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2016.04.24_몬드라곤 연수단 - Ep.02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글을 연재하면서 왜 이 연수팀이 기획되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팀이 구성되었는지를 먼저 설명했습니다.


[HBM] 2016 몬드라곤 연수단 - 프롤로그


굳이 글을 연재하기 전에 프롤로그를 정리한 이유는

이러한 특징들이 이번 연수의 색깔을 굉장히 독특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매우 다양한 심지어는 매우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분들이 연수단에 합류했습니다.

그 덕에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서로의 스승이 되어서 상호 학습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현지에서 각자 보고 느끼고 생각한 점도 있지만,

다른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수많은 지식이 새로 창출됐습니다.


이는 현지 체험만으로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지식이였으며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몬드라곤이라는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연수팀은 매일 아침을 대화를 통해서 시작했고,

시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버스에서라도 서로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처음 Check-in을 시작할 때만해도 굉장히 서먹서먹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더욱더 풍성해지고 언제나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


또 하나의 특징은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즈니스 혁신을 위해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MTA를 체험하기 위해서 방문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몬드라곤의 현재 모습을 보기 위해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적 출발점인 호세 마리아 신부와 새로운 경영교육방식을 통해서 몬드라곤의 미래를 그려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짧은 연수를 통해서 그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1주일 내내 연수단은 현재의 몬드라곤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의 출발점은

몬드라곤을 시작하게 만든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발음하기도 힘든 이 이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길기에 연수단에서도 줄여서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일생에 대한 기록들은 이미 국내에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몬드라곤에 대한 기록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6165

http://m.blog.naver.com/workercoop/220502828838


그리고 칼폴라니연구소와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에서는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책을 번역해서 국내에 출간하였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30028.html


그리고 2015년 교황청이 발표한 '가경자' 명단 12명에

호세 마리아 신부의 이름이 포함되었습니다.


'가경자'는 공경이 가능한 분이라는 의미로 성인으로 추대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에 해당되며

시복의 단계를 거치면 '복자'의 반열에 오르고, 이 후 시성의 단계까지 거치게 되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단계가 올라갈수록 매우 엄격한 자격을 요구하며 기나긴 검증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성인이 되려면 순교를 하지 않는 한 2개 이상의 기적을 반드시 행해야합니다.

과연 호세 마리아 신부의 업적이 기적으로까지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


호세 마리아 신부가 생존해 계셨다면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몬드라곤에 대해서 가장 오랜기간 치밀하게 분석한 자료 중 하나를 살펴보면,

Making Mondragon(몬드라곤에서 배우자) - William Whyte & Kathleen Whyte (1991)


호세 마리아 신부는 공식적으로
자기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싫어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제자들과 매일 저녁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고,
중요한 사업적 전략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초창기에는 직접 행동에도 옮겼지만,

'노동과 단결(Trabajo y Unión / 사내소식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 이외에는
몬드라곤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으셨고, 전면에 나서는 일도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각종 행사가 열리고 성인추대를 위한 움직임이 나오는 것을 좋아했을리는 만무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몬드라곤과 협동조합운동가들의 노력이 이해가 갑니다.

몬드라곤이 만들어진지 벌써 60년이 넘었고,
이제는 3세대를 넘어서 4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로의 통합 이후 몬드라곤은 거대 복합체로 다시 태어났고,
글로벌 시대에 지역에 기반한 협동조합의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 몬드라곤 시내도 그렇고 바스크 지역 전반에 노인들이 엄청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은퇴를 한 분들이며 손자손녀를 돌보거나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변화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들이 협동조합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이들을 묶어줄 수 있는 구심점이 반드시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협동조합에 대한 철학은
단순히 교조주의적이지 않고 매우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있기에 몬드라곤의 뿌리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은 돌아가신 이후에도 큰 역할을 해주시고 계신 듯 합니다)

연수단은 바스크 곳곳에서 열리는
100주년 기념 행사들의 생생한 현장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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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수단은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 포럼에
Gsef 공동의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연사로 초청받으면서 처음 기획되었습니다.


빌바오를 방문하시게 된 송경용신부님과 HBM의 송인창 소장은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는 김에 Gsef 관련 미팅과 몬드라곤 연수까지 동시에 기획해버리셨습니다.

Gsef 사무국의 경우에는 포럼 참석 후 미팅만 하고 돌아갈 예정이였는데,
현지에서 추가적인 미팅이 계속해서 생기면서 결국 연수기간 내내 함께하게 됐습니다.


포럼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이 한국의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현하면서 앞으로도 많은 지원을 해주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송신부님 옆에는 President of Mondragon Corporation Mr Javier가 함께하고 있네요.)

뒤늦게 바스크에 도착한 2진의 경우에는 100주년 기념 포럼에는 참석하지 못했는데요.
대신 첫 일정으로 산세바스티안에서 열린 기념 미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12월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 '가경자'가 되신 이후에
과연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 성인의 반열까지 오를 수 있을지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몬드라곤의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면서
프랑코 독재에 맞섰던 독립투사 경력도 있기 때문에
성인으로 추대될 경우 정치, 사회, 종교, 경제 모든 분야에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경우에는 당시 가톨릭 신부들 사이에서도 이단아로 불렸다고 합니다)

2015년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성인으로 추대될 때도
업적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기적이라는 부분에서 논란이 많았고 시간도 오래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업적만 놓고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성인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기념하는 미사에
이탈리아에서 추기경까지 직접 온 것을 보면 바스크 사람들만의 희망사항은 아닌 듯합니다.


이탈리아 추기경 이외에도 수많은 대주교들이 자리를 함께하면서,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를 합심하여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종교계 관계자들 이외에도 수많은 제자들과 가족들도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특히 '울고(ULGOR)'의 창립자 중 1명인 '호세 마리아 오르마에케아'는
100주년 기념 포럼에 이어서 기념 미사에도 참석하며 아직도 정정함을 보여주셨는데요.

다음날 몬드라곤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또 다른 생존자인 '알폰소 고로뇨고이티아'와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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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티안 선한 목자(Buen Pastor) 성당에서의 미사를 마치고,
다음날 저희는 몬드라곤 시내로 이동해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빌바오에서의 기념포럼, 산세바스티안에서의 기념미사에 이어서
3번째 기념행사는 몬드라곤 시내에 신부님의 이름을 딴 광장 개원식이였습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광장을 만든 것은 아니구요.
원래 존재하던 광장인데 그 이름을 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Square라고 명명하고
100주년 기념 명판(commémorative plaque)를 공개하는 행사였습니다.

몬드라곤의 주요인사들이 한 자리에 다 모였습니다.

Maria Ubarretxena, mayoress of Mondragon
Javier Sotil, president of MONDRAGON
Miguel Ángel Laspiur, president of ALE (Arizmendiarrietaren Lagunak Elkartea)

Javier 아저씨는 포럼에 이어서 또 한 번 만나는 것인데요.
그 옆에 앉아있는 Maria의 경우에는 저 분이 시장일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2014 Gsef에도 참석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때만 해도 바스크 정부의 사회적경제 담당관이였다고 하네요.

30대의 미녀 시장이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심지어 연수단의 모든 사람들을 제치고 가장 키도 크네요...


광장 기념식에는 몬드라곤의 첫 번째 협동조합인 울고(ULGOR)의 창립자 중에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2명의 창립 맴버가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Alfonso Gorroñogoitia and Jose Maria Ormaetxea


몬드라곤의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특히 알폰소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노동인민금고와 몬드라곤 전체를 대표해온 경영자이고,
호세 마리아의 경우에는 중요한 시기마다 돌격대장처럼 앞장섰던 해결사입니다.

나머지 맴버들이 생존해 계실 때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주셨는데,
90이 넘은 고령이 되어서도 마지막까지 중요한 자리에 함께해주시네요.

이러한 1세대 경영진과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철학과 존재감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였습니다.

(울고의 5명의 최초 창립자 중 가운데 위치한 2명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하게 행사를 준비한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손님을 많이 초대한 것도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방문한 연수단이 이 행사를 국제적인 행사로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귀하신 분들과 사진은 원없이 찍었네요. 심지어 책에 싸인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행사에 젊은 세대는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올드보이들을 위한 추억을 회상하는 자리로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저희 연수팀은 몬드라곤 젊은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도 젊은이보다는 노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몬드라곤 시내의 모습에서도
과연 몬드라곤의 미래가 어떨지 매우 궁금해진 것입니다.



이들에게 협동조합이 고리타분한 구식의 조직체는 아닌가?
과연 협동조합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저희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소장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오타롤라(Otalora) 내에 있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