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청년협동조합 창업지원사업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함께 2019년 「청년 등 협동조합 창업지원 사업」 에 참여합니다. 
함께할 창업팀을 모집하니 많은 참여 기대할께요.

 

<모집 공고 - 6개 협력기관 컨소시엄>

□ 협력기관 및 분야 목록


□ 모집 일정


□ 사업 설명회(컨소시엄)
 - 일정 : 4월 25일 오후3시~오후5시
 - 장소 : 서울혁신파크 상상청 2층 203호 MTA서울랩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동 통일로 684, 상상청 2층 203호 MTA Seoul Lab.)
 - 내용 : 팀창업 방법 및 각 협력기관 지원 가능 내용

□ 제출 서류
1. 사업참여 신청서
2. 사업계획서 1부.
3. 개인정보 수집·활용 및 제3자 제공동의서 각 1부(개인별).
4. 참가 유의사항 확인서 1부(개인별).
5. 기타 수상·재정지원 증빙자료 일체 1부. 

□ 지원 방법
 - 신청서 및 각종 서류 작성 후 이메일로 접수
 - 이메일 : chatask7@gmail.com

□ 문의
 - 070-5014-0967, chatask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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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공고문 
http://bit.ly/2Zhfnbe
사업설명회 사전신청 
https://forms.gle/PrnzujZbtJtfCyuy9
컨소시엄 참가신청서
http://bit.ly/2UBX2a9
hbm 신청서 
http://bit.ly/2VUUhx2

 

2019년 청년 등 협동조합 창업지원 사업 참여 신청서 양식_HBM.hwp
0.08MB
2019년 청년 등 협동조합 창업지원 사업 창업팀 모집 공고(컨소시엄).hwp
0.04MB

2017.04.23 MTA Shanghai Lab 3rd anniversary

지난 11월 HBM연구소와 인터쿱 아카데미 식구들은 MTA 상하이랩을 방문했습니다.

http://happybridge.tistory.com/160


그리고 지난 4월 다시 한번 MTA상하이랩 - 쿤산 - 타이후를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MTA KOREA를 추진하는 맴버들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동행자도 달랐지만, 이번에는 방문 목적도 많이 달랐습니다.


MTA Shanghai Lab에 대한 방문과 체험 차원을 넘어서,

TEAM mastery과정과 상하이랩 3주년 기념 행사에 함께 참여해 MTA를 깊이 이해하고자 모였습니다.


일단, 함께 하신 맴버들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아쇼카의 미여시(미래를 여는 시간)에서 함께 만난 MTA KOREA팀 뿐만 아니라,

아쇼카 한국 이혜영 대표님과 미래교실네트워크의 정찬필 아쇼카 팰로우도 이번 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


워낙 다양한 경험의 분들이 모여서 첫만남부터 흥미진지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네요.

대안학교 교장선생님, 경영학과 교수, 디자인학과 교수, 협동조합 경영자, 변호사, 대학원생, 취준생 까지...


각자 살아온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일들을 듣기만 했는데 어느새

도착한 첫날 밤이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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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MTA KOREA팀이 향한 곳은 쿤산 몬드라곤 파크입니다.

상하이 시내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몬드라곤의 글로벌 전략에 대한 내용은 지난 포스트에서 이미 다루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http://happybridge.tistory.com/160


이번 방문은 유럽에서 온  team coach들과 동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장방문은 현지화라는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Fagor Arasate를 다시 방문했지만, 새롭게 Copreci라는 기업도 방문해볼 수 있었는데요.

중국인들과 화학적 결합을 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사무실의 곳곳을 중국적인 요소로 가득 채워둔 부분이라든지

현지 중국인들과 바스크인들간의 결혼 등은 매우 흥미로운 접근이였습니다.


단순히 생산공장을 이전한 수준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현지화하려는 노력들이

굉장히 새로웠고 기업공동체에 대한 몬드라곤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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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로 돌아와서 MTA 상하이랩에 들려서는 LEINN친구들과 대화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여기에 와있는지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들은 하나같이 '나 자신을 찾았다'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부터 다시 생각하면서 스스로에 대해서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어쩌면 MTA가 가진 장점이 아닐까?'

분명히 창업교육 프로그램이지만 뭔가 확실히 다르다는 점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늦어버린 시간에 식당을 찾아가는 민폐를 끼쳤지만,

LEINNer들과 팀코치들과의 만남은 즐거움의 연속이였습니다.


핀랜드, 헝가리, 스페인, 독일, 멕시코,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팀코치들은 각자의 스토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팀코치 활동을 시작해 경험을 쌓고 있었고, 이제 공식으로 라이센스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일단, 라이센스부터 받고 나서야 시작하는 한국과는 접근이 굉장히 다르네요)


특히 핀랜드에서 온 친구는 핀랜드에 TA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MTA에 참여하고 있었는데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MTA가 본인에게는 더 맞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궁금해왔던 TA와 MTA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게해주는 순간이였습니다.



유쾌한 만남을 마무리하고 2차까지 가서 우리끼리 시간을 더 가진 후에

다음날 일정을 위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상하이를 떠나서 타이후 대학당으로 들어가야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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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만에 다시 찾은 타이후 대학당은 왠지모를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대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거닐 수 있는 공간들은 누가 봐도 최상의 교육 공간입니다.


평화롭게 건물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설립자 남회근(南懷瑾) 선생님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을 함께 보낸 공간인만큼 그의 사상이 상당히 녹아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에서 MTA KOREA팀도 워크샵을 시작했습니다.



MTA를 처음 경험하는 분들부터 이미 몇 차례 경험한 사람까지 격차는 상당했지만,

호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팀마스터리 코스의 팀코치팀도 있었기에 어떻게 2팀을 핸들링할까도 궁금했는데,

역시 노련한 코치는 달라도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2개팀을 나눠서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그룹토의와 나눔을 반복하는 와중에

 절묘하게 타이밍을 엇갈리게 만들어서 2개팀에서 발생하는 다이나믹스를 완벽하게 핸들링했습니다.


즉흥적인 변화와 반응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재즈연주자처럼

때로는 2개 그룹이 함께 때로는 별도로 워크샵은 2박 3일간 진행됐습니다.



역시나 MTA코치진들은 흥이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도 순간순간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뭘해도 밝고 즐거운 것이 MTA친구들의 기본 밑바탕에 깔려있는 느낌입니다.


프로그램 진행도 자유로웠습니다.

도전과제를 주고 이를 하나씩 정리해나가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나갔고,

중간중간 다양한 공동작업과 액티비티도 섞여서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Birth Giving의 시간은 항상 돌아왔고,

순십간에 완전 집중 모드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평화롭게 즐겁게 웃고 떠들면서 잘먹고 잘잤는데 순십간의 모드전환이었습니다.


하나의 팀으로 MTA KOREA에 대한 퍼포먼스를 준비해야했고,

그 이후에는 2개 조로 나눠서 지난 3일간의 활동을 비주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고 각자 다른 이유로 MTA KOREA에 합류했지만,

공동작업으로 우리가 왜 여기에 왔고 왜 함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공동작업이 익숙하지 않고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게 어색하지만

시키기만 하던 입장에서 학생의 자세로 돌아가 활동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막둥이 수경씨의 맹활약도 잊을 수가 없는데요.

통역 역할을 하기 위해서 섭외되었는데 어느 새 팀의 중심에서 마스코트가 되어버렸네요.


한국에 돌아온 후 취업이 되어서 이제는 직장인 라이프에 합류했는데요.

타이후에서 본인이 그린 그림처럼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밤에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있었는데요.

다음날 있을 상하이랩 3주년 기념행사를 위해서 MIT 피터센지 교수님이 합류하셨습니다.


'Learning Organiza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신 분으로,

시스템 사고(system thinking)과 관련해 최고의 경영학 구루 중에 한 명입니다.


<학습하는 조직(The fifth discipline)>은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영학 베스트셀러 중 하나이며, MTA의 핵심적인 기초 이론을 제공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타이후의 설립자인 남회근(南懷瑾) 선생님과도 친분이 있으셔서

남회근 선생님이 생존하실 때는 매년 타이후에 찾아와 여름을 보내셨다고 하네요.


남회근 선생님과 함께 핀랜드 TA와 몬드라곤을 방문하신 경험도 있으며,

MTA에 타이후 대학당을 소개해준 것도 바로 피터 센지 교수님이라고 합니다.


남다른 인연으로 함께해 온 타이후와 MTA가 상하이랩을 오픈하고

첫 번째 맞이하는 졸업식 행사에 귀빈으로 초대를 받아서 함께해주신 것입니다.


밤이 깊어가면서 타이후의 마지막 저녁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부터,

조용하던 타이후 대학당이 MTA친구들도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상하이랩이 오픈한 이후 처음으로 공식 졸업생을 배출하는 날이기에

유럽에서 온 LEINN 재학생들까지 타이후로 몰려들어서 3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때문입니다.



호세가 블랑코(MINN 1기 졸업생)와 함께 상하이에 와서

처음으로 MINN프로그램을 시작했을 상하이는 기회의 땅보다는 척박한 땅이였다고 합니다.


MTA 뿐만 아니라 social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보니

새로운 창업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MTA 상하이랩이 정착해서 졸업생을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회근 선생님이 설립한 타이후 대학당이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네요.


잃어버린 중국의 전통적인 교육철학을 되살리려는 타이후의 정신과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정신이 녹아있는 MTA라는 창업 교육 방식이 결합해 상하이랩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MTA친구들은 이러한 여정을 엽전모양으로 형상화했습니다.


MTA의 Core value는 가운데 사각형터럼 단단하게 지켜나가지만

엽전의 테두리처럼 중국 현지 상황에 맞게 나머지 부분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접근


이것이 바로, 지난 3년간 MTA상하이랩이 접근한 방식이였습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내에서 씨뿌리는 과정을 거쳐서 MTA가 탄생하게 되었고,

바스크 지역에서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MTA프로그램이 구체화 될 수 있었고,

이것이 중국으로 넘어와서는 점차적으로 한국까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특별히 HBM연구소의 송인창 소장님이

한국인 최초로 몬드라곤대학 석사학위(MINN)를 받게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2015년부터 꾸준히 중국을 왔다갔다하면서 MINN과정에 참여하셨는데요.

밀린 과제를 꾸역꾸역 제출하셔서 결국은 졸업에 성공하셨네요.


풋풋한 졸업식 현장에는 MTA KOREA팀도 초대받아서 합류했는데요.


HBM연구소의 송인창 소장님이 한국인 최초로 몬드라곤대학 석사학위(MINN)를 받는 현장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MTA가 이제는 상하이를 넘어서 서울에 진출하겠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선언하는 자리도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온 수많은 LEINNer들과 팀코치들과 함께한 졸업식은

다양한 순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딱딱한 분위기의 한국 대학의 졸업식과는 사뭇다르게

편안한 진행과 자연스러운 순서들이 참가자들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저희들의 상하이 방문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8명과

먼저 한국에 돌아간 3명까지 총 11명의 방문단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소득은 함께하는 시간들을 통해서 서로간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다른 이유로 이번 여행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MTA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맞춰보고 MTA KOREA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원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점도 확인했지만,

그래도 왜 이 프로젝트를 하는지에 대해서만큼은 합의를 이끌어낸 시간이였습니다.


또한, 상하이랩의 형성과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막연히 호세라는 인물이 Kun이라는 현지 파트너와 맨땅에 헤딩하듯이 개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2010년부터 LEINN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꾸준이 상하이를 방문해왔었고,

여기에는 타이후 대학당이라는 spiritual partner가 존재해왔다는 것도 알게됐습니다.


이미 1990년대 부터 중국에 진출한 몬드라곤의 현지 기업들도 든든한 배경이 되었고,

2010년부터 결합한 타이후 대학당은 오히려 MTA 자체의 사상적 기반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MTA에서 지속적으로 말해온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것도

피터센지와 남회근 선생님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던 주제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비즈니스적으로 본격적인 진출을 한 것은 2014년이지만

4년간의 시간을 통해서 사상적인 결합을 해 온것이 중국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리잡은 원동력이였습니다.


아직도 경제 발전 중심이며 시민의식이 지극히 자본 중심인 상하이에서

이러한 기초 작업이 없었다면 단순한 창업교육프로그램 중 하나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호세라는 뛰어난 인물의 노력과 헌신도 있었지만

이러한 배경들이 바탕을 이루어주지 못했다면 거대한 자본의 논리에 사로잡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포인트는 한국에서 MTA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었습니다.


중국에 비하면 시민의식이 훨씬 성숙했고 사회적 분위기도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밑으로 내려가면 남회근 선생처럼 깊숙히 뿌리내린 사상적 기초는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협동조합의 경험도 없고 사상적인 기반도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 역시 너무 기술적으로 MTA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우려가 생겼습니다.


그냥 '창업교육'으로 받아들이면 되지라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팀으로 함께한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스스로 변화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이를 이끌어 낸다는 것 자체가

말로만 해서는 절대 될 수 없으며 끝임없는 수련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만 할까요?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밝게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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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e


MTA KOREA팀이 상하이를 방문한 바로 그 다음주

경남과기대 학생들의 MTA 상하이랩을 방문하였습니다.


4월 초 사전 워크샵을 위해서 진주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학교에서 지원을 해줌에도 상하이방문을 거부한 친구들도 몇명 있었습니다.


교수님들도 상하이 방문을 통해 딱히 뭔가를 새롭게 얻기보다는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자 하는 측면도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사전워크샵에서 친구들은 생각보다 더 적극적이였고 MTA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교수님들이 기대한 것보다 더 좋은 경험을 하고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를 했었는데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뀌게 됐다는 친구들까지 있었고

LEINN INTERNATIONAL에 입학하겠다는 친구도 등장했습니다.


어떻게 겨우 2박3일 워크샵으로 생각이 그렇게 바뀔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이 친구들에게 말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상하이라는 낯선 땅에서, 20대 외국인 코치들과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워크샵을 했는데,

오히려 더 뛰어난 한국의 교수님들과 함께할 때보다 훨씬 자기 더 능력을 발휘하게 됐다는 점에서

기존 교육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볼 수 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리고 MTA가 여기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해주는 듯하네요.


MTA가 가지는 가능성과 한국 사회에 주는 메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왜 MTA가 필요한지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7.06.26-30 ILO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Academy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었던 ILO SSE Academy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SSE(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Academy는

사회연대경제(SSE) 개념을 대안적이고 보완적인 개발 패러다임으로 제안하고자

 사회연대경제(SSE) 이해시키고 전파하며 주류화하고 전 세계적인 공동체를 구축하고자 진행됩니다.


전 세계의 실천가들을 모아서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좋은 사례를 발굴해서 공유하며,

사회연대경제(SSE)의 권위자들을 만날 수 있는 지역 간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2010년 이탈리아 투린에서 처음 열린 이후로 6차례 더 개최가 되었구요.


캐나다 몬트리올 Montreal, Canada (2011)
모로코 아가디르 Agadir, Morocco (2013)
브라질 캄피나스 Campinas, Brazil (2014)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Johannesburg, South Africa (2015)
멕시코 푸에블라 Puebla, Mexico (2015)

코스타리카 산호세 San José, Costa Rica (2016)


8번째 차례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Seoul)에서 진행되었고

9회 행사는 2017년 9월 룩셈부르크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사회연대경제(SSE)와 관련해서 ILO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내용은

좋은 일자리(Decent Work)와 미래의 일자리(The future of Work)입니다.


'좋은 일자리'라는 표현이 굉장히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ILO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산적이며, 정당한 소득과 일터에서의 안전을 제공하고, 가족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주며, 개인의 개발과 사회 통합, 사람들의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에 참여하고 조직할 수 있는 자유, 모든 여성과 남성의 기회와 대우에 대한 평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자리의 기회를 포괄한다.”


사회연대경제(SSE)는 '좋은 일자리' 아젠다에 대해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최근 UN에서도 TF를 조직해서 SSE에 대한 인식 제고에 나셨습니다.


사회연대경제(SSE)는 협동조합, 상조 조직, 협회, 재단, 비영리, 사회적 기업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경제적 목적과 사회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연대를 이루어 상품이나 서비스, 지식을 생산하는 모든 조직을 포괄합니다.


US에 발표한 SDG에서는 8번째 항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연대경제에 대해 ILO에서는 올해 보고서를 만들었네요.

https://drive.google.com/open?id=0B4hK77sxP-XKVEZweW1NVHVySFU


한국을 포함해 벌써 7개국에 대한 사례보고서를 발간했다고 하니 찾아보세요.

www.sseacb.net


한국에서는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라는 표현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요.


Solidarity라는 표현이 빠지면서 더 많은 주체가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체성이 좀 더 모호해진다는 단점은 분명히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암튼 이번 행사는 Gsef와 ITC(ILO산하의 교육기관)가 주관하고 ILO와 서울시에서 후원하였고,

서울대 아시아 연구소,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 서울혁신파크, 사회적기업 진흥원 등이 함께해주었습니다.


총 25개국에서 80여명의 외국인이 참석했고, 한국인도 8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한국인 신청자는 140명이 넘었는데, 마지막까지 함께 한 사람은 30명도 안됐던 것같네요...)


외국인 참가자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아시아에서 오신 분들이고,

유럽과 캐나다, 아프리카, 브라질에서도 일부 참여하셨습니다.


한국인 참가자들의 경우에는 이 분야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오신분들이 많았고,

특히 마지막까지 참가하신 분들은 비영리 조직쪽에서 많이 오셨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행사인 만큼 논의된 수준이 깊이있지는 않았는데요

행사의 성격이 컨퍼런스보다는 교육이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있다보니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했던 방식은 Fishball 입니다.

국내에도 이미 오래 전에 소개되었지만 현장에서는 잘 사용하지 못하는 방식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가운데 원을 만들고 점점 밖으로 확산되는 원을 만들어 앉게 됩니다.

그리고, 안쪽에 있는 의자는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나와서 앉을 수 있도록 비워둡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가운데에 나와서 빈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의자가 다 채워지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할 말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비워줍니다.


그렇게 되면 아래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습니다.


 

메인 세션에서는 첫 날 한 차례 사용되었지만,

세부 세션에서도 지속적으로 활용된 집단 논의 방식입니다.


에너지가 일방향적으로 쏠리게 되는 앞에 발제자가 일렬로 앉는 형태에 비해서는

확실히 더 말하기도 편안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가운데 있는 사람 외에는 상대의 얼굴을 보기 힘듭니다.


적극적으로 원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집중도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특정인만 계속 이야기하는 기존의 토론 문화에서는 오히려 비효율적인 접근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현장방문 뿐만 아니라, 월드카페, 차트 순환 같은 방법도 상황에 따라 활용했습니다.

포멀한 국제행사에만 참여하다보니 이러한 모습들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


진행 방식뿐만 아니라 주로 다룬 아젠다 역시 관심을 끌었습니다.


Innovative Ecosystem

Social Finance

Legal framework

Fair Trade

SDG's

South-South and Triangular Cooperation

Social Innovation

Youth


ILO에서 진행하는 SSE Academy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였습니다.

또한, 아시아에서 열린 행사이다보니 지역적 특수성도 많이 반영된 듯 보였습니다.


가장 주안점을 둔 이슈는 법률 및 정책, 그리고 사회적 금융이였고 참가자들도 해당 세션에 몰렸습니다.


반면에 공정무역과 남남/삼각 협력에 대한 인기도

상대적으로 꽤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만 해도 남남협력의 대상이 아니기에 상대적으로 많이 듣지 못한 아젠다인데,

브라질 - 아프리카 - 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맥락에서 굉장히 화두가 된 아젠다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시아 쪽 해외참가자들의 경우에는

ILO장학금을 받아서 처음으로 이러한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수혜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북반구의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연대라는 방식으로 스스로 풀어보고 싶어하는 모습들이 참 감명 깊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또한, 이 번 행사를 통해서 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빈곤국가에서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한국은

사회연대경제라는 영역에서도 급격한 확산으로 인해서 아시아의 롤모델이 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례들이 차례로 소개될 때마다 아시아 국가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고,

정부주도의 Top-down방식이 문제도 많지만 기본적인 물리적 토대를 만드는데는 성공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뭔가 마중물이 있어야 샘이 솟아나오듯 맨땅에 헤딩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부 주도의 Top-down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정부의 역할이고 얼마나 시민들이 자생력을 가지고 주도할 수 있을까?


매우 걱정되는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다이나믹 코리아의 역량을 믿고 싶습니다.

안될 것 같았던 정권도 평화롭게 바꿔낸 시민들이기에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할 듯합니다.


+


이번 SSE Academy에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는 2가지 주제로 참여했습니다.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에 대한 현장방문과 MTA(몬드라곤팀아카데미) 워크샵이였습니다.


도쿄스테이크(남산타워점)에서 점심을 먹고 해피브릿지 본사(장한평)에서 진행된 현장방문에는

20여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동행했는데요.




해피브릿지의 협동조합 전환 스토리에 대해서 뜨거운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에는 잘 알려졌다고 생각했는데 한국분들이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해주셨구요.


아직 협동조합의 개념이 부족한 동남아시아국가들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였습니다.

또한, ILO관계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사례로 향후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다음 날 그룹 토론을 통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뽑아봤는데요.


왜 협동조합을 하는지에 대한 미션이 뚜렷해보였다.

초창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환을 진행한 강력한 리더십이 돋보인다.

전환 이후에도 경영성과가 계속해서 상승한 측면이 인상적이다.

제품이 좋지 않으면 어려울텐데 제품 관리를 꾸준히 해오고 있어보인다.

가맹점주와의 상생관계를 만들어나고 있다는 점이 훌륭하다.


관점에 따라서는 약간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동안에 해피브릿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몬드라곤팀아카데미에 대한 소개는 4번째날 오후 Youth 세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원래는 3번째날 오후에 소개되었어야 하지만 다른 Youth 발표자들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으로

어쩔 수 없이 4번째날 워크샵 시간을 30분 정도 줄이고 MTA에 대한 소개를 진행했습니다.



JON은 역시나 MTA스타일 대로 2시간의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체크인을 1시간하고, 나머지 1시간 동안 Birth Giving을 진행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꾿꾿하게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빼먹지 않았으며,

결국은 Birth Giving을 통해서 뭔가 의미있는 결과물을 뽑아내는 놀라움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참 이러한 애매한 상황에서도 원활하게 잘 진행하는 것을 보면,

이 친구들이 MTA에서 트레이닝 받은 시간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틀이 없는 듯하지만, 현장에서 즉석적으로 반응하는 순발력과 적응력으로

어떠한 상황도 대처해내는 능력이 바로 MTA가 가진 경쟁력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애니웨이 서로 삭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기애애하고 훈훈하게 마무리된 듯하여,

MTA의 방법론이 가지는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 듯합니다.



+


4일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고 이제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다들 숨겨둔 끼를 밝휘하면서 놀라운 저녁 만찬까지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였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숙소로 돌아가서도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꽃을 함께 피웠다고 합니다.


마지막 날의 화두는 측정지표개발에 대한 이슈였습니다.


코스타리카의 케이스에서도 측정 지표가 이슈가 되었는데,

마지막 한국인들끼리만 모이게 된 자리에서도 측정 지표 개발은 핫 이슈였습니다.


다들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문제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한 부분입니다.


과연 기존의 단기 성과 위주의 지표를 넘어서는 지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러한 주제들을 향후 도전과제로 남긴 체 아쉽게도 아카데미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과제들은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을 더욱더 기대해봅니다.




2017.01.17 제1회 해피브릿지 협동조합 경영포럼


지난 1월 17일 해피브릿지 본사에서는 제1회 경영포럼이 열렸습니다.


왠지 경영포럼이라고 하면 으리으리한 호텔이나 컨퍼런스홀에서

수 천명의 사람이 멋진 정장을 입고 앉아있으면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이 앞에 나와서 강연하는 모습을 연상하실텐데요.


해피브릿지의 경영포럼은 그런 화려한 행사보다는

해피브릿지의 경영이슈를 중심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조촐한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럼의 주제도 이사회에서 정했고 기조발제도 해피브릿지 배현주 이사가 진행했습니다.

지정토론자도 외부에서 초청한 전문가 외에 평조합원 대표로 한성림 조합원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포럼의 목적 자체가 

'우리의 고민과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자' 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피브릿지 조합원과 직원들끼리만 이야기하면 집단사고에 갇힐 수 있기에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 외부의 전문가를 초청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첫 번째 외부 초대 손님은

한국협동조합연구소 강민수 부소장님과 

성공회대 일반대학원 협동조합경영학과 박상선 교수님이였습니다.



첫 번째 포럼의 주제는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와 분배"였습니다.


약간은 폭넓은 주제였지만,

조합원들이 가장 관심이 많고 이사회에서도 가장 고민이 되는 주제였습니다.


역시나 관심있는 주제였기에 2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였지만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고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첫 모임이다보니 진행 상의 미흡한 점도 많이 나타났지만,

첫 모임이기에 그동안 공론화되지 못했던 다양한 이슈가 한 번에 터져나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합원 간의 견해 차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볼 수 있었고,

외부의 전문가와 함께함으로써 논의가 정리되고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전체 조합원이 함께 하지 못하고 선배그룹들 위주로 논의가 흘러갔다는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이러한 점들을 보완해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면 더욱더 효과적인 공론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자리였습니다.


또한,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와 분배라는 이슈에 대해서 이렇게 다양한 주제로 다루어질지는 예상도 못했습니다.


출자금에 대한 내용, 그리고 보상과 배당의 이슈, 비분할 적립금까지 논의는 확산되었고

결국 '조합원은 왜 참여하는가?' 또는 '노협으로써 해피브릿지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까지 논의가 확산되었습니다.




물론, 2시간이 넘는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아쉽게도 딱부러지는 결론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해피브릿지에서 논의가 되야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끄집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행사를 주체한 HBM연구소에서는

여기서 논의된 이슈들이 해피브릿지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협동조합이라면 어디서나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주제였으며,

해피브릿지가 고민한 내용들이 앞으로 늘어날 협동조합들의 고민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올 한 해 HBM연구소와 해피브릿지는 지속적으로 경영포럼을 열기로 했습니다.


해피브릿지의 고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내용을 다른 협동조합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리해서 공유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 포럼은 시범적으로 운영되었기에 내부 보고서 형태로만 정리 되었지만,

두 번째 포럼부터는 좀 더 세밀하게 준비해 외부에도 공유될 수 있도록 연구보고서 형태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해피브릿지의 필요에 의해서 조촐하게 시작되었지만

아마도 2017년 HBM연구소에서 도전하는 가장 큰 프로젝트 중에 하나가 될 듯합니다.


앞으로 진행될 내용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5 파고르(Fagor)

해피쿱투어와 함께하는 몬드라곤 연수단의 마지막 행선지는

Fagor industiral 이였습니다.



몬드라곤 인근지역을 방문하면서 신기하게 느꼈던 점은


대부분의 회사들이 넓게 퍼져있다보니 굉장히 한적한 곳에 덩그러니 위치한 경우가 많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건물들이 굉장히 세련되고 멋지게 지어졌다는 점입니다.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해 약간은 올드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Ikerlan밖에 없었는데,

오랫만에 그나마 제조업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물을 만나서 한편으로는 반가웠습니다.


+


파고르 그룹이 가지는 몬드라곤 내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이미 Ep.05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HBM] 2016.04.26_몬드라곤 연수단 - Ep.05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


몬드라곤 최초의 협동조합그룹 Ularco는 대표 브랜드 파고르의 이름을 따서 파고르 그룹이 되었고,

몬드라곤 최초의 노동자협동조합 ULGOR는 그룹의 이름을 따라서 파고르 가전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몬드라곤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파고르 가전이 2013년 파산을 맞이하게 되며 큰 화제가 됩니다.


파고르 가전(Fagor Electrodomésticos) 파산에 대한 이전 글 보기



그후로 3년이 지난 지금 파고르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고르 가전'의 주요 해외 브랜드는

알제리계 가전회사 Cevital과 독일계 가전회사 BSH Hausgeräte에 각각 인수되었으며, 

파고르 가전 본사는 2014년 7월 카탈루니아 지역의 회사 Cata가 전격 인수합니다.


그리고 파고르 그룹은 전격 해체되고 산업별 그룹으로 헤쳐모이게 됩니다.


B2B전문 주방용 가전제품 기업으로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던 Fagor Industrial은 

산업용 가전 제품 기업들이 한데 모여서 새롭게 만든 Onnera Group에 합류에 대표 협동조합이 됩니다.


+


Fagor industrial에서 저희를 맞아주신 Gema Mancebo는

파고르 가전 인사팀에서 13년간 근무를 하다가, 파고르 가전이 파산하면서 파고르 인더스트리얼로 재배치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원들을 재배치를 할때는 업무의 유사성과 기존 근무지와의 거리를 중요시 하는데,

파고르 가전의 경우에는 워낙 규모가 큰 사건이였고 재배치 대상만 2000명에 달했기 때문에 자신은 운이 굉장히 좋았다고 하네요.


파고르 인더스트리얼에 대한 대략적인 브리핑을 들은 후

역시 연수단원들의 질문은 파고르 가전 파산 사건에 맞춰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파고르 가전의 파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때부터 직견되었으니 파산까지 5년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공장이 가동이 안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조합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간만 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자체 해결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파산이 결정된 후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선 900명은 몬드라곤 그룹 내 개별 협동조합에 임시 재배치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900명의 사람들은 임시로 재배치될 곳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몬드라곤 본부가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본부의 역할은 거기까지였고 결국은 남겨진 자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만 했습니다.


실직된 조합원들은 '오스갈리아츠' 협동조합(인력파견업체)을 만들어서

스스로 인력의 재배치에 대한 내용을 해결해나갑니다.


몬드라곤 그룹의 공장에서 성수기에 맞춰 빈 자리를 매꾸는 일을 하기도 하고

일반 사기업이나 파고르 가전을 인수한 기업에 배치되기도 하고, 일부 인원은 명예퇴직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파고르 가전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 충격이 켰고 몬드라곤 도시 전체가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협동조합 방식의 혁신적인 시도를 하기보다는

각자 흩어져서 생존을 준비하기 바빴고, 기술자들은 별도 A/S전문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고르 가전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누적된 배당금은 파산과 함께 모조리 날아가버렸기에,

라군아로에서 80%의 임금을 지원해주는 2년 동안 각자의 살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재배치가 된 인원의 경우에는 라군아로에서 재배치 받은 회사에 6만 유로를 지원해 주게되며,

이 중 15,000유로는 개인 계좌에 출자금으로 지급해주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비용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임시 재배치된 인원에 대한 채용 여부는 재배치된 협동조합에서 결정하게 되는데,

너무 급하게 재배치했기 때문에 일부 인원들은 직무와 거리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 채용이 안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공장 노동자가 갑자기 마케팅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


파고르 가전의 파산은 몬드라곤 전체에 큰 경각심을 줬다고 합니다.


가장 역사가 깊고 규모도 컸던 파고르 가전이 파산을 하면서

그 어떤 협동조합도 충분히 파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것입니다.


그동안 파고르 가전의 경우에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화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기본 출자금 이상으로 추가 출자를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많게는 10만 유로까지 투자를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또한,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2세대 자녀들이 능력이 없어도

부모들의 인맥과 출자금을 이어받아 파고르에 입사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산 과정에서도 파고르가 설마 망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시간만 질질끌다가 일을 더 키운 점도 큰 문제였습니다.


본부 차원에서도 이미 예견된 사고였으나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사전에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경영진들의 경우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업무 능력이 생산직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재배치된 경우도 나타났습니다.


모든 주요 의사결정은 총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영진만을 탓할 수 없다는 점과

결국은 본부가 도와주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점을 크게 배웠다고 합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원리와 원칙이지만 막상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이 것대로 진행된다는 것들을 조합원 당사자들이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길거리를 헤매야만 하는 상황

오히려 큰 책임이 있는 것같은 경영진들이 오히려 현장직들보다 더 빨리 좋은 자리에 배치받는 상황

언제 어디로 재배치 될지도 모르고 한없이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

내가 넣은 출자금이지만 그것이 날아갔을 경우에 느끼는 억울함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됐을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한,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주지 않으면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해가야한다는 것


협동조합도 만능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였습니다.

천하의 몬드라곤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협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주인이 된다는 것이며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려울 때 기댈 곳이 있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요?


몬드라곤의 파고르 전자는 이러한 새로운 피난처를 찾던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이 절대적인 피난처가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협동조합은 기존 주식회사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은 나 자신이 되야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


스스로에 대한 주인의식과 자발성이 없을 때

협동조합이라는 시스템도 온전한 방어막이 되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


이제 몬드라곤에서의 현장연수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연수에 참여한 모든 분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삶을 사실 것입니다.


연수팀에는 협동조합 종사자도 있고, 그냥 관심이 있어서 참여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내용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몬드라곤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게 될까요?

이러한 이야기들을 After 모임에서 이야기하면서 연수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3 이켈란(Ikerlan)

몬드라곤은 250개의 조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복합체입니다

그리고 중간지원조직들은 그룹화가 진행되기 전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금융 분야의 Laboral Kuxta(1959)

사회복지 분야의 Lagun-Aro(1959)

교육 분야의 Mondragon Universitatea(1943)


그리고 이들과 함께 R&D 분야의 성장을 책임져왔던 곳이 바로 Ikerlan(1974)입니다.



이켈란은 1965년 마뉴엘 케베도를 비롯해 설립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기술전문학교에서 학교의 교과과정을 강화시키기 위해 공업기술 연구의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시작됩니다.


지속적인 프로젝트와 연구활동으로 케베도와 동료 교사 2명은

학교 교육 업무까지 면제받으면서 이 일에 전담했으며, 휴가를 내고 프랑스에 6개월간 연수도 다녀옵니다.


케베도는 자신이 번돈을 학교에 기부하면서까지 자동화 연구실 설립을 추진했고,

1974년 호세 마리아 신부는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업기술 연구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합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몬드라곤의 외부의 과학기술과 자본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해야한다고 보았고,

케베도를 연구소장으로 임명하면서 몬드라곤의 R&D를 주도할 공업기술연구협동조합이 시작됩니다.


 

  


연수단을 맞아주신 분은 마케팅담당자 Guillermo Irazoki입니다.

올해 60세로 곧 명예퇴직을 할 예정이기에 자신의 후임자를 데리고 함께 연수단을 맞이해주셨습니다.


몬드라곤대학 경영학부를 막 졸업한 23살의 젊은 후임자는

협동조합 가치에 공감해서 졸업 후 이켈란의 입사를 선택했다고 당돌하게 대답을 하네요.


앞에서 이야기해왔던 것처럼 몬드라곤에서 명예퇴직은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65세(정년)가 되기 전까지 일을 하지 않아도 연금의 80% 수준을 받을 수 있기에 일종의 특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명예 퇴직 후 수익을 걱정해야하기에, 일종의 사형선고로 여기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


Guillermo Irazoki은 차분히 이켈란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기업은 지식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고, 이켈란은 기업과 인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연구를 할때는 대학과 함께 진행하기도 하고 연구자료를 방탕으로 기업에 결과를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켈란은 설립초기부터 단순히 몬드라곤 그룹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았으며,

바스크 지역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해왔고 1982년부터는 지방정부가 이켈란 예산의 절반을 부담합니다.


나머지 예산의 약 38%는 연구 프로젝트 계약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12%는 몬드라곤 그룹의 지원조직들의 회비로 충당하는 비영리 2차 협동조합입니다.

(현재는 정부 지원 비중이 약 30% 나머지는 프로젝트 계약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234명(조합원 200명)이 근무 중이며 90개(50%는 몬드라곤 그룹사)의 고객이 존재하며

1780만 유로(한화 23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스크 지역의 다른 연구소들과 함께 IK4라는 연구 연합(research alliance)를 형성하고 있는데,

IK4 네트워크 기준으로는 1275명의 연구진이 1억 2백만유로(약 1349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4개 지역에 나눠서 운영되고 있으며, 320개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서 거의 30분 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확실히 다양한 분야에 최첨단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나,

공학도가 아닌 연수단원들에게는 너무 전문적분야라서 '아~ 열심히 연구하는구나' 정도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이 시작됐는데요.

이번에도 주식회사와의 차이를 발견하고 싶은 질문이 이어졌고, 여전히 FM에 가까운 대답들이 돌아왔습니다.


몬드라곤 그룹을 지원해주는 중간지원조직으로 시작되었지만,

역시나 몬드라곤은 몬드라곤이고 이켈란은 이켈란이라는 관점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급여 테이블의 경우에는 몬드라곤 전체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연구원이라는 고급 인력에 대한 처우가 다른 연구소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최저 임금에 대한 기준은 다른 연구소들보다 훨씬 높게 책정됐지만,

최고 임금에 대한 기준은 다른 연구소들보다 훨씬 낮게 책정됩니다.


이에 대해 우수 인재 확보 차원에서 문제가 있지 않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같이 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대답만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존재했습니다.


그동안은 스페인 자체에 박사 학위자가 많지 않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켈란 내에도 박사 학위자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만 박사들만 연구소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변화의 여지는 있었습니다.


몬드라곤 그룹 내에서도 급여의 격차가 4.5에서 6으로 확장됐던 것처럼,

시장 환경의 변화는 인재 확보 차원에서 이켈란에게 새로운 기준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기존의 원칙을 쉽게 바꾸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뀌는 환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혁신의 시작입니다.


과연 이켈란은 이러한 변화들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기존의 원칙을 잘 유지하면서도 기술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2 울마(ULMA)그룹과 인터코퍼레이션(intercooperation)

몬드라곤을 상징할 수 있는 핵심 운영 전략 중 하나는

'협동조합 간 협동'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intercooperation 입니다.


'협동조합간 협동'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부적인 단결성과 정체성이 강한 협동조합일수록

다른 협동조합과 연대라는 것이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경제적 이해관계만 맞다면 쉽게 이루어지지만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마음에 맞는 협동조합을 찾는 것도 어렵고 또 만나서 연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마음이 맞는다고 아무렇게나 연대할 수도 없기에 어떻게 연대할지 한참을 논의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60년이 넘는 역사 가운데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라는 조직을 만들어냈습니다.


103개의 협동조합들이 모여있으며 이들은 각자 알아서 서로 연대를 합니다.

공동의 규칙은 당연히 존재하며 프로젝트 별로는 각기 따른 원칙을 세워서 연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연대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은 무엇인지

오나테(Oñate) 지역을 대표하는 울마 그룹을 방문해 그 사례를 들어보았습니다.



울마(ULMA)는 2003년 몬드라곤 그룹에 뒤늦게 합류한 협동조합 그룹입니다.


하지만, 1961년 울마 그룹의 최초 협동조합인 Talleres ULMA S.C.I. 가 설립될 때부터

호세 마리아 신부와의 수 차례의 미팅을 통해서 ULGOR에서의 경험을 전수받습니다.


이후, 1986년 오나테(Oñate) 지역의 협동조합들과 함께

ONALAN이라 이름으로 뭉치게 되고 1992년부터 현재의 ULMA라는 그룹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오랜기간 동안 몬드라곤과 함께 해온 대표적인 협동조합 그룹 입니다.)


울마는 50년이 넘는 기간동안 오나테(Oñate)라는 강한 지역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룹 내의 8개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산업적으로 이어지는 분야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다.


울마의 직원 4,353명 중 2,010명이 오나테(Oñate) 지역에 근무하고 있는데,

오나테(Oñate) 지역의 주민이 11,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지역 주민 1/5이 울마에서 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가능인구의 절반 정도는 울마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중 1,800명 정도가 조합원입니다)


매출은 약 7억유로(한화 약 9000억) 정도 수준이고,

해외 매출의 비중(74%)이 점차 높아지면서 유럽 시장(53%)에 대한 의존도 역시 줄어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전략이 없었다면 몬드라곤 협동조합들이 오늘날 같이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듯 하네요)


울마그룹의 경우에는 다양한 산업분야의 협동조합들이 지역적으로 뭉쳐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으며, 내부적으로 많은 것을 서로 조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대가 진행됐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정체성과 애정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의 미션은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다음 세대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희를 맞이해주신 Javier Orbea는 울마 그룹의 Financial Director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곳 중에서 가장 프로패셔널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주셨고,

친절하게 맛있는 아메리카노와 쿠키는 물론 UNESCO 기부에 동참하자는 카드까지 선물로 준비해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스페인 커피는 쓴데, 외국인을 위한 배려한 센스가 빛나네요)


Javier Orbea의 경우에는 일반 주식회사에서 10년, 그리고 은행권에서 6년 정도 근무를 했었는데,

협동조합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서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ULMA에 합류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이 있으셔서 그런지 다른 몬드라곤 사람들과는 다르게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연수단의 접근에 가장 잘 공감해주셨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원래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걸 왜 물어보지라는 반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포인트를 잘 집어서 친절하게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센스도 발휘해주셨습니다.


+


먼저 그룹 본부와 개별 협동조합의 운영방식에 대한 부분을 설명해주셨는데요.


그룹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금융만 공동으로 관리하지 나머지 사업은 작자 알아서 합니다.

그룹 내에 해당 품목의 사업을 하는 곳이 있어도, 그룹 계열사라고 일감을 몰아주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그룹 내 계열사와 함께 일을 할지 말지는 각자 계열사들이 결정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렇게 비즈니스와 연대라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울마의 성공요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수익성이 있는 부분과 연대를 해야하는 부분은 명확히 구분해 사업을 하지만,

실제 사업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는 함께 나누는 방식을 취합니다.


부실한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의 물건을 그냥 사주는 것이 아니라

사업은 사업대로 경쟁력에 맞춰서 진행하고 손실이 난 부분에 조건 없이 보존해줍니다.


+


그렇다면 울마 그룹의 수익 배분 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단, 8개의 협동조합들은 수익이 날 경우 30%를 때서 그룹 공동 기금에 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아진 기금(Profit sharing)으로 손실이 난 협동조합에 대해서

손실 금액의 50%까지 일단 보존해줍니다.


예를 들면, 막대한 손실이 난 D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손실액의 절반을 그룹 공동 펀드로 우선 보존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손실액을 매꾸기 위해서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조합원들 스스로 임금을 삭감하고, 삭감분으로 성장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때 2차적으로 그룹차원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지원을 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공동 펀드로 모았던 기금이 남게되면,

이는 다시 개별 협동조합들에게 총 인건비에 비례해서 재배분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D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부담해야하는 손실이 20% 수준으로 줄게 됩니다.


나머지 협동조합들이 그만큼 수익을 포기하고 손실을 보존해준 것입니다.

사업적으로는 실력이 없으면 도와주지 않지만 실적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존을 해줍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것같으면서도 확실한 연대 정신이 기반에 깔려 있습니다.


+


울마 그룹 내의 연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급여연대기금(Wage Solidarity Fund)라는 것을 추가로 운영합니다.


각 협동조합은 수익의 3%를 급여연대기금으로 내야합니다.


그 이유는 그룹의 현재 급여 수준보다 낮게 받는 협동조합의 급여를 보존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면, 특정 협동조합의 급여 수준이 전체 급여 수준보다 낮을 경우에는

급여연대기금을 통해서 일정 수준 보존을 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동등하게 보존해주지는 않습니다.

실적이 좋은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107% 수준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처럼 모두가 똑같이 받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 간의 일정 정도 격차를 줄여준다는 개념이 훨씬 더 강한 것입니다.


여기에 매출의 0.08%는 '신사업개발기금'으로 내야만 합니다.


이 경우에는 손실이 있는 협동조합도 부담해야하는데 신사업을 위한 투자는

손실의 유무와는 별도로 모두가 부담해야하는 의무라는 개념이 강한 것이지요.

(확실히 몬드라곤 사람들은 사업과 연대는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울마그룹 내의 정산이 끝난 이후에는 몬드라곤 그룹 차원에서 다시 정산이 들어갑니다.


1) 몬드라곤 그룹 내의 모든 협동조합은 수익의 10%를 공동투자기금으로 내야합니다.

2) 또한, 그룹 차원의 연대기금(Solidarty Fund)으로 수익의 2%를 추가로 징수하며,

3) 마지막으로, 교육기금(Education Fund)로 수익의 2%를 추가로 징수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그룹차원에서 수익의 14%를 징수하고 난 후,


나머지 추가 수익에 대해서는 10%는 자체 교육에 투자하게 되며,

45%는 협동조합 자체로 적립하고, 나머지 45%는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해줍니다.

(배당금은 대부분 순환출자의 형태로 협동조합에 재투자되며, 시중보다 월등히 높은 이율이 보장됩니다)


사실 이 정도까지 듣고 있으면 과연 수익 중에 뭐가 남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일단 이익 공유(Profit sharing)과정에서 상당한 수익이 감소할 수 밖에 없고,

나머지 추가적으로 내야하는 기금을 다 합치면 수익의 약 20% 정도를 공동 기금으로 내야 합니다.

(물론 몬드라곤 공통 기준 이외에 자체 그룹 내 규정은 협동조합 그룹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손실이 난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3중의 안전망이 존재합니다.


이익 공유(Profit sharing)를 통해서 손실이 보존되고,

급여연대기금(Wage Solidarity Fund)을 통해서 조합원들의 급여가 보존됩니다.

마지막으로 몬드라곤 그룹차원의 연대기금(Solidarty Fund)을 통해서 위기 시 보존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존을 받은 기금들은 갖아야할 부채가 아니기에 사업적 부담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손실로 인해서 특정 협동조합이 망하게 되고 실업자가 양상되는 것은 막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구책을 가지고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도 남겨두게 해줍니다.

이는 개별 협동조합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럴 경우 도덕적 헤이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도와주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지만 비즈니스는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자구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고 회생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협동조합이라도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역사에서 증명해주었습니다.


2000명의 조합원이 근무하고 있는 파고르 가전 부분이 2013년 파산을 할 때

아무리 상징성이 큰 몬드라곤 최초의 협동조합일지라도 회생 가능성이 없자 과감히 파산을 결정합니다.

(파고르 가전의 파산에 대해서는 파고르 방문 후기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아무래도 재무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자금과 관련된 부분으로 흘렀는데요.


몬드라곤 내에서는 자금적인 부분 이외에도

중간지원기관들을 통해서 일자리와 인력에 대해서도 연대를 진행중이고, 

각종 사업적인 정보와 기술도 공유하면서 공동의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서 새로운 협동조합이 설립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한국의 재벌그룹처럼 내부적으로 연대를 하기는 하지만,

그 연대하는 기준과 방식에서는 굉장히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그룹 본부의 인원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울마 그룹은 40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며 매출이 9000억원에 달하지만,

그룹 본부 직원은 10명에 불과하며 그룹차원의 금융, 인사, 브랜드 관리 업무만 지원해줍니다.


모든 전략적 의사결정은 개별 협동조합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며,

그룹 본부에서는 그야말로 조율만 해주고 그룹 차원의 안건은 협동조합들의 대표가 모여서 의결합니다.


특정인의 이해관계와 의사결정으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한국과는 달리

몬드라곤에서는 전형적인 Bottom-up의 의사결정과 전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업은 철저히 구분하고 수익은 연대한다는 기본 철학이 기반에 깔려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경영학에서도 최근에 항상 이야기하는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인데,

현실에서는 그게 그대로 구현되는 것을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교과서적인 요소들이 실제 구현되는 몬드라곤에서 와서

우리는 과연 그게 맞냐고 계속해서 물어보고 다닌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왜 그렇게 안하는데?'라는 그들의 질문에

우리는 궁색한 변명들만 계속해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Intercooperation


하면 좋은데 우리는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그것이 몬드라곤에서는 너무나 당연시 되는 일상이었습니다.


[HBM] 2016.04.28_몬드라곤 연수단 - Ep.11 쿠페라 (Koopera)와 한국의 자활기업

바스크 지역에는 굉장히 많은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협동조합이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일원은 아니죠.


오늘은 특별히 몬드라곤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참고할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협동조합을 방문했습니다.



쿠페라는 1992년 카톨릭 기반의 국제적인 NGO인 카리타스가

몬드라곤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협동의 모델을 만들고자 설립한 2차협동조합입니다.


카리타스는 1897년 독일 카리타스의 설립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긴급구호와 국제 개발을 위한 비영리 기구로

개별적으로 활동하다가 국제적 연대체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165개국에 퍼져있습니다.


카리타스의 경우에는 한국의 협동조합 운동과도 인연이 매우 깊습니다.


1972년 강원지역 집중호우 발생하였고,

당시 피해지역의 대부분은 원주 교구 관할이였습니다.


원주 교구의 지학순 주교는 전 세계 카톨릭 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독일의 카리타스와 미네레올이 지원해준 3억 6천만원은 구호활동의 핵심 자금이 됩니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1973년)'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구호활동이 시작되었고,

원주 지역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원주 지역 시민운동의 핵심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때 합류한 맴버들이 사실상 오늘날의 한살림을 만든 주역들이 됩니다.

 

이후 1975년 지학순 주교를 초대 총장으로 인성회(仁成會)가 만들어지고,

국제 카리타스의 정회원으로 등록되었으며, 현재는 한국 카리타스 정식 법인(2010)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협동조합 운동에 역사적 사건을 함께했던 카리타스가

스페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쿠페라(Koopera)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와 환경의 혁신으로 크게 5가지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영역은

사회적 소외계층에게 취업을 알선해주는 자활이라는 부분입니다.


재활용 시장을 기반으로하는 자활기관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시면 이해하시기 쉬울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도 자활단체는 많고, 아름다운 가게처럼 재활용시장도 존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묶일 때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는

우리가 예상하던 것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에도 자활센터는 많이 존재하고, 재활용 사업도 따로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자활센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일반 사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카리타스에서 쿠페라를 만든 것은 협동조합이 가진 가능성 때문이였습니다.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을 운영할 경우 가질 수 있는 규모의 경제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협력이라는 가치를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쿠페라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소외계층입니다.

홈리스, 마약/술 중독자, 매춘부, 미혼모, 해체 가정 자녀, 가출 청소년 등


이들에게는 일자리도 필요하고 일할 수 있는 스킬도 배워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함께 일하고 협력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쿠페라에 조합원으로 남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일자리가 있지 않기에,

다른 조직에 가거나 활동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일만 잘하는 노동자를 양성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방식과 정신이 필요했고, 현재는 사업적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작은 기관들이 생겨나서

2006년 오늘날의 형태인 2차 협동조합이 만들어졌고,

2013년 에는 발렌시아에 동일한 모델이 만들어졌으며,

칠레와 루마니아에서도 관련된 프로젝트가 진행중입니다.


현재 10개의 자활센터가 지역별로 만들어져서 운영되고 있으며,

9개가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제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매장은 총 31개가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자활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숫자가 약 2400명 정도되는데,

쿠페라에 고용된 사람이 433명이니까 전체 자활 고용의 15%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5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고 있고,

매출이 1억4800만 유료(약 196억)이고 수익률은 약 2% 정도 된다고 합니다.


수치 상으로만 보면 사실 한국에 비해서는 크게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은 약 550개의 자활기관에 5만 명 정도가 현재 고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복지와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한국의 자활은 전체 규모면에서 스페인을 압도합니다.


또한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2015년 기준)의 경우에는

매출액 242억 / 직원수 406명 / 자원봉사자 4000명으로 쿠페라와 규모가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매장 숫자는 아름다운가게가 149개로 쿠페라 31개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편입니다.

설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공장 내부 시설을 구경하고 빌바오 시내에 있는 쿠페라 매장에 가보니

비즈니스적으로는 아름다운 가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가게가 주로

임대료가 낮은 주요 상권에서 살짝 벗어난 곳 작은 규모로 위치해있다면,


쿠페라는 일반 패션 브랜드와 별 차이 없이 시내 한복판 아주 넓은 공간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하고

너무나 다양한 물품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옷의 상태들도 굉장히 깨끗해서 중고 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 비결은 90% 이상의 제품들이 이미 깨끗히 세탁이 된 상태에서 수령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버려야하는 옷들을 주로 기증하는 것과는 관점이 다르기에 가능한 일 입니다)


핵심 기술에 대한 유출과 자활 근무자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작업장 내부에서 사진을 못찍게 했지만 물류 시스템도 상당히 수준이 높아보였습니다.


사회운동차원이 강한 한국의 사회적기업이나 자활단체들과는 조금은 다름이 느껴졌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는 바스크인들의 마인드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참여자수와 사업 규모만으로는 아주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재활용사업에 대한 물류 시스템이나 운영 노하우 등에서는 굉장한 전문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쿠페라(Koopera)의 방문은 연수단에게 2가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수치적으로는 한국의 자활관련 기업들이 훨씬 더 활성화되어있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보면 쿠페라 정도의 수준에 올라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자활관련 종사자가 2400명 밖에 안되는 스페인이지만,

50000명이나 되는 한국에 쿠페라 정도 수준의 자활기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장 성공한 사회적기업이라는 '아름다운가게'의 경우에는

수치상으로는 쿠페라와 비슷한 규모이지만 단위 매장의 경쟁력에서는 훨씬 부족해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름다운 가게'의 경우에는 자활기업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자활기업이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가질 때 가져오는 효과입니다.


한국의 자활기업들은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그자체에만 주목하지만,

쿠페라의 경우에는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사회구성원이 되는 훈련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단순 일자리 창출을 넘어서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때

일반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 가서도 사회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협동조합을 단순히 운영체제로만 본 것이 아니라 교육방식으로도 본 것입니다.

이는 협동조합에 대해서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학습의 장'으로 그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한국의 자활기업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줍니다.


자활기업이나 복지기관에서 가끔씩 터져나오는 인권의 문제 역시

협동조합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드시 해결되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들인 듯합니다.


물론 현장에 계신분들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고, 당연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쿠페라가 보여주고 있기에 고려해볼만 합니다.

(그게 설사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겠죠.)



[HBM] 2016.04.26_몬드라곤 연수단 - Ep.07 LKS(구 노동인민금고 기업국)와 사이올란(Saiolan)


1991년 설립된 LKS (Lan kide sustaketa)는 국내에는 약간 생소한 기관입니다.


'란 키테 슈스타케타'라는 이름부터가 약간 생소한데요. 

바스크어를 우리식으로 해석해보면 '노동, 조합원, 개발'의 약자라고 볼 수 있겠네요.


Lan = work 

kide = friend and member

sustaketa = promotion or development


하지만, '노동인민금고의 기업국'이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분들이 몬드라곤에 대한 책이나 강연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노동인민금고(Caja Laboral)가 처음 설립된 1959년부터 자금을 담당하는 은행국과 함께

오늘날의 몬드라곤이라는 거대한 복합체를 만드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


Caja Laboral 내의 기업국은 과거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들을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서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예비창업자들이 은행을 방문하면 제조업진흥부에서는 그들 가운데 대표역할을 하는 좋은 매니저를 선출하고,

가능성있는 상품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 이들과 계약을 체결하는데, 상품 아이디어가 없을 경우에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예비창업자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하는 '대부(padrino)'가 붙게되고 사무실과 매니저에 대한 보수가 지원됩니다.

대부는 창업과정 전반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함께 검토를 하며, 기업국 내 다양한 부서에서는 기술적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매니저에 대한 보수는 통상적으로 18~24개월까지 지급되며, 지원형태는 이자납부가 연기된 대출의 형식을 취합니다.

이 기간동안 매니저는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하며, 기업국은 이 내용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실시합니다.


상품에 대한 정보, 기업에 대한 정보, 회사 전체의 경제적 가능성에 대한 정보로 구성된 3권을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며,

최종보고서가 완성되면 caja Laboral 내 은행국으로 넘어가서 사업 진행에 대한 심사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절차를 무사히 마친 경우에는 대부분 최종 지원이 거절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최종 지원 결정을 얻은 회사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창립 자금을 모으게 됩니다.

(전체 자본의 20%는 출자금, 정부 지원금으로 20%, 나머지 금액은 노동인민금고의 대출로 충당)


초기 창업 이후 안정적인 회사 운영을 위해서 초기 창업 비용 대부분은 원칙적으로 7년 이후에 상황이 시작되며,

창업 이후 2년 동안은 대출에 대한 이자납부는 물론 자본화된 초기 비용의 감가상각도 하지 않고, 3~4년간은 시중보다 낮은 이자율을 적용해주었습니다.


< 그림출처 : 티스토리 블로거 - 아침에 일어나 일할 곳을 정한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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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국은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1980년대 전체적인 불황이 시작되면서 기업국은 어려움에 빠진 협동조합들의 경영에 개입해 도움을 주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필요에 따라서 산발적으로 개입이 진행되었으나,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1983년에는 위험단계를 3단계로 구분해 우선순위와 대응 방안을 제도화시키게 됩니다.


기업국은 각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계약을 통해서 개입 절차를 진행하였으며,

계약 내용에서는 사업체 운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기업 관리자들과 이사진에게 있고, 회생 절차 역시 그들이 책임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대상 기업의 경영진에게는 '무죄추정 원칙'이 적용되어

기존 경영진이 추진하려는 기업 회생에 대한 노력을 존중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하지만 기존 경영진들의 문제가 명백히 들어날 경우에는 경영진 교체가 일어나게 되며,

총체적 부실로 인해서 기업의 회생이 불가능할 경우 폐쇄조치를 단행하고 조합원들의 재배치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업국의 위기에 대한 대응과 방어는 상당수 협동조합들의 재생의 원동력이 되어주었으며,

다양한 지원정책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caja Laboral은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은행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지만, 재정과 기업 관리 기능을 하나의 조직에서 동시에 맞는 부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기업국의 분리 운영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도 더 유리하기 때문에 기업국의 분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됩니다.


처음 설립될 때부터 기업국은 노동인민금고 내에서도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왔으며,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GCM)이 출범하게 되면서 중앙서비스를 제공할 조직이 필요한 시점이였습니다.


이에 LKS는 협동조합 그룹평의회의 이사회 및 경영진을 보좌하고 그룹 경영진과 작업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1986년 말 노동인민금고 근처의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간 후, 1991년 공식적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노동인민금고 내에 있을 때는 비용의 60%를 각종 프로젝트 비용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노동인민금고의 지원을 받았으나, 독립 이후에는 GCM관련 업무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받게 됩니다.


2014년 현재 LKS는 724명이 근무 중이며

매출 5100만 유로(약 677억 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LKS는 현재 몬드라곤의 4개 영역(area)에서 산업 영역에 속해있으며,

Engineering and services 부문(division)에서 전문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노동인민금고에서 분리되면서 예전처럼 원스톱으로 신규 사업을 지원해주는 역할은 사라지게 됩니다.

조직 체계에서도 지식 영역이 아닌 산업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죠.


주로 경영컨설팅과 기술컨설팅, 법률 상담, 건축 엔지니러링, 재무 컨설팅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략기획이나 행정서비스, 제조 경영기법 등에 대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1970년대까지의 기업국의 역할은 사라지고 1980년대 이후의 역할만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바스크지역에만 국한되어서 컨설팅을 진행해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외부로 지속적으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몬드라곤의 사회혁신 모델을 전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몬드라곤 복합체 내의 프로젝트의 비중은 30% 정도 된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매출 규모에 비해서 인원수가 매우 많다는 점입니다.

(엑센츄어 코리아가 400여명의 직원으로 720억의 매출(2006)을 올리는 것에 비하면 인원이 2배 정도됩니다)


이는 1인당 부가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들이 컨설팅을 하는 대상은 대기업들이 아닌 소규모 협동조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평균 연봉도 약 40000유로(약 5311만원) 정도로 

맥킨지나 베인&컴퍼니 같은 평균 억대 연봉을 받는 컨설팅 회사와는 접근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몬드라곤의 성장 역사를 감안한다면,

이들의 주요 역할은 컨설팅을 통해서 이익을 많이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 기업들에게 도움을 주고 장기간에 걸쳐서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직원들이 필요하게 되고

일인당 평균 급여 수준은 더욱더 낮아지는 추이를 보이게 됩니다.

(한국에서 주로 행해지는 컨설팅과는 목적 자체가 많이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접근이 점차 필요해지면서,

신규 창업을 지원해주는 역할은 사이올란(Saiolan)이라는 새로운 기관에 역할이 넘어가게 됩니다.




사이올란이 설립된 것은 1985년으로 1986년 기업국이 분리되어 건물을 옮겨가기 전입니다.


당시는 스페인 전반적으로 경기가 어려웠고 바스크 지역 대학졸업생 실업률이 60%에 달했으며,

청년들도 초기 몬드라곤 내의 활발했던 혁신적인 기업가 활동보다는 안정적 직장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몬드라곤 내의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고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들이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한다는 목적으로

위험을 수반하면서도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실습 위주의 교육을 시작합니다.


'saiolan' = experience work

('일을 통한 실험'이라는 뜻의 바스크 언어)




몬드라곤 대학 내에 설치된 사이올란 센터에서는

대학졸업생과 이미 사회 경험이 있는 기업가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합니다.


입학 후 일정기간 동안 사업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를 구체화해서 사업체를 만들게 되는데,

모든 과정은 팀을 기반으로 한 협업을 통해서 진행되며 모든 학생은 커다란 작업실을 공유하게 됩니다.


각자 아이디어에 대한 상호 개방을 기본으로 하며 철저히 외부 기관들과 협력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특히 경쟁과 협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학습하며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학습도 진행합니다.


학생들에 대한 선생들의 관찰과 지도는 이루어지지만,

모든 사업에 대한 지적재산권은 새로 만들어지는 기업에 귀속되고 책임도 스스로 지게 됩니다.


교육 내용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 교육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양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교육과정은 3단계(아이디어찾기 - 사업성 검토 - 실습)으로 진행되며,

제품에 대한 프로토 타입 제작은 물론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진행됩니다.



사이올란의 신규 사업 개발을 위한 논리적 프레임워크를 보시는 분들 중에는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프레임워크를 쓰고 있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최근 창업분야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디자인씽킹의 프레임워크와 비교하면

확실히 고전적 스타일의 프레임워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몬드라곤 대학 내의 또 다른 창업 프로그램인 MTA에 코치로 참여하는

Inigo Blanko 역시 사이올란은 너무 올드패션한 스타일을 고집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은 인정받아야 할 듯합니다.

(물론 지금 사용하고 있는 프레임워크가 그 당시 개발된 것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이올란에서 기본적으로 삼고 있는 원칙들은

MTA의 기본 원칙과 상당부분이 유사합니다.


'Learning by doing', 'sharing & team work' 등은

MTA가 설립되기 전부터 몬드라곤에서 기본으로 삼아온 원칙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암튼 사이올란은 1990년대 수많은 협동조합이 설립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가장 큰 성공요인은 더 이상 Caja Laboral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기관과 협력했다는 점입니다.


몬드라곤 대학뿐만 아니라 바스크 주 정부 기관, 이켈란 같은 연구소,

몬드라곤 내 다양한 협동조합 그룹들과 연계를 맺어 실용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자금도 Caja Laboral은 물론이고 다른 기관들도 참여할 수 있는 펀드를 조성하게 되고,

오히려 협동조합들이 사이올란 센터에 역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학생들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1985~1999년까지 사이올란을 통해 만들어지 사업체는 48개로,

매년 3~4개 정도의 사업체가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5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신사업 개발 프로젝트가 Caja Laboral을 벗어나면서 더 많은 기관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연구소와 학교에서 체계화 시켜줌으로써 종합적인 지식 시스템으로 만들어냅니다.


사이올란은 이렇게 다양한 기관들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모여진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회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중요할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규모와 비중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기술이 너무 빨리 변화하고 개별 협동조합들이 자체적인 활동도 많이 하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몬드라곤 대학에서 내의 창업 교육에 대한 관심이

경영대학 내에 있는 MTA로 넘어간 것도 영향이 있을 듯합니다.

(사이올란은 공업대학 내에, MTA는 경영대학 내에 있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입니다.)


MTA에 대한 내용은 다음 포스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HBM] 2016 몬드라곤 연수단 - 프롤로그


"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작고 영세할 밖에 없다는 편견을 완벽하게 깨뜨리며,
60
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면서 스페인 10 기업에 들어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몬드라곤

103개의 협동조합과 125개의 자회사 
조합원 약 28,402명에 총 고용인원 74,117
매출액 약 16조원(118.75억 Euro), 순투자 약 4600억원(3.45억 Euro)


+

취급액으로 봤을 몬드라곤(31위)보다 규모의 협동조합도 많이 존재하지만,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 중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노동자협동조합입니다.


(World Co-operative Monitor / 2013년 기준)


북부 이탈리아지역, 영국의 존루이스 파트너십과 함께 노동자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수많은 작은 협동조합들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 북이탈리아와는 다르게,
몬드라곤은 하나의 복합체를 구성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존루이스파트너십이 백화점이라는 단일 사업으로 구성된 것과는 다르게,
몬드라곤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제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지역개발, 노동자협동조합, 협동조합연합체에 주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몬드라곤에 집중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몬드라곤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 왔습니다.

1991
김성오선생님이 화이트 부부 책을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어졌고,
1997년 IMF시기 이후에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직 당시 국무회의에서
직접 몬드라곤의 현황에 대해서 언급했던 일화도 익히 알려져있습니다.

2010
이후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국내에도 관련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서적이나 논문도 작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분류

제목

출간

저자

번역

기타

국내단행본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2012

윌리엄 화이트

김성오 번역

역사비평사(1992 초판)

몬드라곤의 기적

2012

김성오

역사비평사

협동조합으로 지역개발하라

2012

그레그 맥레오드

이인우 번역

한국협동조합연구소

 국내논문

협동조합 발전의 초기 조건에 대한 연구

2014

이종현

동향과 전망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고성과 작업 시스템의 연계: 몬드라곤 그룹의 사례

2013

최창호

한국경영학회 (KBR)

이탈리아, 몬드라곤, 프랑스 노동자협동조합 발전시스템에 관한 비교분석

2013

장종익

한국협동조합연구

아리스멘디가 꿈꾼 협동조합 질서

2012

황보영조

대구사학

협동 공동체와 폴케 호이스 콜레 

2011

신명직

석당논총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로컬리티와 글로컬리티

2010

장세룡, 류지석

역사학 연구

사람중심기업,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사례

2009

조은상

한국인사관리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조직구조의 변화와 전망

2006

김란

농협조사월보

 몬드라곤에서 배운다

2004 

박성철 

 

한국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을 직접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몬드라곤은 어느새 사람들이 방문해야하는 성지 하나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김성오 선생님의 '몬드라곤의 기적' 이후에는
몬드라곤에 대한 최신 정보를 설명해주는 자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과연 많은 연수단들은 몬드라곤에서 보고 것은 무엇일까요?
연수단이 체류하는 1주일 동안에도, 저희 팀 이외에 2개의 연수단이 추가로 몬드라곤을 방문했습니다.

소문만 들었지 이렇게 많은 연수단이 방문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짧은 시간동안 1-2기관만 방문하고 기념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모습은 약간 아쉬움을 남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몬드라곤은 문화적으로 특별한 케이스이며,
바스크 지방이라는 지리적 폐쇄성과 역사적 전통,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리더십 등의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몬드라곤은 너무나 특별하기에 다른 곳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국 상황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하며 퀘벡이 가장 적당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저도 부분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분명히, 몬드라곤의 모델을 한국사회에 그대로 도입한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몬드라곤을 설명해버린다면,
우리는 몬드라곤의 경험을 배우지 못한 체 우리만의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만 합니다.

문화적 특수성이 있다고 하더도 우리가 배울점은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저희는 그것이 과연 무엇이며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적용할 있을지 고민해보고자 몬드라곤을 방문했습니다.

+

이번 연수단의 가장 특징은 다양한 인맥에 의해서 팀이 구성됐다는 점입니다.

Gsef
의장이신 송경용신부님과 HBM연구소의 송인창 소장을 중심으로 모였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팀에 합류했고, 너무나 다양한 배경과 사회적 경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몬드라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접한 사람은
송경용 신부님과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 소속 인원들 밖에 없었습니다.

특정 기관이나 단체 소속이 아니기에 잘하면 어벤져스가 수도 있지만,
잘못하게 되면 팀이 분열되면서 되어버려서 연수 중간에 분위기가 험악해 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전문가들과 외부 기관의 전문가들의 결합은
단순히 이념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몬드라곤을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종교인, 대학관계자, 비영리재단, 노동운동가, 

대기업 임원, 오너 경영인, 대기업 사회공헌 담당자...
이들이 바라본 몬드라곤은 너무나 다채로웠고,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연수의 가장 큰 매력은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HBM
연구소에서는 지난 6일간의 연수 기록을 블로그에 남고자 합니다.

이는 몬드라곤에 대한 정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욕심과
저희의 발자취를 기반으로 다음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길 바래서 입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저희의 지식이 공유될 위에 많은 지식들이 쌓이기 마련이며,
우리가 과연 몬드라곤에서 무엇을 배울 있을지 깊은 고민을 하는 원동력이 것입니다.

제가 기록한 내용에는 수많은 오류들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록한 내용이 연수단 전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은 내용도 되지 못합니다.

다만, 이것이 몬드라곤을 이해하고자 하는 누군가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부족한 글솜씨로나마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댓글로 많은 의견을 남겨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대화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