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2016.04.25_몬드라곤 연수단 - Ep.04 라보랄 쿠차(Laboral Kutxa / 구 노동인민금고)



그동안 호세 마리아 신부를 중심으로 몬드라곤의 기본 정신을 살펴 봤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현재의 몬드라곤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저희가 방문하기로 한 기관은 총 11곳이였습니다.


Otalora, Laboral Kutxa

MCC HQ / Lagun Aro / LKS,

Mondragon University & MTA / BBF & TZBZ

Saiolan / Koopera

ULMA Group / Fagor industrial


하루에 2~3기관 정도를 방문하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지만,

연수가 다 끝나고 나서는 이것도 좀 모자른 듯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Eroski나 Oinarri 등의 기관들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일단 이번 연수에서는 산업체를 지원해주는 기관들 위주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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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설립된 노동인민금고(Caja laboral)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몬드라곤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는 대충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시기 상조라는 울고(ULGOR)이 지도자들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호세 마리아 신부는 다른 제자를 설득해 Caja laboral의 설립을 강행합니다.


하지만,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울고의 핵심맴버들이 Caja laboral에 합류하면서

사업은 급성장을 했고 신용조합을 넘어서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자본 조달을 목적으로 한 호세 마리아 신부의 최초 구상이 실현된 것이죠)


Caja laboral은 몬드라곤 내의 최초의 2차 협동조합입니다.

2차 협동조합이란 법인들이 조합운영에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담금을 지불한 다른 협동조합의 최고 경영진들이 2/3을

그리고 나머지 1/3은 직원조합원들의 대표들이 모여서 이사회를 구성합니다.


회원협동조합들은 4년에 한번씩 Caja laboral에 대한 회계감사 권한을 가지며,

사회적 또는 기업적 관점에서 감사도 실시해왔습니다.


(Caja laboral의 로고 변천사 - 출처: Laboral Kutxa 공식블로그)


이후 노동인민금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생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업국'이라는 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회사가 설립되어 손익분기점을 지나 이익을 내려면

최소한 3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기간동안 손실을 부담해주면서 신생기업을 발굴합니다.


회사 설립 후 몇 년간 회사 손실의 30%만 당시 비용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70%는 자본계정에 계상하여 7년간 상쇄하기도 하였으며

회사의 경영자체가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직접 개입하여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이는 몬드라곤 그룹 성장의 원동력이 됐으며 

단순히 금융 지원만 아니라 경영 전반에 대한 내용도 컨설팅까지 해주게 됩니다.


몬드라곤의 성장기 Caja laboral은 새로운 기업의 설립에 주목했으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는 위기에 처한 협동조합을 도와주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몬드라곤 성장의 원동력이였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역할을 변경한 것입니다.


또한, 1982년 스페인 경기가 침체되면서 정부차원에서 노동인민금고에게

전체 자산의 15% 범위 안에서 일반인 대출을 허용해주라고 요청을 하게 됩니다.


이는 노동인민금고가 본격적으로 일반인 시장에 진출하게 좋은 계기가 되고,

1982년 라군-아로와 손을 잡고 라군-아로 보험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으로 금융그룹으로 확장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82년 노동인민금고는 기업국의 분리를 시도합니다.


하나의 조직이 재정과 기업 관리 기능을 동시에 맞는 것이 좋지 않으며,

LKS로 분리하는 것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 보다 용이하기 때문이였습니다.

(이 내용은 LKS 방문기를 다룰 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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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몬드라곤 역사에 한 장을 장식한

Caja Laboral의 이름이 낯설게 변했습니다.



2012년 CAJA LABORAL과 Ipar Kutxa 가 합병을 해서

LABORAL kutxa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2012년 IMF 구제 금융 이후 스페인의 은행들은 인수합병을 통해서 대형그룹으로 거듭납니다.

각 지역에 위치한 협동조합들도 자연스럽게 합병의 단계를 걷게 됩니다.


예금유치가 어려워지면서 저축은행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까사마리라는 제일 큰 신용조합도 일반은행으로 전환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strengthen a financial institution of social economy, that would provide services in its current market based on an alternative model to the one resulting in Spain as a result of the banking process of credit unions"


2012년 3월 처음 공식적인 대화를 시작한 두 기관은 명확한 목적을 설정했고,

Ipar Kutxa 역시 신용조합이였기 때문에 가치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스러운 방식으로 합병을 진행합니다.

(합병 당시 고객수나 자산 등의 지표에서 10배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2012년 3월 합병을 결정하고도 7개월간의 과정을 거치면 천천히 진행되었고,

각자의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하다가 2013년 6월에 드디어 이름을 변경하면서 최종적으로 합병이 완료됩니다.


합병 이후 가장 큰 효과는 업무 효율성이 증대되었다는 점입니다.


Caja Laboral은 규모가 10배 정도 컸지만

오래된 직원이 많았고 시스템도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반면에 Ipar Kutxa의 경우에는 젊은 직원이 많았고,

지점의 위치도 90% 이상이 Caja Laboral 근처에 위치하면서 불필요한 지점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지점 당 직원수를 늘리고 IT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오래된 분은 

61세에 조금 일찍 명예퇴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습니다.


몬드라곤의 경우 명예퇴직은 진짜 명예퇴직이라서

서로 빨리 명예퇴직을 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싶어합니다.

(노후 보장이 잘되어있기때문에, 일찍 퇴직하고 연금으로 생활하는 삶을 즐깁니다)


합병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난 로고도 매우 인상적인데요.

두 기업의 정체성을 아주 절묘하게 잘 살린 광고 캠페인도 합병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합병으로 인해서 Laboral Kutxa는

바스크에서 가장 큰 신용조합이면서 동시에 3번째로 큰 금융기관이 되었고,

스페인 전체에서는 3번째로 큰 신용조합이며, 유럽에서는 유일한 노동자 협동조합 은행입니다.

(유럽 내 훨씬 큰 규모의 협동조합은행이나 신용조합은 많이 존재합니다)


현재 110개의 협동조합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으로는 1,950명이 근무중입니다.


합병이후 총회의 구성이 좀 변경되어서

협동조합 대표단이 55%, 노동자들이 45%를 차지하고 있구요.

이사회는 그대로 협동조합 대표 8명과 노동자 대표 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자산이 246억 유로, 자본금 14.4억 유로, 수익 1억 유로

고객수 1,182,000명, 노동자 2,026명, 지점수 370개(73%가 바스크 지방)를 기록중입니다.

(2013년 12월 3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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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ral Kutxa의 특징 중 하나는 그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50%는 적립금으로 남겨두고,

10%는 교육 및 촉진 기금으로, 15%는 연대기금으로 남겨둡니다.

(나머지 25%는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하구요)


결국은 몬드라곤에 있는 기관에 30% 정도가 돌아가게 되는데는

이 금액이 지난 12년간 4억 유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또한, 빌바오 지역의 청년 실업률이 50%에 달하자

1994년부터 소규모 비즈니스를 위한 Gaztempresa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2002년에는 재단을 설립해서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합니다.



처음에는 카리스타(가톨릭 계통의 NPO)와 함께 시작했으나

점차적으로 바스크 정부와 몬드라곤도 참여하면서 120만 유로의 기금이 급증합니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Gaztempresa에 지원을 하게 되면,

인터뷰를 통해서 50% 정도만 선정이 되고, 이 중에 50%는 사업 계획서 단계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사업을 런칭한 경우의 3년 후 생존률은 80% 정도 수준으로 매우 높다고 하네요.

(결국 지원자 중에 20%만 사업에 성공해서 생존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식당이나 숙박업(13%)이 가장 많고, 헤어샵&화장품샵(12%), 옷가게(10%)

청과물상(10%), 문화&교육(7%), 운송수단(7%), 프리랜서(6%) 정도로 분포되는 것을 봐서는

진짜로 청년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1994년 이후 3000개 이상의 새로운 사업이 창출됐고, 6000명 이상이 고용되었다고 합니다.

2014년에도 4개월만에 263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하니 실적이 꽤 좋은 편입니다.


100만 유로도 안되는 예산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바스크의 대표적인 자영업자 개발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Laboral Kutxa에서는 이를 위해서 60만 유로의 대출을 해주고 있으며

Gaztempresa 의 자원봉사자 가운데 38%는 Laboral Kutxa 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맞아주신 분은

Jon Emaldi Abasolo, Business Model and Quality Director 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책을 받으시고 어찌나 기뻐하시는지...)


Jon Emaldi Abasolo은 금융위기에서

Laboral Kutxa가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로


우선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에서도 깨끗했던 점을 들었습니다.


고객과의 관계도 좋은 편에서 고객들의 신뢰도 있었고,

필요한 시기에 합병에도 성공했던 점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대출은 초창기 75%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2.5%밖에 안되는데

이제는 협동조합을 지원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페인 정부에서는 더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대규모의 협동조합들이 이제는 Laboral Kutxa에 의존하지 않고 15개 정도의 은행과 거래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규모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아직도 자금조달의 25% 정도는 Laboral Kutxa에 의존합니다)


어느새 Laboral Kutxa의 기능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네요.


하지만, 대규모 협동조합이 이제 더 이상 Laboral Kutxa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일반은행들의 의식수준이 많이 달라졌고, 그만큼 사업적으로도 안정됐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Laboral Kutxa의 설립 기능을 생각한다면

소규모 협동조합에 대한 자금조달에 주목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구요.


다면, 또 한 번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Laboral Kutxa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냐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듯합니다.


Caja Laboral의 초창기 모델조차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

Laboral Kutxa의 이러한 걱정들이 한 편으로는 부러운 것도 사실이네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인 시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설립 정신을 잃지 않고, 성공적으로 합병을 이루어낸 점에서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Caja Laboral이 그랬던 것처럼 Laboral Kutxa도

몬드라곤의 심장으로써 수많은 협동조합을 도와주는 역할을 잘 수행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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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Laboral Kutxa의 경우에는 바스크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 농구단의 메인 스폰서를 하고 있습니다.


Deportivo Saski-Baskonia S.A.D.


덕분에 Laboral Kutxa에 정보 검색을 하면

농구단에 대한 정보 중에서 옥석을 아주 잘 골라야 한다는 함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