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2016.04.24_몬드라곤 연수단 - Ep.02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글을 연재하면서 왜 이 연수팀이 기획되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팀이 구성되었는지를 먼저 설명했습니다.


[HBM] 2016 몬드라곤 연수단 - 프롤로그


굳이 글을 연재하기 전에 프롤로그를 정리한 이유는

이러한 특징들이 이번 연수의 색깔을 굉장히 독특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매우 다양한 심지어는 매우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분들이 연수단에 합류했습니다.

그 덕에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서로의 스승이 되어서 상호 학습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현지에서 각자 보고 느끼고 생각한 점도 있지만,

다른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수많은 지식이 새로 창출됐습니다.


이는 현지 체험만으로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지식이였으며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몬드라곤이라는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연수팀은 매일 아침을 대화를 통해서 시작했고,

시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버스에서라도 서로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처음 Check-in을 시작할 때만해도 굉장히 서먹서먹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더욱더 풍성해지고 언제나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


또 하나의 특징은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즈니스 혁신을 위해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MTA를 체험하기 위해서 방문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몬드라곤의 현재 모습을 보기 위해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적 출발점인 호세 마리아 신부와 새로운 경영교육방식을 통해서 몬드라곤의 미래를 그려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짧은 연수를 통해서 그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1주일 내내 연수단은 현재의 몬드라곤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의 출발점은

몬드라곤을 시작하게 만든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발음하기도 힘든 이 이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길기에 연수단에서도 줄여서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일생에 대한 기록들은 이미 국내에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몬드라곤에 대한 기록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6165

http://m.blog.naver.com/workercoop/220502828838


그리고 칼폴라니연구소와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에서는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책을 번역해서 국내에 출간하였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30028.html


그리고 2015년 교황청이 발표한 '가경자' 명단 12명에

호세 마리아 신부의 이름이 포함되었습니다.


'가경자'는 공경이 가능한 분이라는 의미로 성인으로 추대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에 해당되며

시복의 단계를 거치면 '복자'의 반열에 오르고, 이 후 시성의 단계까지 거치게 되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단계가 올라갈수록 매우 엄격한 자격을 요구하며 기나긴 검증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성인이 되려면 순교를 하지 않는 한 2개 이상의 기적을 반드시 행해야합니다.

과연 호세 마리아 신부의 업적이 기적으로까지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


호세 마리아 신부가 생존해 계셨다면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몬드라곤에 대해서 가장 오랜기간 치밀하게 분석한 자료 중 하나를 살펴보면,

Making Mondragon(몬드라곤에서 배우자) - William Whyte & Kathleen Whyte (1991)


호세 마리아 신부는 공식적으로
자기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싫어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제자들과 매일 저녁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고,
중요한 사업적 전략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초창기에는 직접 행동에도 옮겼지만,

'노동과 단결(Trabajo y Unión / 사내소식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 이외에는
몬드라곤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으셨고, 전면에 나서는 일도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각종 행사가 열리고 성인추대를 위한 움직임이 나오는 것을 좋아했을리는 만무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몬드라곤과 협동조합운동가들의 노력이 이해가 갑니다.

몬드라곤이 만들어진지 벌써 60년이 넘었고,
이제는 3세대를 넘어서 4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로의 통합 이후 몬드라곤은 거대 복합체로 다시 태어났고,
글로벌 시대에 지역에 기반한 협동조합의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 몬드라곤 시내도 그렇고 바스크 지역 전반에 노인들이 엄청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은퇴를 한 분들이며 손자손녀를 돌보거나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변화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들이 협동조합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이들을 묶어줄 수 있는 구심점이 반드시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협동조합에 대한 철학은
단순히 교조주의적이지 않고 매우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있기에 몬드라곤의 뿌리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은 돌아가신 이후에도 큰 역할을 해주시고 계신 듯 합니다)

연수단은 바스크 곳곳에서 열리는
100주년 기념 행사들의 생생한 현장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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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수단은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 포럼에
Gsef 공동의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연사로 초청받으면서 처음 기획되었습니다.


빌바오를 방문하시게 된 송경용신부님과 HBM의 송인창 소장은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는 김에 Gsef 관련 미팅과 몬드라곤 연수까지 동시에 기획해버리셨습니다.

Gsef 사무국의 경우에는 포럼 참석 후 미팅만 하고 돌아갈 예정이였는데,
현지에서 추가적인 미팅이 계속해서 생기면서 결국 연수기간 내내 함께하게 됐습니다.


포럼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이 한국의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현하면서 앞으로도 많은 지원을 해주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송신부님 옆에는 President of Mondragon Corporation Mr Javier가 함께하고 있네요.)

뒤늦게 바스크에 도착한 2진의 경우에는 100주년 기념 포럼에는 참석하지 못했는데요.
대신 첫 일정으로 산세바스티안에서 열린 기념 미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12월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 '가경자'가 되신 이후에
과연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 성인의 반열까지 오를 수 있을지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몬드라곤의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면서
프랑코 독재에 맞섰던 독립투사 경력도 있기 때문에
성인으로 추대될 경우 정치, 사회, 종교, 경제 모든 분야에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경우에는 당시 가톨릭 신부들 사이에서도 이단아로 불렸다고 합니다)

2015년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성인으로 추대될 때도
업적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기적이라는 부분에서 논란이 많았고 시간도 오래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업적만 놓고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성인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기념하는 미사에
이탈리아에서 추기경까지 직접 온 것을 보면 바스크 사람들만의 희망사항은 아닌 듯합니다.


이탈리아 추기경 이외에도 수많은 대주교들이 자리를 함께하면서,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를 합심하여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종교계 관계자들 이외에도 수많은 제자들과 가족들도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특히 '울고(ULGOR)'의 창립자 중 1명인 '호세 마리아 오르마에케아'는
100주년 기념 포럼에 이어서 기념 미사에도 참석하며 아직도 정정함을 보여주셨는데요.

다음날 몬드라곤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또 다른 생존자인 '알폰소 고로뇨고이티아'와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

산세바스티안 선한 목자(Buen Pastor) 성당에서의 미사를 마치고,
다음날 저희는 몬드라곤 시내로 이동해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빌바오에서의 기념포럼, 산세바스티안에서의 기념미사에 이어서
3번째 기념행사는 몬드라곤 시내에 신부님의 이름을 딴 광장 개원식이였습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광장을 만든 것은 아니구요.
원래 존재하던 광장인데 그 이름을 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Square라고 명명하고
100주년 기념 명판(commémorative plaque)를 공개하는 행사였습니다.

몬드라곤의 주요인사들이 한 자리에 다 모였습니다.

Maria Ubarretxena, mayoress of Mondragon
Javier Sotil, president of MONDRAGON
Miguel Ángel Laspiur, president of ALE (Arizmendiarrietaren Lagunak Elkartea)

Javier 아저씨는 포럼에 이어서 또 한 번 만나는 것인데요.
그 옆에 앉아있는 Maria의 경우에는 저 분이 시장일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2014 Gsef에도 참석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때만 해도 바스크 정부의 사회적경제 담당관이였다고 하네요.

30대의 미녀 시장이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심지어 연수단의 모든 사람들을 제치고 가장 키도 크네요...


광장 기념식에는 몬드라곤의 첫 번째 협동조합인 울고(ULGOR)의 창립자 중에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2명의 창립 맴버가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Alfonso Gorroñogoitia and Jose Maria Ormaetxea


몬드라곤의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특히 알폰소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노동인민금고와 몬드라곤 전체를 대표해온 경영자이고,
호세 마리아의 경우에는 중요한 시기마다 돌격대장처럼 앞장섰던 해결사입니다.

나머지 맴버들이 생존해 계실 때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주셨는데,
90이 넘은 고령이 되어서도 마지막까지 중요한 자리에 함께해주시네요.

이러한 1세대 경영진과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철학과 존재감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였습니다.

(울고의 5명의 최초 창립자 중 가운데 위치한 2명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하게 행사를 준비한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손님을 많이 초대한 것도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방문한 연수단이 이 행사를 국제적인 행사로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귀하신 분들과 사진은 원없이 찍었네요. 심지어 책에 싸인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행사에 젊은 세대는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올드보이들을 위한 추억을 회상하는 자리로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저희 연수팀은 몬드라곤 젊은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도 젊은이보다는 노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몬드라곤 시내의 모습에서도
과연 몬드라곤의 미래가 어떨지 매우 궁금해진 것입니다.



이들에게 협동조합이 고리타분한 구식의 조직체는 아닌가?
과연 협동조합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저희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소장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오타롤라(Otalora) 내에 있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HBM] 2016.04.23_몬드라곤 연수단 - Ep.00 바스크의 도시들 (빌바오, 몬드라곤, 산세바스티안)




제가 이번 연수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출발 2주전이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서 연수단이 구성되는 것은 알았지만,
제가 이번 연수단에 합류하게 것은 상상도 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Gsef 송경용 신부님과 HBM 송인창 소장님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팀이 꾸려졌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 많이 합류한다고 들었기에 사실 부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HBM연구소와 함께하면서 몬드라곤에 대한 최신 정보를 가장 많이 수집해왔고,

몬드라곤의 창업교육프로그램인 MTA 도입을 위한 미팅도 있기에 연수단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사전모임에 대한 내용도 미리 통보받지 못해 참석하지 못하면서,
누가 연수팀에 합류하는지도 모른체 얼떨결에 막판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송경용신부님과 송인창 소장님을 비롯한 1진은 빌바오에 있었고,
저를 비롯한 나머지 4 + 미국에서 직접 합류하시는 1명은 2진으로 토요일 합류하는 일정이였습니다.

인천에서 파리 드골 공항을 경유해 빌바오 공항까지...
무려 17시간의 여정이 걸렸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가장 짧은 동선이라고 합니다.
(
프랑크푸르트나 이스탄불, 마드리드를 경유하는 항공편도 존재하지만 시간은  오래걸린다고 하네요)

몬드라곤은 추가로 빌바오에서 차로 1시간을 더가야만 하지만,
몬드라곤에는 적당한 숙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빌바오에 숙소를 했습니다.

덕분에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가장 도시이자
세계적인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손꽂히는 빌바오에서 1주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빌바오의 도시 재생 이야기 보러 가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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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이가 그대들에게 영국을 찬양하면, 그는 영국 사람일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프러시아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그는 프랑스 사람일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스페인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그는 스페인 사람일 것이다. 

- 페르난도 디아스 플라하(스페인 역사학자) -


오랜기간동안 연방제 국가로 지내 온 스페인은

지역마다 특성이나 성격이 다를뿐만 아니라 지역 감정이 심하기로 유명합니다.


특히나 바스크 지역은 인종과 언어까지 달라 오랫동안 분리 독립 운동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무장 투쟁은 포기했지만 분리 독립 운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에 스페인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대부분 아프리 북부에서 건너온 이베로족과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켈트족이 합쳐진 켈트 이베로족인 반면에,


바스크인들은 10만년 전부터 피레네산맥 인근지역에 모여살면서,

7000년 전부터 고유언어인 에우스케라어(Euskadi)를 사용해왔습니다.


로마시대에도 무어족의 침략에도, 프랑크 왕국, 까스타아 왕국에 대해서도

바스크 지역은 나름의 자치권을 인정받으면서 독특한 문화를 유지해 올 수 있었고,

독립을 위해서 오랜세월동안 투쟁을 해온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2차대전 전후의 바스크 독립운동 역사를 보면,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바스크 민족주의로 이어지고 있고,

문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독립적인 지역으로 만듭니다.


바스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The Basque History of the World (Mark Kurlansky, 1999)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대구 이야기(The Cod's Tale>라는 책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내용인데,

친절하게도 중앙대 이상돈 명예교수가 한글로 요약해서 자신의 홈페이지 올려놓으셨네요.


이상돈 명예교수 홈페이지 - 책 요약 내용 보기 < 클릭


 


바스크는 전통적으로 7개 지방으로 구성되며,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남부(Hegoalde) 4개 지방과 북부(Iparralde) 3개 지방으로 나뉩니다.


남부의 4개 지방은 스페인에, 북부의 3개 지방은 프랑스에 편성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남부 바스크의 3개 지방은 1979년부터 자치권을 얻어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행정구역 상 바스크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페인의 3개 지방이 대체적으로 바스크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스페인의 금융 1번지 빌바오가 있는 비즈카야(Bizkaia)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산세바스티안이 있는 기푸즈코아(Gipuzkoa)

바스크 지방 자치주 정부가 위치한 비토리아가 있는 알라바(Araba)


이 중에 이번 연수단은 몬드라곤(아라사떼)과 오나티 이외에도

빌바오와 산세바스티안(도노스티아),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한 엘고이바(Elgoibar)를 방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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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강국이자 해상을 지배했던 스페인은

17세기 30년전쟁, 18세기 왕위계승 전쟁, 19세기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미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고, 20세기 들어서는 어느 새 유럽의 변방이 되어버립니다.


중에서도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 전체로 봤을 때는

가장 소수지역이고 가장 변방이라고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스페인 전체 인구 4677만 / 바스크 지방 인구 218만 / 2014년 기준)


또한, 예전에는 피레네 삭맥 인근에 개인농장인 카세리오를 중심으로 인구가 넓게 분산되어있었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구의 4/5가 산세바스티안이나 빌바오 같은 해안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통적인 거주지역에 해당하는 몬드라곤 같은 지역은

바스크 지방에서도 변방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변방인 스페인
스페인에서도 변방인 바스크
바스크에서도 변방인 몬드라곤



한국과 비교하면 강원도 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중소도시들과 가장 유사하다고 수도 있습니다.

남부 스페인쪽의 아름다운 날씨만 생각하고 옷을 가져갔다가,
모든 팀원들은 1주일 내내 추위에 벌벌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보다 약간 추운데다가 일정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일교차가 엄청나고 습기도 많아서 밤에는 거의 초겨울 날씨에 가까웠습니다.

사회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올드하고 보수적이며 노인 인구 비율도 굉장히 높아보였습니다.

혁신적인 도시재생의 도시 빌바오나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몬드라곤에 대해 기대한 이미지와는 사뭇달랐습니다.

빌바오와 몬드라곤에서 일어난 혁신들은
어떻게 보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

여기에 비하면 산세바스티안은 굉장히 깔끔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했습니다.

프랑스에 가까운 지역이라서 그런지 건물들이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보였고,
실제로도 '리틀 프랑스'라는 별명으로도 많이 불린다고 합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도 아름다웠지만,
실제 도시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닐 보이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였습니다.

주일이라서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기는 했지만,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과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가 인상적이였습니다.

과하지도 않고 깔끔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간판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물과 거리, 도로, 간판,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빌바오와는 사뭇달랐습니다.

빌바오(40) 이어서 바스크 지방의 2 도시(20)이지만,
평균 소득이나 집값등을 고려했을 생활 수준은 오히려 높다고 합니다.

특히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했지만,
저희가 방문한 집의 요리는 너무 짜서 먹을 없었다는...

(스페인 음식 대부분은 한국인의 입맛에 짜기에, 주문할 때 반드시 안짜게 해달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

주일날 오전에 연수팀은 하나의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곳은 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시골인데요, 바로 마틴 교수의 고향 동네입니다.

저희가 굳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도시가 아닌
일반적인 시골 마을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틴의 고향이기도 하구요)

우선 마틴의 아버지가 30년간 근무한 공장에 갔습니다.
일요일이니까 당연히 공장이 열지않고, 주변에 모든 공장이 닫는다고 설명합니다.

어쩌면 당연스러운 설명이 저희에게는 당연스럽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대부분, 특히 중공업에 관련된 공장은 1년간 공장이 멈추지 않습니다.

경제적 효율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3교대로 꾸준히 돌려줘야하고,
감각상각을 계산한다면 중간에 공장을 멈추고 주말에 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드라곤 주변에서는 주일까지 가동하는 공장을 찾아볼 없었습니다.
이는 몬드라곤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일반적인 공장들에 공통된 사항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쉴때는 있어야 진정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내 중심가로 이동을 해보니,
전형적인 스페인의 마을 구조가 나타났습니다.

조그만 개울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다리를 건너서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면 정사각형 모양의 광장이 있고 뒤로 성당이 위치합니다.
광장 한쪽 편에는 시청이 있고, 광장의 다른 한편에는 집권당의 당사가 있습니다.

(스페인이 남미에 진출하면서 마을을 만들  동일한 구조가 적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있으며 상점과 주택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광장 구석에는 당연히 핀쵸를 파는 바들이 있었고, 천막을 쳐놓고 서서 핀초를 먹습니다.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 우리팀도 비를 피해 천막으로 들어가 와인을 마셨습니다.
100
주년 기념 포럼에 참석한 선발대는 벌써 4일째 이런 문화를 일상으로 즐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당 미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광장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80
고령의 마틴교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희와 인사를 있었습니다.

마을 공동체답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동양인 단체 관광객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던 같습니다.

마을의 동네 구석까지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아기자기한 시골 동네의 풍경이 정겹게만 느껴졌습니다.



+

빌바오 > 엘고이바> 산세바스티안 > 몬드라곤


저희 연수팀은 1주일간 4개의 색다른 도시를 경험할 있었습니다.


물론 지리적으로는 몬드라곤 인근의 몇개 지역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시내 중심가를 직접 걸으면서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있었던 곳은 4군데였습니다.

유럽 문화 도시로 선정된 산세바스티안은 다른 동네와 분위기가 사뭇달랐지만,
이는 바스크 지역의 도시 분위기를 대조적으로 느끼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빌바오는 도시 재생으로 신도심의 분위기가 많이 고급스럽고 세련되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도심의 분위기는 다소 올드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더욱더 올드함이 강하게 느껴졌고,
약 8만명의 직원이 일하는 대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분위기였습니다.


그냥 한국의 지방에 위치한 오래된 중소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반면, 마틴의 고향은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상당히 남아있었습니다.
한국 시골 동네의 중심가가 구심점이 없이 그냥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광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였습니다.

가장 부러운 점은 사람들이 모일 있는 광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종교와 정치, 그리고 사회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며 누구에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할  이미 민주주의는 동력을 잃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지식 창출을 위한 대화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새로움을 만들어냅니다.


마을의 자치를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 갖춰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최근에 시청앞에 광장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아직은 너무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바스크 지방의 도시들의 모습은
한국의 마을과 도시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