라곤 경영기술대학)에 서 만난 호세 루이스(J. Luis)학장은 바로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비교적 솔직한 견해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효율성에 밀리는 인간적 관점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와 협동조합의 차이는 로봇트와 인간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21세기에는 민족이라는 혈연적 공동체나 국가와 같은 공간적 공동체 대신에 고도신뢰 집단(高度信賴集團)을 핵으로하는 어떤 공동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의 구심력이 되는 신뢰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인간주의에 대한 신뢰를 구심력으로 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경쟁력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대상화되고 인간의 삶이 파편화된 냉혹한 시장(市場)현실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각이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을 재구성하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비록 인간주의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인간관계와 신뢰집단이 밖으로는 편협한 집단이기적 집단으로 경원시되고 안으로는 신앙촌의 헌신성으로 맹목화되지 않을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별 공동체를 넘어서는 연대(連帶)에 대한 전망을 잃지 않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른 공동체를 향하여 변함없이 창문을 열어 두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경제적 약자들이 견딜 수 있는 물심양면의 힘을 모울 수 없을 것이며 무한경쟁의 세계체제속에서 20세기의 수많은 집단들이 보여준 공격 과 방어의 역사를 청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몬드라곤은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미리뫼(龍山)입니다. 몬드라곤이 있는 이곳 바스크지역은 산세와 기후는 물론이며 역사와 민족과 언어에 있어서도 스페인의 보편적 문화와는 구별되는 비스페인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하려는 이유가 납득이 갈 정도였습니다. 몬드라곤의 이러한 역사와 전통의 특수성이 오히려 대안적 의미를 낮추는 요인으로 여겨졌습니다. 

특수한 사례가 보편적 교훈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특수한 전형(典型)을 만들어내는 노력보다는 저마다의 역사와 현실을 이루고 있는 가장 보편적 정서와 가장 현실적인 삶의 틀에서부터 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 적 실천과 그 일상적 실천을 부단히 축적해간다면 전형은 사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가장 친숙한 생산. 소비. 학습. 문화의 틀에서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삶의 틀을 주어진 조건으로 인정하고 그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을 좀 더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어나가는 평범하면서도 꾸준한 노력에 서 시작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카소는 그 개인의 생애가 곧 현대회화의 역사가 될 만큼 언제나 새로운 미학의 선두에 서 있었던 행복한 미술가임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의 명화 게르니카 앞에 서면 그가 말라가의 메르세데츠가에서 키워온 지극히 서민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가가 해변의 눈부신 햇살 그리고 서민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는 메르세데츠 광장과 그 광장의 비둘기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생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이러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서민적 정서가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민적 현실을 뛰어 넘는 이상과 추상의 세계로 비약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찾아 온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가우디의 천재성에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나 가우디의 천재적인 건축물 역시 스페인의 도처에서 만나는 스페인의 보편적인 전통미학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시대의 어떠한 천재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오랜 전통과 서민적 정서로부터 그들의 천재를 길어 올리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넓게 그리고 오래 공감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안은 차별성에 열중할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보편성에 충실해야 옳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피카소가 어린 시절에 햇빛을 나누어 받았던 메르세데츠 광장에 앉아서 다시 몬드라곤을 생각합니다. 

스페인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과거의 중압속에서 몬드라곤의 이상을 개척해간 호세 마리아 신부의 이야기를 상기합니다. 우리는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 그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나아가면서 길을 만드는 실천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마저도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