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4 에로스키(Eroski) 소비자 협동조합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대부분 제조업을 떠올립니다.


최초의 협동조합 ULGOR 역시 제조업이 기반이며,

전세계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몬드라곤만큼 성공한 협동조합이 없기 때문입니다.


(http://monitor.coop)


The World Co-operative Monitor 자료를 봐도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협동조합에서는 31위의 규모이지만,

제조업 기준으로 봤을 때는 월등히 높은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몬드라곤 자체로만 놓고 봤을 때

몬드라곤의 매출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은 유통부분의 Eroski 그룹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보면 Eroski의 매출액 비중은

몬드라곤 그룹 전체의 52%(62억 유로 / 8조 2천억원)까지 상승합니다.


몬드라곤에서 매출액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고용인원 숫자에서도

Eroski의 고용인원은 38,686명으로 전체 74,117명의 52.2%에 해당합니다.

(노동자조합원의 숫자는 12,295명으로, 전체 직원의 30%를 차지합니다)


그룹 차원에서 차지하는 실질적인 비중은 매우 높지만

제조업 분야에서의 신화적인 성공으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별로 주목을 못받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소비자협동조합만 놓고봤을 때도 세계에서 15번째로 규모가 큰 성공사례입니다)



몬드라곤의 역사를 살펴봐도

초기 설립자들 역시 소비자협동조합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바스크 지방에는 이미 몇 개의 소비자 협동조합이 존재했기 때문에

몬드라곤의 초기 설립자들은 굳이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기존의 소비자협동조합 중 9개가 재정과 조직 운영 면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Caja Laboral에 찾아와 자신들의 조직을 통합해서 새로운 협동조합 복합체를 만들어달고 요청합니다.


소비자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Caja Laboral의 경영진은

이를 위해서 연구팀을 만들어 프랑스와 스위스의 성공 사례에 대한 현지 조사까지 진행합니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의 법률에서는 비조합원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금액을 납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합니다.


조합원 가입을 위한 출자금을 최소로 낮춰서

최초 방문 고객의 경우에는 계산대에서 즉시 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줬으며,

조합원 배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서 다수의 조합원을 관리하는 사무업무를 최소화시켜버립니다.


배당을 실시하지 않는 대신 물건가격을 낮추고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높임으로써,

조합원들에게 혜택을 돌려주면서 오히려 조합원들이 급증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월간 소비자 잡지를 무료로 출간하며, 여행과 숙박 상품을 싼 가격에 제공하는 등

추가적인 혜택과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의 활동은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


이렇게 탄생하게 된 Eroski는 거버넌스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다른 소비자협동조합들의 경우에는 소비자들만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조합원들은 이사를 선출할 때 1인 1표의 투표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Eroski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소비자 조합원과 노동자 조합원이 동시에 존재하는

혼성 조직으로 출발했으며, 이사회의 구성도 소비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가 같은 수로 선출됩니다.

(단, 이사장은 항상 소비자 조합원이 맡게 됩니다.)


이러한 거버넌스 구조는 전세계 소비자 협동조합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구조였습니다.


최근에 소비자 협동조합들 가운데 노동자들의 처우와 경영 참여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면서

다른 소비자협동조합들도 에로스키의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몬드라곤 그룹 내에 별다른 주목을 못받았던 Eroski 였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기존 공업협동조합들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급성장을 이루고 있던 Eroski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Eroski의 경우 1984년에 이미 소비자 조합원은 13만명을 넘어섰고

노동자 조합원도 1,220명이 되면서 고용 창출 면에서도 큰 협동조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


1990년대 이후 eroski의 성장은 더욱더 눈부실 정도입니다.

고용인원과 매출은 20여년간 약 20배 정도 늘어나면서 매년 20% 정도의 성장을 기록합니다.


1990년 2,600명이던 노동자는 1995년 1만명을 돌파하더니

2000년 25,000명, 2005년 34,000명, 2010년 42,000명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납니다.

(2000년대 이후 몬드라곤 내 신규 고용의 70%가 Eroski에서 발생합니다.)


매장의 형태도 하이퍼마켓, 맥시마켓, 슈퍼마켓 등으로 다양화하였으며,

의류 및 가정용품 전문 매장, 여행사무소, 헬스클럽 등의 생활 전 분야로 사업도 확장해나가면서,

2010년에는 매장 수가 2,100여개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Eroski는 1990년대부터 바스크 지역을 벗어나 스페인 전역으로 사업장을 확대해왔으며,

1999년에는 프랑스 시장에도 진출하였고 2003년과 2007년에는 유통 사기업에 대한 M&A도 단행합니다.


+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Eroski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 전체의 경기 침체와 함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2008년 Eroski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매출 감소를 기록했고,

84억 유로까지 성장했던 매출은 현재 62억 유로까지 감소해 정체기를 겪고 있습니다.


1억 2천 유로(약 160억원)까지 급작스럽게 증가했던 당기 손실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감소추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Eroski는 자구책으로 10% 노동시간은 무급연장하고, 향후 5년간 임금 동결을 결의했는데,

이럴 경우 결과적으로 보면 5% 정도 급여 삭감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여기에 Fagor 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그룹 전체가 1%의 급여를 삭감한 것도 있습니다.


그나마 조합원들은 재배치를 통해서 근무환경을 보장받지만

비조합원의 경우에는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급여차이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 닥치게 되면 비조합원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1년 이상 근무해 노동자 조합원 자격을 갖췄을 때

미리 조합원 가입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조합비 15000유로(약 2000만원)은

일반직 노동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돈은 아니기에 마냥 조합원 가입을 안한 이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사기업이라면 더욱더 어이없는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몬드라곤 역시 사업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그 한계가 존재함을 드러내는 사건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기를 다함께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왜 노동자협동조합에 기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연수단의 공식일정에 Eroski의 방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몬드라곤 시내에 큰 Eroski 복합매장이 존재해 식사하기 위해서 방문했고,

빌바오 숙소 앞에도 Eroski 슈퍼마켓이 있었기에 장보기 위해서 추가로 방문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다른 매장들을 방문해본 적이 없는 연수단원들이 보기에

Eroski의 매장은 한국의 일반 대형매장들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몽이나 치즈, 와인 등이 한국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는 정도?

연수팀원들은 Eroski 브랜드가 찍힌 초콜릿과 와인, 차 등을 선물로 사면서 매대를 싹쓸이했습니다.


한국의 이마트나 홍플러스 같은 규모의 대형 매장처럼 없는 품목이 없었기에,

친환경 제품에만 치우쳐있는 한국의 생협들과 비교했을 때 소비자 입장에서는 훨씬 더 편리했습니다.


확실히 사회운동성이 강한 한국과 비교해보면 일반 기업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Eroski의 전략에 대해서는 연수단원 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느낌이였습니다.


거버넌스 측면에서 그리고 사업 전략적인 측면에서

Eroski가 한국의 소비자협동조합에게 주는 특징은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이번 연수에서는 Eroski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기회는 없었지만,

Eroski는 다시 한 번 방문해서 자세히 뜯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례임에는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HBM] 2016.04.28_몬드라곤 연수단 - Ep.11 쿠페라 (Koopera)와 한국의 자활기업

바스크 지역에는 굉장히 많은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협동조합이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일원은 아니죠.


오늘은 특별히 몬드라곤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참고할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협동조합을 방문했습니다.



쿠페라는 1992년 카톨릭 기반의 국제적인 NGO인 카리타스가

몬드라곤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협동의 모델을 만들고자 설립한 2차협동조합입니다.


카리타스는 1897년 독일 카리타스의 설립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긴급구호와 국제 개발을 위한 비영리 기구로

개별적으로 활동하다가 국제적 연대체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165개국에 퍼져있습니다.


카리타스의 경우에는 한국의 협동조합 운동과도 인연이 매우 깊습니다.


1972년 강원지역 집중호우 발생하였고,

당시 피해지역의 대부분은 원주 교구 관할이였습니다.


원주 교구의 지학순 주교는 전 세계 카톨릭 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독일의 카리타스와 미네레올이 지원해준 3억 6천만원은 구호활동의 핵심 자금이 됩니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1973년)'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구호활동이 시작되었고,

원주 지역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원주 지역 시민운동의 핵심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때 합류한 맴버들이 사실상 오늘날의 한살림을 만든 주역들이 됩니다.

 

이후 1975년 지학순 주교를 초대 총장으로 인성회(仁成會)가 만들어지고,

국제 카리타스의 정회원으로 등록되었으며, 현재는 한국 카리타스 정식 법인(2010)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협동조합 운동에 역사적 사건을 함께했던 카리타스가

스페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쿠페라(Koopera)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와 환경의 혁신으로 크게 5가지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영역은

사회적 소외계층에게 취업을 알선해주는 자활이라는 부분입니다.


재활용 시장을 기반으로하는 자활기관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시면 이해하시기 쉬울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도 자활단체는 많고, 아름다운 가게처럼 재활용시장도 존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묶일 때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는

우리가 예상하던 것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에도 자활센터는 많이 존재하고, 재활용 사업도 따로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자활센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일반 사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카리타스에서 쿠페라를 만든 것은 협동조합이 가진 가능성 때문이였습니다.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을 운영할 경우 가질 수 있는 규모의 경제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협력이라는 가치를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쿠페라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소외계층입니다.

홈리스, 마약/술 중독자, 매춘부, 미혼모, 해체 가정 자녀, 가출 청소년 등


이들에게는 일자리도 필요하고 일할 수 있는 스킬도 배워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함께 일하고 협력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쿠페라에 조합원으로 남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일자리가 있지 않기에,

다른 조직에 가거나 활동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일만 잘하는 노동자를 양성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방식과 정신이 필요했고, 현재는 사업적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작은 기관들이 생겨나서

2006년 오늘날의 형태인 2차 협동조합이 만들어졌고,

2013년 에는 발렌시아에 동일한 모델이 만들어졌으며,

칠레와 루마니아에서도 관련된 프로젝트가 진행중입니다.


현재 10개의 자활센터가 지역별로 만들어져서 운영되고 있으며,

9개가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제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매장은 총 31개가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자활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숫자가 약 2400명 정도되는데,

쿠페라에 고용된 사람이 433명이니까 전체 자활 고용의 15%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5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고 있고,

매출이 1억4800만 유료(약 196억)이고 수익률은 약 2% 정도 된다고 합니다.


수치 상으로만 보면 사실 한국에 비해서는 크게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은 약 550개의 자활기관에 5만 명 정도가 현재 고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복지와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한국의 자활은 전체 규모면에서 스페인을 압도합니다.


또한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2015년 기준)의 경우에는

매출액 242억 / 직원수 406명 / 자원봉사자 4000명으로 쿠페라와 규모가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매장 숫자는 아름다운가게가 149개로 쿠페라 31개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편입니다.

설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공장 내부 시설을 구경하고 빌바오 시내에 있는 쿠페라 매장에 가보니

비즈니스적으로는 아름다운 가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가게가 주로

임대료가 낮은 주요 상권에서 살짝 벗어난 곳 작은 규모로 위치해있다면,


쿠페라는 일반 패션 브랜드와 별 차이 없이 시내 한복판 아주 넓은 공간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하고

너무나 다양한 물품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옷의 상태들도 굉장히 깨끗해서 중고 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 비결은 90% 이상의 제품들이 이미 깨끗히 세탁이 된 상태에서 수령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버려야하는 옷들을 주로 기증하는 것과는 관점이 다르기에 가능한 일 입니다)


핵심 기술에 대한 유출과 자활 근무자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작업장 내부에서 사진을 못찍게 했지만 물류 시스템도 상당히 수준이 높아보였습니다.


사회운동차원이 강한 한국의 사회적기업이나 자활단체들과는 조금은 다름이 느껴졌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는 바스크인들의 마인드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참여자수와 사업 규모만으로는 아주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재활용사업에 대한 물류 시스템이나 운영 노하우 등에서는 굉장한 전문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쿠페라(Koopera)의 방문은 연수단에게 2가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수치적으로는 한국의 자활관련 기업들이 훨씬 더 활성화되어있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보면 쿠페라 정도의 수준에 올라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자활관련 종사자가 2400명 밖에 안되는 스페인이지만,

50000명이나 되는 한국에 쿠페라 정도 수준의 자활기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장 성공한 사회적기업이라는 '아름다운가게'의 경우에는

수치상으로는 쿠페라와 비슷한 규모이지만 단위 매장의 경쟁력에서는 훨씬 부족해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름다운 가게'의 경우에는 자활기업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자활기업이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가질 때 가져오는 효과입니다.


한국의 자활기업들은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그자체에만 주목하지만,

쿠페라의 경우에는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사회구성원이 되는 훈련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단순 일자리 창출을 넘어서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때

일반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 가서도 사회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협동조합을 단순히 운영체제로만 본 것이 아니라 교육방식으로도 본 것입니다.

이는 협동조합에 대해서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학습의 장'으로 그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한국의 자활기업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줍니다.


자활기업이나 복지기관에서 가끔씩 터져나오는 인권의 문제 역시

협동조합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드시 해결되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들인 듯합니다.


물론 현장에 계신분들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고, 당연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쿠페라가 보여주고 있기에 고려해볼만 합니다.

(그게 설사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겠죠.)



[HBM] 2016.04.26_몬드라곤 연수단 - Ep.06 라군아로 (Lagun Aro)와 사회보장제도

몬드라곤 HQ를 방문한 이후 바로 언덕길 따라 내려와서,

이미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사회보장협동조합 라군아로(Lagun-Aro)를 방문했습니다.



라군아로의 시작은 1959년으로 올라갑니다.


스페인 노동부의 명령으로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자영업자로 분류되면서,

공공복지체계로부터 제외되어 버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1967년, 급여에서 공제한 기금을 기반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주요 시스템을 갖춘 라군아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은 Caja Laboral의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에 불과했다고 하네요)


같은 해 라군아로 같은 자발적 사회복지기관(EPSV)을 위한 정부 시스템 생기면서,

조합원들은 라군아로와 정부에 연금을 모두 내고 이중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 연금에는 최소한의 비용을 내고, 혜택이 더 좋은 라군 아로에 나머지를 내게 됩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첫번째 고용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1983년에는 이러한 문제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고용지원 기금을 최초로 설립합니다.


또한 1984년에는 일시적인 병가(sick-leave)와 의료 서비스(Health-care)부분에 대한

사회안전망으로써의 역할까지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나갑니다.


1999년에는 퇴직 후의 재정 운영(retirement coverage)을 설계하는

Arogestion이라는 자발적 사회복지기관(EPSV)을 추가로 설립해 2001년부터 2가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2005년부터는 바스크 주정부와 의료 서비스에 대한 협력사업을 진행하였고,

2008년부터는 라군아로는 바스크 주정부의 의료 서비스(Osakidetza)에 완전히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 라군아로의 연금과 개인 분담금을 대대적으로 개편합니다.


은퇴자들이 계속 들어나면서 지급준비금(solvency)이 상당 부분 고갈되기 시작했고,

정부차원에서도 정부의 자영업자 연금(RETA)에 보다 많은 기금이 모일 수 있도록 압박을 가했습니다.


라군아로는 장기적 관점(수익성과 지속가능성)에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조합원들이 정부의 자영업자 연금(RETA)에 60%, 라군아로에 40%를 부담하도록 시스템을 조절합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전체 연금의 40%만 라군아로의 연금 혜택(저비용 고효율)을 받게 됨으로,

실질적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승적인 결정을 합니다.


+


이 정도가 LagunAro 홈페이지 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략적인 정보이고,

한국에는 실업 재배치에 대한 고용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에 대한 부분만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이라고 하면 '노동인민금고'와 함께

'라군아로'를 가장 먼저 떠올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알려진 정보는 이 정도입니다.


과연 라군아로(Lagunaro)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갖고 들어갔습니다.


  


건물의 겉 모습도 매우 세련된 편이였는데, 사무실도 쾌적하고 개인 공간도 꽤 넓어보였습니다.

이 정도 근무환경이면 나름 일할 맛이 날 것같은 기분이 드네요...


 우선 우리를 맞아준 것은 LagunAro 마크가 찍혀있는 물과 사탕이였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이 동네에 이 정도 손님 대접이면 굉장히 신경써서 준비한 편이라고 하네요)


우리에게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주신 Mrs. Kontxi Benitez 는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부터 들려주면서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쇠고리가 들어간 로고를 라군아로의 로고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사실은 앞에 있는 로고가 진짜 라군아고의 로고라는 것입니다.


열쇠고리가 들어간 로고는

1983년 라군아로와 카하라보랄이 합작해서 만든 '라군아로 보험(주식회사)'의 로고이며,

2011년부터는 카하라보랄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한국에 있는 자료들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라보랄쿠차로 합병(2012)되기 전에 사용하던 '라군아로 보험회사'의 로고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3개의 로고가 모두 뜨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소비자 접점이 많은 보험회사의 로고가 가장 많이 노출되고 또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확한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가장 많이 쓰이는 로고가 맞는 줄 알기에,

그냥 열쇠고리가 들어간 로고를 선택해서 라군아로 로고인줄 알고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이외에도 노동인민금고와 라군라오, 그리고 이탈리아 우니뽈 보험이 합작한

'라군-아로 생명보험(1989)'도 있는데 두 회사 모두 꽤 많은 고객을 보여한 회사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


본격적으로 라군아로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2015년 기준(홈페이지) 가입자 27,970명에, 의료혜택을 받는 가족까지하면 69,875명으로

1984년 기준(making mondragon) 18,266명에, 의료혜택을 받는 가족 포함 47,465명이였던 것에 비교하면 

30년간 약 50%정도 인원이 증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연금혜택을 받는 사람은 12,538명으로 매년 500여명씩 증가하고 있으며,

1년에 지급되는 금액도 1억 6400만 유로(약 2193억 원)로

수령자가 증가하면서 총 지급 금액도 매년 천만유로(약 130억 원)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금 수령자에는 퇴직자(9,345명)와 과부(2,325명)뿐만 아니라 장애인(697명)도 포함되어 있지만,

장애인의 경우에는 비중도 매우 적고 인원도 정체되어 있지만, 퇴직자와 과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1인당 수령액은 본인이 납입한 금액과 상황에 따라서 많이 차이가 나지만,

평균으로 계산했을 때 매년 1인당 약 1750만원(월 146만원)정도 수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인당 실수령액의 경우에는 2010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2010년 연금제도의 개편으로 정부연금에 대한 부담금을 늘리면서 자동으로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라군아로에서 지급해주는 연금 이외에 추가적으로

정부에서 자영업자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을 받을 수 있기에 생활 수준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2015년 OECD에서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Pension at a Glance 2015)'에 따르면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50%로 앞도적 꼴찌(OECD 평균 13%에 4배)였으며,

전체 평균 소득 대비 60세 이상 노인들의 평균 소득도 60%로 꼴찌(OECD 평균 87%)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스페인의 노인 빈곤율은 7%에 불과하고, 노인들의 평균 소득도 전체 평균의 96%에 달합니다.

근데, 이것도 라군아로 시스템에 비하면 별로 혜택이 좋지 않다고 하고 있으니...




저희 연수팀원들도 이쯤 이야기를 들으니 흥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돈을 내길래 그만큼의 혜택을 받는 것인지

그리고 정확하게 정부 연금까지 포함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돈을 받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정확한 금액을 한 번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30분간 산수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


일단 라군아로에서 제공해주는 서비스는 단기와 장기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단기 서비스라고 하면, 의료혜택이나, 산재나 병가(급여의 80% 지원), 

임신과 출산, 육아, 장애아동 교육비 지원, 고용 중 배우자 사망 시 위로금 등을 의미하며,

매년 총 예산을 총 가입자 수에 따라 나눠서 비용을 책정하며 2015년기준 급여의 14.02%를 공제합니다.


여기에 장기서비스로 13.6%를 공제(2010년 이후 변경 기준)하고 있으며,

정부의 사회보장 18% 공제하고, 세금 16~17%까지 때고 나면 대략 급여의 40%를 실수령액으로 받게 됩니다.


연금과 사회보장에서만 30~40% 정도 때는 것이 굉장히 높기는 하지만,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자기가 회사의 주인기이 때문에 기업주 부담같은 개념이 아예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4대보험으로 8.5%를 공제하지만 기업주가 절반을 부담하기에 실제는 17%가 공제됩니다.

소득세도 사전 공제율은 대략 5% 이하지만 실질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10~15% 정도는 나오게 됩니다.

(소득구간 1200 ~ 4500만원 이하의 1인 가구의 경우 / 2015년)



결국은 스페인이 한국보다 소득세와 사회보험료가 더 높아보이기는 하지만,

몬드라곤 사람들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라군아로를 통해서 추가로 공제하는 27%의 금액과

이로 인해서 정부로 부터 받는 것 이외에 추가로 받게 되게는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부분입니다.


단기 서비스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1차적으로는 4대보험을 통해서 해결하는 부분이고, 추가적으로 사보험을 통해서 대체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의 기초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은 괜찮은 편인 듯합니다)


그렇게 보면 평균 14.02%라는 부분이 굉장히 과도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혜택을 얼마나 쉽게 받을 수 있는지와 그 혜택의 질을 생각하면 한국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실업급여나 의료보험, 산재 처리 같은 것을 처리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절차도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며 실질적으로 필요한 혜택을 못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시스템은 잘 되어있으나 이를 이용하기는 매우 힘들게 해놓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사보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정관과 옵션을 매우 복잡하게 짜놓습니다.

막상 어려움이 닥쳤을 때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것이 또 하나의 함정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라군-아로의 사회보장시스템의 경우에는

공제금액이 매우 커보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혜택을 받기 편하다면 유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라군아로가 본격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던 1983년 정부차원의 전국사회보장제도는

사기업으로 하여금 1년에 노동자 1인당 2,800달러를 납부하도록 했습니다.

(많은 사기업들은 보험룔를 납부하지 못했고, 정부에서도 제대로 징수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라군-아로는 자치 정부와 협약을 통해서 조합원들이 전국사회보장제도 대상자에서 제외될 수 있었고,

단지 1,600달러만 라군-아로에 납부하면 훨씬 뛰어난 보험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금액이나 서비스 내용은 많이 바뀌었지만 개별 협동조합이 각종 위원회에 직접 참여해서,

조합원에게는 최소한의 개인부담금을 부여하고 필요한 것을 채워준다는 기본 기조는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장기서비스 곧 연금에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사회보장시스템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과연 몬드라곤 사람들이 연금을 얼마나 받는지 실제 데이터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Mrs. Kontxi Benitez은 친절하게도

실제 데이터를 보면서 공제 금액의 수준과 현재 연금 수령의 금액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임금격차가 현재 1:6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 1.8 Level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로 설명해주었습니다.


2880.36유로의 급여를 받을 경우

연금으로 637.22유로(정부 267.70 / 라군아로 268.77)를 공제하고

라군아로의 단기서비스로 275.82유로를 추가로 공제하게 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공제률과 수치상으로는 차이가 존재하는데요.

이는 소득구간별 그리고 부양가족이나 추가 요소들을 고려해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암튼 대략 이 정도 수준의 공제를 하고 있다고 볼 때,

연금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수령하는지를 살펴보게 되면


현재 평균 퇴직 연령은 62.1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초창기 맴버의 경우에는 월 1,125유로를 라군아로에서 연금으로 받고 있고,

월 325유로를 정부에서 받고 있으니까 총 월 1,450유로(약 194만원)정도를 받고 있습니다.


1959년에는 개인부담금의 비율이 1:2 (정부기금:라군아로)였지만,

2010년 이후에는 개인부담금의 비율이 6:4 (정부기금:라군아로)로 변경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1인당 평균 연금 수령 금액은 조금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이 20년이상 가입해야 월 87만원씩 받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큰 차이지만 국민연금 공제율이 9%(기업주 부담 포함)인 것을 감안하면 비율상은 대충 비슷해 보입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20% 이상 공제를 한 다음에 나중에 더 많이 돌려준다는 것인데,

미래 환경의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수혜자 입장에서는 별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것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금은 안전할까?


한국의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지금은 돈이 넘쳐서 이곳저곳 투자하고 있지만,

이미 특례연금수령자니 뭐니 해서 상당금액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고갈 위험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경우에도 정부차원의 연금같은 경우에는

노령화는 급속히 진행되는데 청년 실업문제는 점점 고조되고 있어서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기금 고갈에 대한 이슈는 빠른 시일안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라군아로의 경우에도 현재는 6%이상의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어서

정부 차원의 연금에 비해서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수익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금을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4% 이상의 수익률을 유지해야하기에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빌바오에 근무 중인 투자 전문가들이 고생이 많다고 합니다.



연금 이슈에 너무 흥분해서 열띤 토론을 이어가다보니

어느 새 약속한 시간이 다되어버리면서 실업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이야기도 못하게 됐습니다.


실업과 노동자의 재배치를 위해서 몬드라곤의 협동조합들은 평소에 일정 수준의 부담금을 부담하고

근무자를 재배치할 경우 일정 금액을 라군-아로를 통해서 경비를 분담하게 됩니다.


일시적인 재배치의 경우에는 원래 직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기존 직장에 대한 조합원의 지위를 유지하며, 라군아로에서는 조합원의 교통비와 급여의 차액만 지원해줍니다.


영구적으로 재배치되는 경우에는 라군-아로는 특별 비용에 대해서만 지원을 해주고,

그 성격과 규모는 이사회에서 협의를 통해서 결정하게 됩니다.


실업 기간 동안 라군아로에서는 80%의 급여를 지급해주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는데 조합원이 재배치를 거부할 경우에는 실업수당을 포기해야합니다.


그렇다고 얼토당토 않은 곳에 재배치를 하는 것은 아니며 충분한 합의를 통해서 진행되지만,

파고르 가전의 파산같은 대형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별다른 선택권 없이 재배치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실업에 대한 재배치는 파고르 산업(Fagor Industrial) 방문기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이 번편은 여기서 마무리 해야할 듯합니다.


Mrs. Kontxi Benitez도 한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의 사회보장 시스템도 굉장히 흥미롭다며 꼭 한국에 한 번 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최근에 복지 이슈가 굉장히 화두가 되고 있는데,

정부차원에서의 복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터에서의 복지 문제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기업들이 자신들과 함께하는 노동자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시작이 스스로 주인인 협동조합에서 일어났으면 합니다.


[HBM] 2016.04.23_몬드라곤 연수단 - Ep.00 바스크의 도시들 (빌바오, 몬드라곤, 산세바스티안)




제가 이번 연수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출발 2주전이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서 연수단이 구성되는 것은 알았지만,
제가 이번 연수단에 합류하게 것은 상상도 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Gsef 송경용 신부님과 HBM 송인창 소장님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팀이 꾸려졌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 많이 합류한다고 들었기에 사실 부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HBM연구소와 함께하면서 몬드라곤에 대한 최신 정보를 가장 많이 수집해왔고,

몬드라곤의 창업교육프로그램인 MTA 도입을 위한 미팅도 있기에 연수단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사전모임에 대한 내용도 미리 통보받지 못해 참석하지 못하면서,
누가 연수팀에 합류하는지도 모른체 얼떨결에 막판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송경용신부님과 송인창 소장님을 비롯한 1진은 빌바오에 있었고,
저를 비롯한 나머지 4 + 미국에서 직접 합류하시는 1명은 2진으로 토요일 합류하는 일정이였습니다.

인천에서 파리 드골 공항을 경유해 빌바오 공항까지...
무려 17시간의 여정이 걸렸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가장 짧은 동선이라고 합니다.
(
프랑크푸르트나 이스탄불, 마드리드를 경유하는 항공편도 존재하지만 시간은  오래걸린다고 하네요)

몬드라곤은 추가로 빌바오에서 차로 1시간을 더가야만 하지만,
몬드라곤에는 적당한 숙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빌바오에 숙소를 했습니다.

덕분에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가장 도시이자
세계적인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손꽂히는 빌바오에서 1주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빌바오의 도시 재생 이야기 보러 가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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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이가 그대들에게 영국을 찬양하면, 그는 영국 사람일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프러시아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그는 프랑스 사람일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스페인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그는 스페인 사람일 것이다. 

- 페르난도 디아스 플라하(스페인 역사학자) -


오랜기간동안 연방제 국가로 지내 온 스페인은

지역마다 특성이나 성격이 다를뿐만 아니라 지역 감정이 심하기로 유명합니다.


특히나 바스크 지역은 인종과 언어까지 달라 오랫동안 분리 독립 운동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무장 투쟁은 포기했지만 분리 독립 운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에 스페인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대부분 아프리 북부에서 건너온 이베로족과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켈트족이 합쳐진 켈트 이베로족인 반면에,


바스크인들은 10만년 전부터 피레네산맥 인근지역에 모여살면서,

7000년 전부터 고유언어인 에우스케라어(Euskadi)를 사용해왔습니다.


로마시대에도 무어족의 침략에도, 프랑크 왕국, 까스타아 왕국에 대해서도

바스크 지역은 나름의 자치권을 인정받으면서 독특한 문화를 유지해 올 수 있었고,

독립을 위해서 오랜세월동안 투쟁을 해온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2차대전 전후의 바스크 독립운동 역사를 보면,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바스크 민족주의로 이어지고 있고,

문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독립적인 지역으로 만듭니다.


바스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The Basque History of the World (Mark Kurlansky, 1999)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대구 이야기(The Cod's Tale>라는 책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내용인데,

친절하게도 중앙대 이상돈 명예교수가 한글로 요약해서 자신의 홈페이지 올려놓으셨네요.


이상돈 명예교수 홈페이지 - 책 요약 내용 보기 < 클릭


 


바스크는 전통적으로 7개 지방으로 구성되며,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남부(Hegoalde) 4개 지방과 북부(Iparralde) 3개 지방으로 나뉩니다.


남부의 4개 지방은 스페인에, 북부의 3개 지방은 프랑스에 편성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남부 바스크의 3개 지방은 1979년부터 자치권을 얻어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행정구역 상 바스크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페인의 3개 지방이 대체적으로 바스크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스페인의 금융 1번지 빌바오가 있는 비즈카야(Bizkaia)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산세바스티안이 있는 기푸즈코아(Gipuzkoa)

바스크 지방 자치주 정부가 위치한 비토리아가 있는 알라바(Araba)


이 중에 이번 연수단은 몬드라곤(아라사떼)과 오나티 이외에도

빌바오와 산세바스티안(도노스티아),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한 엘고이바(Elgoibar)를 방문하였습니다.



+


17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강국이자 해상을 지배했던 스페인은

17세기 30년전쟁, 18세기 왕위계승 전쟁, 19세기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미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고, 20세기 들어서는 어느 새 유럽의 변방이 되어버립니다.


중에서도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 전체로 봤을 때는

가장 소수지역이고 가장 변방이라고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스페인 전체 인구 4677만 / 바스크 지방 인구 218만 / 2014년 기준)


또한, 예전에는 피레네 삭맥 인근에 개인농장인 카세리오를 중심으로 인구가 넓게 분산되어있었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구의 4/5가 산세바스티안이나 빌바오 같은 해안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통적인 거주지역에 해당하는 몬드라곤 같은 지역은

바스크 지방에서도 변방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변방인 스페인
스페인에서도 변방인 바스크
바스크에서도 변방인 몬드라곤



한국과 비교하면 강원도 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중소도시들과 가장 유사하다고 수도 있습니다.

남부 스페인쪽의 아름다운 날씨만 생각하고 옷을 가져갔다가,
모든 팀원들은 1주일 내내 추위에 벌벌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보다 약간 추운데다가 일정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일교차가 엄청나고 습기도 많아서 밤에는 거의 초겨울 날씨에 가까웠습니다.

사회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올드하고 보수적이며 노인 인구 비율도 굉장히 높아보였습니다.

혁신적인 도시재생의 도시 빌바오나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몬드라곤에 대해 기대한 이미지와는 사뭇달랐습니다.

빌바오와 몬드라곤에서 일어난 혁신들은
어떻게 보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

여기에 비하면 산세바스티안은 굉장히 깔끔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했습니다.

프랑스에 가까운 지역이라서 그런지 건물들이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보였고,
실제로도 '리틀 프랑스'라는 별명으로도 많이 불린다고 합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도 아름다웠지만,
실제 도시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닐 보이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였습니다.

주일이라서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기는 했지만,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과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가 인상적이였습니다.

과하지도 않고 깔끔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간판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물과 거리, 도로, 간판,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빌바오와는 사뭇달랐습니다.

빌바오(40) 이어서 바스크 지방의 2 도시(20)이지만,
평균 소득이나 집값등을 고려했을 생활 수준은 오히려 높다고 합니다.

특히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했지만,
저희가 방문한 집의 요리는 너무 짜서 먹을 없었다는...

(스페인 음식 대부분은 한국인의 입맛에 짜기에, 주문할 때 반드시 안짜게 해달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

주일날 오전에 연수팀은 하나의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곳은 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시골인데요, 바로 마틴 교수의 고향 동네입니다.

저희가 굳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도시가 아닌
일반적인 시골 마을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틴의 고향이기도 하구요)

우선 마틴의 아버지가 30년간 근무한 공장에 갔습니다.
일요일이니까 당연히 공장이 열지않고, 주변에 모든 공장이 닫는다고 설명합니다.

어쩌면 당연스러운 설명이 저희에게는 당연스럽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대부분, 특히 중공업에 관련된 공장은 1년간 공장이 멈추지 않습니다.

경제적 효율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3교대로 꾸준히 돌려줘야하고,
감각상각을 계산한다면 중간에 공장을 멈추고 주말에 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드라곤 주변에서는 주일까지 가동하는 공장을 찾아볼 없었습니다.
이는 몬드라곤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일반적인 공장들에 공통된 사항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쉴때는 있어야 진정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내 중심가로 이동을 해보니,
전형적인 스페인의 마을 구조가 나타났습니다.

조그만 개울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다리를 건너서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면 정사각형 모양의 광장이 있고 뒤로 성당이 위치합니다.
광장 한쪽 편에는 시청이 있고, 광장의 다른 한편에는 집권당의 당사가 있습니다.

(스페인이 남미에 진출하면서 마을을 만들  동일한 구조가 적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있으며 상점과 주택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광장 구석에는 당연히 핀쵸를 파는 바들이 있었고, 천막을 쳐놓고 서서 핀초를 먹습니다.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 우리팀도 비를 피해 천막으로 들어가 와인을 마셨습니다.
100
주년 기념 포럼에 참석한 선발대는 벌써 4일째 이런 문화를 일상으로 즐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당 미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광장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80
고령의 마틴교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희와 인사를 있었습니다.

마을 공동체답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동양인 단체 관광객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던 같습니다.

마을의 동네 구석까지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아기자기한 시골 동네의 풍경이 정겹게만 느껴졌습니다.



+

빌바오 > 엘고이바> 산세바스티안 > 몬드라곤


저희 연수팀은 1주일간 4개의 색다른 도시를 경험할 있었습니다.


물론 지리적으로는 몬드라곤 인근의 몇개 지역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시내 중심가를 직접 걸으면서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있었던 곳은 4군데였습니다.

유럽 문화 도시로 선정된 산세바스티안은 다른 동네와 분위기가 사뭇달랐지만,
이는 바스크 지역의 도시 분위기를 대조적으로 느끼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빌바오는 도시 재생으로 신도심의 분위기가 많이 고급스럽고 세련되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도심의 분위기는 다소 올드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더욱더 올드함이 강하게 느껴졌고,
약 8만명의 직원이 일하는 대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분위기였습니다.


그냥 한국의 지방에 위치한 오래된 중소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반면, 마틴의 고향은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상당히 남아있었습니다.
한국 시골 동네의 중심가가 구심점이 없이 그냥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광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였습니다.

가장 부러운 점은 사람들이 모일 있는 광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종교와 정치, 그리고 사회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며 누구에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할  이미 민주주의는 동력을 잃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지식 창출을 위한 대화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새로움을 만들어냅니다.


마을의 자치를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 갖춰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최근에 시청앞에 광장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아직은 너무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바스크 지방의 도시들의 모습은
한국의 마을과 도시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