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2016.04.28_몬드라곤 연수단 - Ep.11 쿠페라 (Koopera)와 한국의 자활기업

바스크 지역에는 굉장히 많은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협동조합이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일원은 아니죠.


오늘은 특별히 몬드라곤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참고할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협동조합을 방문했습니다.



쿠페라는 1992년 카톨릭 기반의 국제적인 NGO인 카리타스가

몬드라곤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협동의 모델을 만들고자 설립한 2차협동조합입니다.


카리타스는 1897년 독일 카리타스의 설립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긴급구호와 국제 개발을 위한 비영리 기구로

개별적으로 활동하다가 국제적 연대체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165개국에 퍼져있습니다.


카리타스의 경우에는 한국의 협동조합 운동과도 인연이 매우 깊습니다.


1972년 강원지역 집중호우 발생하였고,

당시 피해지역의 대부분은 원주 교구 관할이였습니다.


원주 교구의 지학순 주교는 전 세계 카톨릭 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독일의 카리타스와 미네레올이 지원해준 3억 6천만원은 구호활동의 핵심 자금이 됩니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1973년)'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구호활동이 시작되었고,

원주 지역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원주 지역 시민운동의 핵심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때 합류한 맴버들이 사실상 오늘날의 한살림을 만든 주역들이 됩니다.

 

이후 1975년 지학순 주교를 초대 총장으로 인성회(仁成會)가 만들어지고,

국제 카리타스의 정회원으로 등록되었으며, 현재는 한국 카리타스 정식 법인(2010)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협동조합 운동에 역사적 사건을 함께했던 카리타스가

스페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쿠페라(Koopera)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와 환경의 혁신으로 크게 5가지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영역은

사회적 소외계층에게 취업을 알선해주는 자활이라는 부분입니다.


재활용 시장을 기반으로하는 자활기관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시면 이해하시기 쉬울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도 자활단체는 많고, 아름다운 가게처럼 재활용시장도 존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묶일 때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는

우리가 예상하던 것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에도 자활센터는 많이 존재하고, 재활용 사업도 따로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자활센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일반 사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카리타스에서 쿠페라를 만든 것은 협동조합이 가진 가능성 때문이였습니다.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을 운영할 경우 가질 수 있는 규모의 경제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협력이라는 가치를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쿠페라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소외계층입니다.

홈리스, 마약/술 중독자, 매춘부, 미혼모, 해체 가정 자녀, 가출 청소년 등


이들에게는 일자리도 필요하고 일할 수 있는 스킬도 배워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함께 일하고 협력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쿠페라에 조합원으로 남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일자리가 있지 않기에,

다른 조직에 가거나 활동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일만 잘하는 노동자를 양성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방식과 정신이 필요했고, 현재는 사업적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작은 기관들이 생겨나서

2006년 오늘날의 형태인 2차 협동조합이 만들어졌고,

2013년 에는 발렌시아에 동일한 모델이 만들어졌으며,

칠레와 루마니아에서도 관련된 프로젝트가 진행중입니다.


현재 10개의 자활센터가 지역별로 만들어져서 운영되고 있으며,

9개가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제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매장은 총 31개가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자활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숫자가 약 2400명 정도되는데,

쿠페라에 고용된 사람이 433명이니까 전체 자활 고용의 15%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5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고 있고,

매출이 1억4800만 유료(약 196억)이고 수익률은 약 2% 정도 된다고 합니다.


수치 상으로만 보면 사실 한국에 비해서는 크게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은 약 550개의 자활기관에 5만 명 정도가 현재 고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복지와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한국의 자활은 전체 규모면에서 스페인을 압도합니다.


또한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2015년 기준)의 경우에는

매출액 242억 / 직원수 406명 / 자원봉사자 4000명으로 쿠페라와 규모가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매장 숫자는 아름다운가게가 149개로 쿠페라 31개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편입니다.

설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공장 내부 시설을 구경하고 빌바오 시내에 있는 쿠페라 매장에 가보니

비즈니스적으로는 아름다운 가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가게가 주로

임대료가 낮은 주요 상권에서 살짝 벗어난 곳 작은 규모로 위치해있다면,


쿠페라는 일반 패션 브랜드와 별 차이 없이 시내 한복판 아주 넓은 공간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하고

너무나 다양한 물품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옷의 상태들도 굉장히 깨끗해서 중고 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 비결은 90% 이상의 제품들이 이미 깨끗히 세탁이 된 상태에서 수령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버려야하는 옷들을 주로 기증하는 것과는 관점이 다르기에 가능한 일 입니다)


핵심 기술에 대한 유출과 자활 근무자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작업장 내부에서 사진을 못찍게 했지만 물류 시스템도 상당히 수준이 높아보였습니다.


사회운동차원이 강한 한국의 사회적기업이나 자활단체들과는 조금은 다름이 느껴졌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는 바스크인들의 마인드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참여자수와 사업 규모만으로는 아주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재활용사업에 대한 물류 시스템이나 운영 노하우 등에서는 굉장한 전문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쿠페라(Koopera)의 방문은 연수단에게 2가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수치적으로는 한국의 자활관련 기업들이 훨씬 더 활성화되어있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보면 쿠페라 정도의 수준에 올라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자활관련 종사자가 2400명 밖에 안되는 스페인이지만,

50000명이나 되는 한국에 쿠페라 정도 수준의 자활기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장 성공한 사회적기업이라는 '아름다운가게'의 경우에는

수치상으로는 쿠페라와 비슷한 규모이지만 단위 매장의 경쟁력에서는 훨씬 부족해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름다운 가게'의 경우에는 자활기업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자활기업이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가질 때 가져오는 효과입니다.


한국의 자활기업들은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그자체에만 주목하지만,

쿠페라의 경우에는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사회구성원이 되는 훈련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단순 일자리 창출을 넘어서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때

일반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 가서도 사회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협동조합을 단순히 운영체제로만 본 것이 아니라 교육방식으로도 본 것입니다.

이는 협동조합에 대해서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학습의 장'으로 그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한국의 자활기업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줍니다.


자활기업이나 복지기관에서 가끔씩 터져나오는 인권의 문제 역시

협동조합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드시 해결되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들인 듯합니다.


물론 현장에 계신분들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고, 당연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쿠페라가 보여주고 있기에 고려해볼만 합니다.

(그게 설사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겠죠.)



[HBM] 2016.04.23_몬드라곤 연수단 - Ep.01 빌바오 공항과 가톨릭 문화


해외에 나갈 때 공항은 언제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수많은 이별과 만남이 있는 곳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곳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공항들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손을 통해서 세계적인 건축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의 뉴욕 JFK공항과 워싱턴 델러스 공항,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홍콩 첵랍콕 공항과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커티스 펜트레스(Curtis Fentress)의 덴버 국제공항, 인천 국제공항, 산호세 국제공항 등


어느새 공항은 그 기능성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빌바오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입니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명소답게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손을 거친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디자인한 빌바오 국제공항 역시

'라 팔로마(La Paloma/비둘기라는 뜻)'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계적인 건축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건물 중앙에 있는 세모꼴 돌출부의 양쪽에 대칭으로 펼처진 날개 형상이

하얀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데,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사진 출처 : getty image)


빌바오 공항은 쾌적한 내부 공간 디자인으로도 유명한데,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쪽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있는 외팔보(cantilerver)공법을 활용해

실내에 기둥이 없어서 시원한 느낌도 들고 공간에 대한 효용성도 높였다.



빌바오 시내에서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의 손을 거친

또 하나의 명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스크어로 '하얀 다리'라는 의미를 가진 '주비주리(Zubizuri)'는

현수구조(철골구조물로 다리를 매달아서 지탱하는 공법)으로 지어진 다리입니다.

(다리 뒤로는 일본의 건축가 이소자키가 설계한 쌍둥이 빌딩도 보이네요)


빌바오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해보니,

숙소 바로 옆에 성당(Basílica de Begoña) 하나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바실리카(Basílica)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고풍스러운 것이 역사가 오래된 성당이라는 것을 지레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간 날때 한 번 살짝 산책이나 가보면 좋겠다~'

생각하고 숙소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산책 갈 타이밍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숙소에 들어간 2진은 바로 짐만 숙소에 풀어두고,

 먼저 일행을 기다리고 계시던 송신부님과 함께 바로 저녁 먹으로 길을 나섰는데...


엘고이바(마틴 고향)를 방문하고 돌아오기로 했던 1진이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송신부님을 따라 자연스럽게 성당을 구경하게 됐습니다.



성당 앞 길에 있는 플라타나스 나무들은 아쉽게도

모두 가지치기가 되어있었고, 서로 가치를 엮어놓은 모습이였습니다.

(타이밍이... 나중에 오면 참 이쁘겠네요...)


마침 토요일 저녁 미사가 진행중이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이번 연수는 가톨릭 미사로 첫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성당에 계신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어딜가나 노인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성당은 1503년 처음 지어졌지만, 

지금의 모습은 1610년경에 만들어졌고, 전형적인 바실리카(Basílica)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바실리카(Basílica) 형태 알아보기 > 클릭


성당은 웅장했고, 조용했으며 왠지 모를 성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같은 범인들은 유럽의 흔한 고딕 양식 성당과 차이점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를 어여삐 여기신 송경용신부님께서는 일행들이 보지 못하는
이 성당이 가지고 있는 3가지 특이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첫번째로는 스테인글라스 위주로 양식되어있는

다른 유럽의 성당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성화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성당이 상당부분이 전쟁으로 파괴되어서 후대에 다시 지어졌다고 합니다.)


스테인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활용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대부분 성당들의 전통적인 방식인데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재단의 한가운데를 성모마리아 상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성상이 한쪽 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성당에서는 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게 이 성당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빌바오 지역의 특징인지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빌바오나 바스크의 특징은 아닌 듯합니다)


빌바오 산티아고 성당의 가운데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상이

산세바스티안 선한 목자 성당의 가운데에는 양을 치는 예수님 상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특징은 바닥이 살짝 기울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성당은 그 시내의 중심지역이나

아주 높은 곳에 잘보이게 위치하는데요.


빌바오 같은 경우에는

언덕의 높은 지역에 베고 나 성당(Basílica de Begoña)이 있고, 

시내 한 복판에는 산티아고 성당(Catedral de Bilbao - Santiago)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 언덕에 만들어진 성당의 경우에는 자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재단쪽이 약간 높게 기울어진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설계될 경우에는 신도들의 입장에서 재단을 보면서,

마치 천국으로 점차적으로 올라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베고 나 성당(Basílica de Begoña)의 경우에는

바스크 지역의 가톨릭 문화와도 많은 연관성과 역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스크 지역은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의 지역들보다 가톨릭이 늦게 전파되었습니다.

이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특성과 관련이 있는데, 8세기 프랑크 왕국을 통해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가장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고,

현재에도 약 90%의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로 분류될 정도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입니다.


심지어는 가톨릭에서 매주 금요일과 성스러운 날 뜨거운 피를 가진 동물을 못먹게하자

소나 닭을 못먹을 때를 이에 대한 대용품으로 고래고기가 유럽 전역에서 유행을 하게 되는데

고래잡이를 상업적으로 처음 시작한 것도 바스크인들이라고 합니다.


특히나 가톨릭 2000년사에 길이 남을 인물인

예수회를 창시한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가 바스크 출신입니다.


또한, 최근에 한국에서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레자의 길의 경우에도 바스크 지역을 관통하게 되어있습니다.

(콤포스텔라는 바스크 지역은 아니지만, 루트의 주요 스팟이 바스크를 관통합니다)


+


가톨릭이 바스크 지역에 뿌리를 내린 이후에는

바스크 지역의 오랜 투쟁의 역사에서 성당은 중요한 구심점의 역할을 합니다.


특히나 베고 나 성당(Basílica de Begoña)의 경우에는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나폴레옹 전쟁과 2차례에 걸친 칼리스트 전쟁에서 중요한 거점을 활용됩니다.


그 과정에서 건물이 상당부분 손상되지만

1876년 다시 복원되어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20세기 들어 프랑코 독재 시기에는

정부에 대항하는 모임 장소로 성당이 주로 활용됩니다.


칼리스트 전쟁 시에는 가톨릭 신자인 칼리스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것과

바스크 지역의 분리 독립에 대한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정부군과 전면전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면,


프랑코 독재 시기에는 가톨릭을 옹호하는 프랑코의 특성을 활용해서

안전하게 분리 독립을 위한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피난처로써 성당이 활용되었습니다.

(프랑코 독재 시기의 모든 지역의 성당은 중요한 정치적 거점이 됩니다.)


이렇게 베고 나 성당(Basílica de Begoña)뿐만 아니라

바스크의 전 지역에 걸쳐서 성당은 중요한 문화적 정치적 거점으로 활용되었고

그만큼 가톨릭 문화는 바스크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는 몬드라곤과 협동조합운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가 몬드라곤에 심어둔 협동조합 정신은

바스크의 지역적 특성과 가톨릭 문화를 영향력을 빼놓고 설명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이번 연수은 몬드라곤의 현재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뿌리가 되는 바스크 지역과 가톨릭 문화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이번 연수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든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