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3 Learning Journey in Seoul


유럽에서 3명의 친구들이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ILO에서 주최한 SSE Academy (Social Solidarity Economy Academy)와

한겨례에서 주최한 ANYSE(Asia Network for Young Social Enterpreneurs)에 초청된 3인


Jon Abaitua(MTA/ TZBZ) 

Markel Gilbert(MTA/TZBZ)

Leire Luengo(CICOPA)


아들은 한국의 사회적경제 관련 기관들을 방문하며 한국의 상황을 더욱더 이해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앞으로 사회연대경제 관련해 더 많은 국제 교류가 있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시간들이였습니다.


+


이들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서울혁신파크'였습니다.

ILO 아카데미의 오프닝 파티가 열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었는데요.


서울혁신파크의 규모나 활동들은 엄청난 임팩트를 주었습니다.


지방정부가 주도한 사업으로 이렇게 대규모 단지가 조성되고 활동가들이 등장했다는 점은

아카데미에 참가한 아시아 친구들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초청받은 친구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였습니다.


바스크나 벨기에 지역에도 이러한 거대 공간을 조성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새롭게 짓고 있다는 건물들에서는 숙박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활동이 가능했습니다.


그동안 기존 건물을 활용하는 수준이였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공간이 조성되고 활동들이 추가로 전개될지 매우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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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SSE Academy의 현장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추가로 두 군데를 더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사회연대은행'과  '해피브릿지협동조합'이였습니다.


사회적 금융과 노동자협동조합의 대표기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사회연대은행에서는 신협과 한국사회투자 관계자들까지 자리에 함께 주셨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적금융의 전문가인 캐나다의 Concordia 대학의 마가렛 멘델교수나 ILO 전문가가 동행했기에,

굉장히 뜨거운 논의가 이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요.


한국의 경우 서울시에서 조성한 자금이 큰 마중물이 될 수 있었는데,

법률이 변경되면서 이 돈을 다시 환수하는 이슈에 대해서 모두들 안타깝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또한, 금액으로만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규모인데

실제 구현되는 과정에서는 마이크로크레딧 성격보다는 창업지원의 성격이 더 강하게 느껴졌는데요.


이러한 부분은 민간펀드가 아닌 정부펀드가 가진 한계였던 것같습니다.

반드시 실적이 증빙되야만 하기에 손실을 보면서 운영할 수는 없었던 것같네요.


이제 이슈가 임팩트금융으로 넘어오면서 민간펀드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사회적금융의 2기가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기대가 되는 부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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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브릿지의 경우에는 예상치도 못하게 뜨거운 반응이 나왔습니다.


물론 도쿄스테이크 남산타워점에서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은 것도 한 몫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남산타워도 가보고, 외국인들 입맛에 맞는 도쿄스테이크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는 것 자체가 아시아 국가들에는 굉장히 새로웠습니다.

법률적인 지원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창립맴버가 조합원들과 이익을 공유한 진정성에서도 공감을 얻었고,

비즈니스적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부분도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협동조합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사실상 해피브릿지는 주식회사에서 전환한 경우이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노동자협동조합들도 방문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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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쿱연합회의 추천을 받아서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가사노동자협회와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설립된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유지보수협동조합은 빠른 성장을 하다가 정체기를 맞이한 상황이였고,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하다가 정체기를 맞이한 상황이였습니다.


두 조직의 고민은 공통적으로 조직 운영 관리와 교육에 있었습니다.

일정 규모에 도달하자 조합원들의 역량 강화와 비즈니스적인 혁신이 필요했는데요.


이런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가장 궁금해하셨습니다.

CICOPA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례라든지, MTA의 교육 노하우가 이들에게 도움일 될 듯 보였습니다.


해피브릿지에서도 MTA를 조직 혁신의 새로운 돌파구로 접근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다른 노동자협동조합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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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과는 다르게 이미 거대한 규모를 구축한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도 방문했습니다.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의 경우에는 좀 색다른 측면이 있었습니다.


아이쿱 입장에서는 워낙 작은 조직이기에 본인들 별로 볼 것도 없다고 이야기하시는데,

한국의 노동자협동조합 입장에서 보면 단일조직으로는 해피브릿지 다음으로 큰 규모입니다.

(아이쿱의 관점에서 보느냐, 노협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네요.)



아무튼 아이쿱의 성장 스토리와 최근 활동은 유럽 친구들도 놀랄 수준이였습니다.

MTA친구들은 계속해서 몬드라곤은 아이쿱을 배워야만 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아이쿱은 유럽에서 온 친구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고,

협동조합의 미래를 볼 수 있었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쿱의 활동에 대해서는 사실 국내에서는 약간 평가 절하된 부분이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해외에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듯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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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협동조합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성공회대도 방문했습니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 이들의 흥미를 자극했습니다.


성공회대의 학풍이나 위치, 규모, 분위기 등이 몬드라곤 대학과 많이 닮았다는 점에서

MTA 친구들은 굉장히 큰 관심을 보였고 향후 협력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최근 HBM연구소도 몬드라곤대학과 협력 관계를 더 깊게 가져가기로 했는데요.

성공회대와의 더 많은 협력도 기대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젊은 협동조합 활동가들과의 번개모임도 진행했는데요.

급작스러운 번개라서 많은 청년들이 함께하지 못했고 쿠피와 치유소(협동가치공유연구소)가 함께했습니다.


'청년협동조합연합회'에 대한 유럽에서의 경험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세대별 모임을 연합회로 구성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사항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유럽에서는 세대별 모임의 경우 대부분 네트워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의견도 전해주었습니다.


연합회냐 네트워크냐, 이것저것 고민이 많던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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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선지는 성수동의 핫플레이스 '헤이그라운드'였습니다.

아직 오픈한지 1주일 밖에 안되서 아직도 중간중간 공사중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소셜영역에서는 가장 멋진 공간을 조성했음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체인지메이커들이 부러울 정도였네요.

지방정부주도로 공간이 조성된 '서울혁신파크'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였습니다.


과연 여기에 입주한 소셜벤쳐들이 어떤 일을 벌려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헤이그라운드를 나선 이후에는 성수동 일대를 살짝 돌아봤습니다.



언더스탠드에비뉴, 디웰하우스와 오늘살롱, 카페성수 등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성수동만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삭막했던 성수동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소셜벤쳐들이 들어섰다는 것이 매력적이네요.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숨겨져있는 명소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는...


암튼 불광동 일대의 사회혁신가들과 협동조합운동가들, 그리고 성수동의 체인지메이커들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색깔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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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러한 모습들이 유럽에서 온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우선 가장 먼저 돌아온 의견은 색깔은 다르지만 더 많이 연대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룹들이 사회혁신 생태계를 만들어간다면 아주 멋지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직까지는 잘 되고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왜 그런지는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남져진 새로운 도전으로 보이네요.


하지만, 이제 각자의 영역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많은 교류와 연대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두번째로는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사회연대경제의 급격한 성장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 주도의 성장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시의 경우에는 자체적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앞으로 더 지켜봐야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몬드라곤, 볼로냐, 퀘벡 모델과는 또 다른 서울 모델이 기대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해줄만한 곳들이 많다는 점이 아주 즐거운 시간이였습니다.


CICOPA와 몬드라곤팀아카데미(MTA)에서 왔기 때문에

주로 노동자협동조합과 사회혁신생태계 위주로 돌아다니게 되었는데요.


다음에는 다른 유형의 협동조합과 체인지메이커들도 만나보면 좋겠네요.


즐거운 서울의 Learning Journey였습니다.


2017.03.31 MTA Korea 제주도 Learning Journey

MTA Korea 런칭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세미나 겸 현장방문도 할 겸 제주도 Learning Journey를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유채꽃과 벛꽃이 함께피는 4월에 제주도에 놀러가려는 목적이 다분했으나...


역시나 현장방문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밤센 토론까지 하면서

MTA Korea 런칭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아무래도 주말에 다녀오다보니 방문기관을 어레인지하는 과정에서 동선이 꼬이는 상황이 발생했는데요,

많은 시간을 이동에만 소모하면서 역시나 현장방문은 평일에 해야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2박3일 일정 중에 역시나 가장 중요한 일정은 먹는 시간이였습니다.

몸국, 갈치국, 장어된장, 복김치, 옥돔, 고등어회 등 제주의 해산물을 마음껏 먹어볼 수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여기는 HBM 연구소의 공식블로그이다보니

먹는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걸로 하고 현장방문 위주로 후기를 남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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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저희가 방문한 곳은 오픈칼리지(Open College)입니다.



이미 서울에서 성공적인 사회적기업으로 정착 오픈칼리지가

작년 10월부터는 제주로 일부가 넘어와서 새로운 캠퍼스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오픈유니브(Open Univ)라는 대안대학 프로그램이였습니다.

작년에 서울캠퍼스에서 시범사업으로 3차례 운영했던 프로그램인데 올해는 제주에 공식 런칭을 했습니다.


학년제가 아닌 레벨제를 도입해서 기간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서 레벨을 구분하고,

레벨에 맞는 단계별 학습을 자유롭게 진행하는 굉장히 오픈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시간표를 비롯한 모든 커리큘럼도 학생들이 알아서 짜게 되고,

모든 프로그램 운영도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하면서 의사결정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제주라는 천혜의 환경에서 자유롭게 공부를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습니다.



또한, 흥미로웠던 부분은 17명의 입학생 중 상당수가 대학졸업생이라는 점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가기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진짜 나를 찾기 위해서 왔다는 그들,


심지어 제주출신은 4명밖에 안되고 나머지 친구들은 육지에서 건너왔다고 합니다.

청년들이 육지로 떠나는 것이 고민인 제주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낯선 땅인 제주에 온 것일까요?

학위도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에 대한 진정한 배움이 느껴졌습니다.



아직 정식 런칭한지 한달밖에 안된 상황이라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꽤 놀라운 실험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표정이 너무 밝은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성취해야만 하는 경쟁 사회에서 살던 친구들이

자유를 찾았고 친구를 찾았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은 대학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용기있게 도전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였습니다.



오픈유니브에 비하면 MTA는 창업에 철저히 포커싱이 맞춰져 있고,

어느 정도 비즈니스 역량 개발을 위한 정형화 된 포맷과 다양한 스킬들이 있는 편입니다.

(아마도 서로서로 장단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MTA가 가진 창업교육에 대한 노하우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오픈유니브와 결합한다면 새로운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같다는 기대를 갖게하는 만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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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후발대까지 합류하면서 새벽 3시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다들 부지런하신 관계로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모닝커피와 함께 자연을 즐겼습니다.


자연환경도 너무 좋고 숙소가 너무 좋아서 더 밍기적거리고 싶었지만,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아침부터 서둘러 숙소를 나와야했습니다.


숙소가 위치한 돈네코에서 제주시내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서울에서는 당연한 출퇴근 거리이지만 제주사람들에게는 큰 맘먹고 가는 거리라고 하더군요.



처음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뭔가 주소가 잘못된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에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너무 좋은 건물에 인테리어 공사가 한참이였기 때문입니다.


원희룡 지사가 선거공약으로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약속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현실에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지 못했는데 직접 방문하니 분위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센터장님 설명에 따르면 제주는 정부 정책에 있어서 반응이 1~2년 정도 늦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부분도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고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지자체들보다는 다소 느리게 이제 막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제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벌써 많은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지자체 차원의 지원도 약속된 상황이였습니다.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는 청년들도 점차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서 30~40명 정도 활동가가 있는데,

문제는 어디서나 그렇듯 알맹이는 없고 프로그램 숫자만 늘어나는 공급 과잉상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원은 많이 투입되는데 실제적으로 별로 도움은 안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고,

더군다나 섬이라는 특수환경때문에 물리적으로 육지와 분리되어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고 합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여러가지 일들을 함께해보고 싶었지만,

당장 물리적으로 가까이있는 수도권이나 충청도 지역과도 함께 일을 벌리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빨리 코치진을 양성해서 MTA 방법론을 보급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섬이라는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육지에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을 먼저 해보기에는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고

물리적으로 이렇게 좋은 인프라가 완성되었다는 점도 굉장히 좋은 시그널로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을 잘알고 사랑하는 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셨습니다.

향후 많은 일들을 함께 할만한 잠재적인 파트너들을 만났다는 것은 이번 방문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였습니다.


지역 이슈와 문제 해결에 있어서 지역을 잘 이해하는 분들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기본적이면서 외부인에게는 가장 어려운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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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여세를 몰아서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섬채'라는 친환경 로컬푸드 한식 뷔폐였습니다.


행복나눔마트는 생협이 아니라 독특하게 노동자협동조합입니다.

http://nanummartjeju.kr


유통업은 주로 이용자들이 주인이 되는 소비자협동조합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사장님은 직원들이 주인이 되는 노동자협동조합형태의 조직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식뷔폐와 온라인 쇼핑몰, 바베큐 레스토랑, 편의점까지

빠른 시간 내에 다양한 사업 다각화를 통해서 일자리를 꾸준히 창출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면서 내홍도 존재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새 제주를 대표하는 협동조합으로 성장해 많은 강연에 끌려다니신다고 하시네요.



수수한 매력의 이사장님은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야기의 끝마다 반전매력이 숨겨져 있어서 왜 제주 최고의 인기강사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해피브릿지에서 발생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이

노동자협동조합이기에 상당부분 행복나눔마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거버넌스와 조합원 교육 같은 측면에서는 비슷한 고민을 해왔던 HBM의 송인창 소장님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두분은 다음에 따로 만나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지역공동체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라이프사이클별로 모두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사장님은

제주라는 특수한 지리적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만들지 계속 고민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문어발처럼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는데,

과연 이러한 도전들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지 굉장히 궁금해지는 부분이였습니다.


역시나 여기도 앞으로 함께 고민하고 진행할 일이 굉장히 많아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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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가시리마을>입니다.


가시리 마을은 마을만들기 사업의 성공사례로 유명한 곳입니다.

원래 제주도에는 말을 키우던 공동목장이 많이 존재했는데 해방 이후 개인 소유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가시리는 마을주민들이 팔지않고 소송까지 하면서 끝까지 지켜낸 독특한 마을입니다.

SK D&D에서 풍력발전기를 이곳에 세우면서 발생한 수익을 마을 주민들이 나눠갖는 곳입니다.


2007년에는 '리'에서 <조랑말 박물관>을 설립하면서

마차체험, 승마교실, 목축캠프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었고,

2009년에는 예술인창작지원센터를 설립해서 말과 관련된 예술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2012년부터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개최하던 유채꽃축제의 사업 운영권도 마을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마침 방문한 시기가 유채꽃축제 첫날이라서 유채꽃축제의 분위기를 살짝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한참 진행되던 시기에 서울출신의 시민활동가와 마을주민들 간에는

마을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이견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마을의 공동사업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달랐고, 운영 방식과 수익 배분 방식에도 견해차가 존재했고,

이주민과 향토민 사이에는 생활 습관이나 문화적 차이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결국 마을 사업은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고,

시민활동가는 제주 내 다른 지역에서 다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시골 마을에서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은 스토리입니다.

그만큼 외부인이 들어와서 마을 주민들과 완벽히 융화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고 있는 축제 현장도 살짝 살펴봤는데,

다른 지역에서 운영되는 마을 축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들이 보였습니다.


천막을 치고 향토 지역 단체들이 음식을 팔고 있는데,

정작 외부 관광객은 거의 없고 지역 주민들끼리만 서로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습니다.

축제를 찾은 외부 관광객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아쉬운 장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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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이주민들의 제주 정착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날,

<소셜 크리에이티브> 박진호 대표를 만나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에 온지 벌써 4년이 넘었다는 박진호 대표는

너무나 귀여운 아기를 데리고 밝은 얼굴로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아쉽게도 작업실은 현재 공사중이라서 다음에 방문할 때 들려보는 것으로 했습니다)


사람에 치여서 가족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제주로 왔다는 박진호 대표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현지에 일거리가 부족해도 원격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주공항을 기준으로 서쪽의 애월과 동쪽의 월촌리에 이주민이 많이 정착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공항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이라서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도 최근에 땅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예술가들의 경우에는

점차 더 서쪽과 동쪽으로 밀려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애월은 이효리가 정착한 동네로 유명하고, 월촌리는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고 하네요.


애니웨이 사실 이주민에 청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가 자연과 여유가 그리워서 온 전문직이 많다고 합니다.


오히려 청년들은 육지로 나가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다고 하네요.

또한, 주로 전문직이나 예술가들이기 때문에 현지인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귀농인구가 주를 이루는 홍동마을에서는 농사라는 공통 분모로 엮이지만,

여기는 개인작업을 조용히 하고 싶은 사람들이 오다보니 연결고리가 약한 편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이주민들 입장에서도 일부러 융화될 필요성을 많이 못느끼는 것도 사실이구요.


제주의 인구가 최근에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청년들의 비중은 계속 줄고 있다고 합니다.

인구 구성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흐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과연 이러한 흐름들이 어떠한 모습들을 연출하게 될지 매우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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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A로 시작해서 사람과 자연, 공동체와 마을이라는 다양한 테마를 가진

제주도 Learning Journey는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밤마다 매일 토론을 이어가면서 체력이 고갈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날이 좋아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끼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아무래도 MINN에서 공식 모듈로 다시 한 번 제주를 방문해야할 듯하네요.

이정도 환경이면 내년쯤에는 MTA 제주랩을 오픈하는 것도 추진해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많은 것을 얻고 돌아간 제주 Learning Joureny

다음에는 MTA 공식 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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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쿱투어] 2016 MTA 상하이랩 & 쿤산 몬드라곤 파크 방문기

2016년 11월 인터쿱아카데미 참가자들은 MTA 상하이랩을 방문했습니다.



2014년 상하이에 MTA 프로그램이 오픈 한 이후로

한국에서 연수단이 공식으로 방문한 것은 처음이였습니다.


인터쿱아카데미는 협동조합 경영진들이 MTA방식을 활용해

1년간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봤던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http://happybridge.tistory.com/159


아카데미의 마지막 졸업여행으로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MTA 상하이랩을 방문해 Jose 팀코치와 함께 2박 3일을 보냈습니다.


인터쿱아카데미 연수단은 MTA상하이랩뿐만 아니라

쿤산에 위치한 몬드라곤 파크까지 돌아보는 목적으로 출발했습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상하이 시내에 위치한 MTA랩이였습니다.

MTA랩은 별도 공간을 가지고 있진 않고 코워킹 스페이스 내 위치해 있었습니다.


조그만 전용공간에 공동 회의실은 별도 대여하는 방식이였습니다.

중국도 스타트업이 인기를 끌면서 이러한 코워킹 공간이 엄청나게 생겼다고 합니다.


곧 MINN1기 졸업생이 만든 Impact Hub로 이사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유럽에서 온 LEINN 재학생들과 중국 현지 LEINN 재학생들이 인터쿱팀을 맞아주었습니다.

특히 이제 입학한지 2개월 밖에 안된 중국 LEINN 재학생들은 특별 브리핑도 해줬습니다.


재학생은 11명이지만 국적은 7개나 될 정도로 다국적 연합체의 성격이 강했는데,

이들은 2개월 동안 무려 200만원의 매출을 벌써 올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꿈에 대해서 그림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우리가 여기 온 것은 운명이고 우리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이제 20살 정도 밖에 안되는 친구들이 맹량 한 것이 패기있어 보였습니다.

우리에게 함께 비즈니스를 해보자며 한국에도 방문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네요.



그동안 한국에서는 MTA를 창업교육의 방법으로 기술적으로 접근했다면,

우리가 만난 LEINN 재학생들은 기술보다는 신념적인 부분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MTA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였습니다.


젊은 친구들의 뜨끈뜨끈한 열기를 받고 저희가 이동한 곳은 

상하이 최대 엑셀레이터이자 인큐베이터로 유명한 <Innospace>였습니다.



한국에서도 꽤 많은 창업 관련 인원들이 여기를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한국에 있는 인큐베이팅 공간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이기 때문에 규모가 더 큰 편이기는 했지만,

한국에도 이러한 창업 지원 공간이 너무 많이 생겼기에 특별함은 없었습니다.


Jose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Ecosystem이였습니다.

단지 인큐베이팅 대상자들만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업체도 같이 있었습니다.


서로 시너지를 내고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한국에서도 이미 시도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잘 안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녁식사는 HBM연구소 송인창 소장님의 동기들인 MINN 2기 재학생들과 함께했습니다.

MTA 상하이랩의 중국 책임자인 쿤이 멋지게 식사대접을 해주었네요.


초호화 메뉴에 눈이 똥그란해졌지만,

중국에서는 친구들이 왔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한다며 계속해서 주문을 하는군요.


역시 중국은 뭐든지 스케일에서 압도하는군요.



째날 저희는 상하이를 떠나서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리는 쿤산으로 이동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안산이나 반월 같이 서울 인근에 위치해있는 대규모 공단을 방문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몬드라곤 파크 한 가운데에는 바스크 식 건축양식을 딴 빨간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Red House라고 불리는 이곳은 바스크에 있는 초코(Txoko)를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초코가 뭔지 궁금하시다면 해피쿱투어 몬드라곤 연수기 E.10을 참고하세요.

http://happybridge.tistory.com/145


Red House는 식당이면서 동시에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외부 출장이나 방문자를 위해서 숙박도 제공해주지만, 저희는 일정상 패스했습니다.



Red House에서 Jose는 몬드라곤의 글로벌 전략에 대한 열강을 해주었습니다.

Jose의 박사학위 논문에 몬드라곤의 글로벌 전략이였으니 자신의 전공분야를 만난 샘이죠.


+


MTA상하이랩과 쿤산에 위치한 몬드라곤 파크는

몬드라곤의 상반된 국제화 전략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국제화를 시작했던 몬드라곤은

19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베이징을 시작으로, 상하이, 텐진 등으로 점차 확산되었고,

현재는 20개가 넘는 오피스와 22개의 공장이 진출해있습니다.


2006년 규모의 경제 효과를 기대해 쿤산에 공장이 모이기 시작했고,

22개의 중국 공장 중 절반인 11개가 쿤산에 몰려있습니다.


중국 시장이 막 성장하던 시기 진출했던 기업들은

중국의 성장과 함께 급격히 성장해 국제적인 기업이 되어버렸습니다.


Jose는 몬드라곤이 중국에 진출에 분명히 성공하기는 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을 생각해보면 훨씬 더 유연하게 접근해야했다고 지적합니다.


단적인 예로 중국에 진출한 몬드라곤의 공장들의 목적은 단순히 원가 절감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현지화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었고 오직 효율적 생산만 고려했습니다.


현지화를 통해서 현지 고객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텐데 몬드라곤의 경영진들은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현재도 몬드라곤복합체에 가입하려면 물리적으로 바스크 지역에 위치해야합니다.

그리고 해외 진출 역시 현지화를 고려하기 보다는 컨텐츠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만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Jose는 강력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가치는 유지하되, 시스템이나 제도 같은 부분은 유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Jose는 자신의 생각을 엽전에 비유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핵심가치는 소중하게 지켜야하지만 테두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상당히 유연하게 현지 상황을 고려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한다는 주장입니다.


기존의 방식이 오늘날의 성공을 가져왔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새로운 국제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호세가 왜 MTA를 시작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기본 가치를 왜 그렇게 중요시 여기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호세는 MTA라는 새로운 MCC(몬드라곤협동조합복합체)를 통해서

몬드라곤의 정신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싶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쿤산 몬드라곤 파크를 돌아봤습니다.

11곳을 모두 갈 수는 없어 그 중에서도 orkli 와 Fagor arrasate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둘 다 중국에 들어와서 큰 성공을 거둔 곳들이였고,

중국 현지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이 크게 필요 없는 B2B산업들이였습니다.


두 곳 모두 현지 책임자가 직접 나와서

사업 현황과 이슈에 대해서 브리핑과 질의응답을 해주었습니다.

                                           


몬드라곤은 이미 중국에 진출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어떻게 하면 바스크 현지와 중국을 잘 연결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도전 과제였습니다.


또한, 본사는 협동조합이지만 중국 현지 기업들은 협동조합이 아니기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점차 해결해 나갈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클러스터를 구성해 규모의 경제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미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방안이 없어보였습니다.


협동조합의 글로벌 전략의 특성과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었습니다.

과연 몬드라곤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MTA가 대안이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쿤산 몬드라곤 파크 방문이 끝난 후 이동한 곳은 상하이 시내가 아닌

타이후라는 거대한 호수에 위치한 Taihu Great Learning center였습니다.


고풍스러운 고전적 건물로 지어진 이 대학당은

南怀瑾(Nan Huai-Chin)이라는 사람이 중국의 고전적 교육방식을 되살리기 위해 지은 곳입니다.


숙소의 침대마져 영화에서 보던 그런 고전적인 가구로 되어있어서,

진짜 중국 특유의 스케일과 디테일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민족사관학교같은 분위기인데,

역시 중국이라서 그런지 스케일 면에서는 확실히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호수가 근처 굉장히 넓은 땅에 위치하고 있기에

자연과 함께 조용히 거닐면서 명상하기 매우 좋은 공간입니다.


호세는 어제 밤부터 도대체 여기에 우리가 왜 왔는지 생각해보라고 시키거니,

아침부터 산책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라고 시켰습니다.



센터에서 열리는 명상 수업도 참여를 했는데요.

당연히 중국인이 나올줄 알았는데, 난선생님의 오랜 친구라며 서양인이 등장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안해본 명상을 서양인에게 배우게 될줄이야...


한국에서 줏어들은 명상법과는 크게 다르지는 않아보였는데,

이 번 기회에 다들 명상을 배우고 싶어졌다는...



이렇게 일정이 평화롭게 모든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Jose는 갑자기 전지와 펜을 빌려오더니 워크샵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오후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이제는 Birth Giving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제 밤부터 우리가 나누었던 각자의 고민들과 생각들을

그림으로 정리해서 음/양의 조화로 설명해주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온 Jose에게 음/양의 조화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될 줄이야...

그냥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다니...


정리된 내용을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리하지 못했던 우리의 생각들을 중국에 와서 이렇게 정리했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과제로 3일간의 여정 역시 그림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이것만 하면 끝일 줄 알았으나...

Jose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Birth Giving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며,

1주 / 1개월 / 6개월 후의 실천 계획을 짜보라는 것입니다.



다들 Jose의 열정에 혀를 내두르면서, 그래도 비행기는 놓치면 안되기에

집중해서 각자의 액션 플랜에 대해서 정리를 해봤습니다.


다들 공허한 약속이 되지않기 위해서 고심하는 모습들이 역력했습니다.

중국까지 와서 약속한 것인데 어떻게든 지키겠다고...


벌써 4개월이 지난 시점인데 얼마나 지켜졌는지 궁금하네요.

일단, 다른 것은 모르겠고, MTA 프로젝트는 확실히 시작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경남과기대 교수님들이 MTA상하이랩을 방문했고,

4월에는 경남과기대 학생들이 LEINN프로그램을 체험하기 위해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4월에는 해피브릿지 임경영진과 아쇼카 고등교육 혁신가 네트워크에서도

MINN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상하이랩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약속했던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다시 상하이를 방문하게 된다는게 너무 신기하네요.



이번 연수의 가장 큰 수확은 MTA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막연히 창업교육 프로그램이라고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Jose는 이것을 협동조합 경영교육으로 발전시키고 있었고

여기에는 몬드라곤의 철학과 국제화전략이 완전히 녹아있었습니다.


그리고 핀랜드의 TA와 MTA가 무엇이 다른지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기본 틀은 그대로 가져왔지만 spirit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강화된 모습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정신뿐만 아니라

Jose라는 인물의 개인 캐릭터, 그리고 동양철학까지 녹아있었습니다.


MTA 프로젝트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상하이를 방문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였습니다.


과연 MTA가 무엇인지, 왜 MTA를 해야하는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막연하지만 단서를 찾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꿈과 같았던 일들이 하나씩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6개월만에 더 많은 인원이 상하이를 방문할 예정이구요.


그리고, 올해 9월에 MTA를 한국에 정식 런칭할 예정입니다.

다소 무모해보이지만 현재로써는 충분히 가능하고 점차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상하이를 방문한지 1년이 지난

2017년 11월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HBM] 2016.04.30 Epilogue - ‘기적’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몬드라곤


 지난 4월 해피쿱투어와 함께한 몬드라곤 연수단은 6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연수는 끝났지만, 연수단은 매월 정기모임을 진행하면서, 과연 우리가 보고 온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해왔습니다. 우리가 만난 몬드라곤은 생각보다 굉장히 보수적이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혁신적이였습니다. 유럽에서도 변방인 스페인, 스페인에서도 변방인 바스크, 그리고 바스크에서도 변방인 몬드라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세련되지도 않았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열성적인 협동조합주의자들도 아니였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였으며, 오히려 한국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이 많고 순박해보이는 사람들이였습니다. ‘몬드라곤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지고 몬드라곤을 방문했다면, 당연히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협동조합은 그저 일상이였고, 오히려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을 비교하는 질문을 할 때마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협동하고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그걸 자꾸 물어보니, 어떻게 대답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에서 어리석은 질문이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경쟁 사회에 살아야만 하는 우리로써는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몬드라곤 사람들과 우리의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몬드라곤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몬드라곤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1세대들이 더 이상 생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스크 지역의 오랜 전통과 몬드라곤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에 기반하고 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협동조합의 문화라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측면이 강했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을 비롯한 1세대의 주역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오늘날의 몬드라곤을 만들어낸 다음 세대들, 그리고 그 다음 세대까지. 오늘날 몬드라곤의 영광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알지못하는 젊은 세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글로벌화된 시대에 자란 세대입니다. 유로 시대에 자라고 태어난 세대에게 몬드라곤은 자연스러운 공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시골 마을입니다. 이미 바스크를 넘어 유럽의 대도시들, 그리고 다른 대륙의 국가들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새로운 세대에게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신화같은 이야기는 구시대에나 가능했던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1990년대 급격한 성장을 보이던 사업들도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위기의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로의 국가들의 경제지표가 악화되었고, 몬드라곤 역시 예전과 같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러한 시그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파고르 가전부분의 파산은 몬드라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성공 세대들의 은퇴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새로운 세대의 등장, 그리고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사업 환경 등 몬드라곤 사람들은 초창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전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 협동조합의 기반을 마련한 세대와 현재 몬드라곤을 글로벌 협동조합기업으로 이끌어낸 세대, 그리고 앞으로 몬드라곤을 이끌어나갈 세대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찾은 키워드는 두 가지였습니다.


 

 

Back to Basic & Innovation.


 이번 몬드라곤 연수단은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포럼에 GSEF공동의장이신 송경용 신부님과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 송인창 소장님이 초대되면서 기획되었습니다. 유럽과 남미 이 외의 멀리 아시아에서도 손님을 초청해 국제적인 행사로 기획된 것입니다. 연수단은 100주년 기념 포럼을 비롯한 기념 미사, 기념 공원 제막식 등 다양한 행사에 함께하였습니다. 현재 호세 마리아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한 활동도 진행 중이며, 작년에는 교황에 의해서 가경자(성인 추대를 위한 1단계)’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신부님과 관련된 책도 다시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생존하셨을 당시 자신의 존재가 부각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셨습니다. 하지만, 사후 호세 마리아 신부는 몬드라곤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몬드라곤의 주요 기관들에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흉상이 전시 되어있고, 신부님의 어록은 책으로도 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 저곳에서 자주 인용되어 회자되고 있었습니다. 몬드라곤에서는 탄생 100주년이라는 이슈에 맞춰서 호세 마리아 신부를 전면으로 부각시켜 새로운 활력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점차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협동조합 정신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는 호세 마리아 신부라는 전 세대를 어우를 수 있는 영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상적인 아버지이면서도, 사업적인 스승였던 호세 마리아 신부는 100년만에 몬드라곤의 상징으로 다시 탄생한 것입니다. 현장을 떠나있던, 현장을 이끌고 있는, 현장에 나올 예정인 세대 모두에게 무엇이 몬드라곤을 이렇게 만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 같은 모습이였습니다. 특히나 몬드라곤의 영웅이였던 호세 마리아 신부가 이제는 전세계적인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파고르 가전부문의 파산으로 침체되어 있던 몬드라곤에 분위기 전환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올드하게만 느껴졌던 협동조합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대안으로써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몬드라곤 연수단이 만난 또 다른 몬드라곤의 미래는 혁신을 위한 노력이였습니다. 몬드라곤은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와는 다르게 사업적으로는 굉장히 혁신적인 시도를 이어왔습니다. 시대에 흐름에 뒤쳐지지 않고 사업적인 성공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도 굉장히 실용적인 사고방식과 함께 이러한 혁신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몬드라곤은 노동인민금고의 기업국과 싸이올란 같은 기관들을 통해서 지속적은 새로운 사업을 개척해왔습니다. 하지만, 사업 환경의 변화 만큼이나 이를 위한 교육과 지원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노동인민금고 기업국처럼 자금지원과 기초적인 경영지원이 필요했던 시기를 지나, 다양한 산학협력을 통한 실천적인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했던 시기도 이제는 예전의 방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혁신과 창의력이 중요한 시기가 되었으며, 이제는 산학협력 수준을 넘어서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핀랜드 TA모델을 받아들여 MTA라는 새로운 교육 기관을 설립하게 됩니다. MTA는 창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단순 교육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해외 네트워크 형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선배 기업과의 연계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서 비슷한 관심을 가진 젊은 기업가들을 연결시키는 새로운 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참여하며 창조성과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TA라는 핀랜드 식의 새로운 교육 방법을 도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협동조합을 강조하지도 않고 있으며, MTA에 재학중인 상당 수의 학생들은 호세 마리아 신부에 대해서는 이름 정도만 들어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에게는 팀이 중요한거지 그게 꼭 협동조합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을 선택하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결사로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겨우 10년째를 맞고 있지만, MTA는 몬드라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산시키고 신생 협동조합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구심점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술 혁신 위주로 성장해왔던 몬드라곤에서 새로운 방식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알려진 몬드라곤은 기적같은 존재입니다. 척박한 시골마을에서 시작한 협동조합이 스페인 10대 기업 중에 하나로 성장했고, 수 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의 은퇴 후 삶까지 보장하고 있다. 20년 전에 한국에 알려진 이 기적같은 이야기는 아직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독특한 신화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시대와 환경의 번화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협동조합 정신을 계승하려는 부단한 고민과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혁신은 성공 신화에 매몰된 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해왔습니다. ‘몬드라곤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무너뜨리지 않고 지금까지도 이어올 수 있었던 이면에는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몬드라곤은 호세 마리아 신부의 성인 추대와 혁신적인 경영 교육 방법 도입이라는 새로운 날개들 장착하고 있는 모습이였습니다. 바스크의 변방 지역에 기반한 협동조합이라는 영역에서만 신화적인 존재였던 몬드라곤이 이제는 전세계적인 대안적인 조직으로써 도약하기 위해서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몬드라곤의 새로운 도전은 협동조합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한국의 많은 협동조합 기업들에게 수많은 시사점을 제시해주고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몬드라곤은 끝없이 미래를 준비해왔고, 지금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실패를 경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혁신을 위해서 새로운 노력을 하고 있으며,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교육 프로그램에서부터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것은 바꾸면서 변화에 철저히 대응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과거의 성공에 매몰된 나머지 간과해왔던 부분이며,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할 부분입니다. 몬드라곤에서 만난 기적같은 신화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였으며, 몬드라곤은 스스로 혁신을 해나가며 역동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본 내용은 [협동조합네트워크] 61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BM] 2016.04.30_몬드라곤 연수단 - Ep.17 바스크 지역 먹거리 삼매경

"먹는 방법을 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허브와 들꽃이 가득한 고산지대의 초원에 1년 내내 비를 뿌리고, 양들이 풀을 뜯고 돼지가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으로 유명한 바욘 햄을 건조시키는데, 인근 아두르 강 유역의 소금을 가지고 바욘 햄을 만들어 14개월 동안 매달아둔다. 강이 많고 바다가 가까워서 현지 바스크인들이 잡는 생선은 그들이 따러 다니는 밤과 자연산 버섯, 과수원의 체리와 사과, 채소밭에서 나는 유명한 붉은 피망만큼이나 싱싱하고 풍부하다.


<산티아고: 푸드 러버의 순례길 中>


스페인은 식품 산업이 전체 수출의 17%를 차지할 정도로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입니다.


타파스, 파에야, 하몬, 만체고 치즈, 리베라 델 두에로 비노, 초콜라테 등은 이미 대중에도 많이 알려졌고,

최근에는 상그리아, 가스파초, 판 콘 토마테, 칼솟, 토르티야 등 생활요리들까지 국내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지중해의 태양이 키워내는 과일과 채소뿐만 아니라

대서양의 심해에서 건져내는 생선과 해산물이 모두 모이기에 원래부터 유명했지만,

식재료의 고유의 맛을 최대한 살려내는 자연주의 조리법이 발달되어 있기에 최근들어 더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과 프랑스에 걸쳐있어 기술적인 면에선 프랑스 요리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산과 바다로 둘러 쌓인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스페인의 그 어느 지역보다 싱싱한 해산물과 채소가 풍부하다고 합니다.

올리브오일을 물쓰듯 요리에 쓰며 다양한 재료와 한층 진보된 기술로 유럽 내에서도 식문화가 우수하기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파슬리 벨루떼 소스와 조개를 곁들인 남방대구요리, 염장대구와 생선 자체의 껍질로 만든 소스, 

스페인식 소 족발과 주둥이요리, 한치 요리 등이 바스크 지역의 전통요리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나 미식가를 위한 도시로 알려진 산세바스챤의 경우에는

미슐린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은 식당들과 세계적인 쉐프들이 몰려있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문화공간이 초코(Txoko)가 아직도 수백개 남아있기로 유명합니다.


몬드라곤 연수팀의 초코(Txoko) 방문기 < 클릭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몬드라곤 대학이 2009년 산세바스챤 지역에 설립한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Basque Culinary Center)는 오픈과 동시에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 교장 한국 방문 인터뷰 보기 <  클릭


먹기위한 여행은 아니였지만, 역시나 여행에서 먹거리는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였습니다.


+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이드북에 써있던 한 마디를 반드시 되새겨야했습니다.


Poco sal, por favor

(뽀꼬 쌀, 뽀르 빠보르 : 소금 거의 없이 해주세요)


한국 음식도 짠 데, 스페인 음식이 짜봐자 어느 정도라고... 생각했으나... 


가장 기대했던 산세바스챤에서의 점심식사는...

눈물을 머금고 그냥 첫번째 시행착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일정상 산세바스찬에서의 식사할 기회는 추가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대구 이야기(The Cod's Tale)>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있을 정도로

'대구'라는 생선은 바스크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생선입니다.


하지만, 대구를 어떻게 요리하는지는 전혀 모른체

순진하게 바스크 지역에 왔으니 대구 요리를 먹어봐야지~ 했던 것입니다.


바스크 지역에서의 소금에 절인 대구 요리 < 클릭


아무리 오랜 시간에 걸쳐서 소금 맛을 빼낸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대구요리는 안짤 수가 없는 요리였던 것입니다.


주문할 때 가이드분이 안짜게 해달라고 했다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스페인 일정에서 대구 요리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됐습니다.


다음부터는 주로 스테이크나 스페인식 볶음밥 빠에야(Paella) 위주로 먹었습니다.

물론 안짜게 해달라는 부탁은 필수적인 추가 주문 사항이였습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유사한 쌀을 재배한다는 스페인이기에

한국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든 빌바오지만 음식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기에 국물까지 들어간 요리도 있었으니 어르신들 취향까지 저격해주었습니다.



짠 맛 이외에 전반적으로 음식이 기름지고 단맛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요리가 튀긴 음식이고 커피나 차를 마실 때도 설탕을 엄청넣어서 먹는 특징이 있습니다.


전세계 올리브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나라답게 올리브기름은 아주 필수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비하면 비만으로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네요.


+


오히려 스페인 여행내내 적응되지 않았던 것은 이들의 식사시간이였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에 5끼를 먹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5끼를 모두 챙겨먹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하네요)


아침식사는 데사유노(desayuno)라고 하며 보통 8시 전후로 먹습니다.

간단하게 시리얼, 토스트, 비스킷 등을 먹으며 카페 꼰 레체(카페라떼)나 꼴라카오(코코아)를 즐겨 마신다고 하네요.


그리고는 점심전 식사라는 알부에로쏘(Almuerzo)를 11시~12시 사이에 먹습니다.

보통 스페인식 샌드위치인 보까디요(Bocadillo)를 먹는데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아침식사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스페인에서의 점심식사는 꼬미다(Comida)라고 부르며 14시 ~ 16시에 이루어집니다.

식당도 보통 13시 30분부터 영업을 하기 때문에 한국을 생각하고 아침을 걸렀다가는 낭폐를 겪게 됩니다.


첫 날 시행착오를 겪은 연수팀은 둘째날 부터는 철저하게 호텔 조식뷔페를 챙겨먹었습니다.

조리된 요리는 많지 않았지만 확실히 먹거리가 풍성한지 과일이나 채소, 빵 등이 꽤 신선한 편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똑같은 조식뷔페를 1주일 내내 먹으려니 다소 질려서

판 콘 토마테(pan con tomate)도 만들기도 하고, 만체고 치즈(manchego cheese)하몽(Jamon)을 얻져먹기도 했습니다.


식재료가 좋다보니 식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간단한 제조법의 스페인 요리는

식재료만 잘 갖춰져 있으면 너무나 쉽게 만들어먹을 수 있어서 매일 아침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암튼, 이렇게 점심을 늦게 그것도 거하게 먹는 스페인 사람들은

점심식사와 저녁 식사 사이(19~20시)에 메리엔다(merienda)라고 간식을 또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짜 저녁식사인 쎄나(cena)는 보통 22시~24시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식당도 20시 30분 이전에는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저녁을 밤 12시까지 먹는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스페인에서는 식당자체가 밤 9시는 되야지 손님들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럽게 밤문화가 발달하기 마련이지만 한국처럼 저녁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릴 정도로 마시지는 않아보입니다.

거의 모든 식사에 와인을 함께하기는 하지만, 1잔 이상 취할정도로 마시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


그리고 스페인 음식 문화 중에 타파스(Tapas)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을 수는 없겠죠.


타파스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있는데요. 간단하게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한 접시의 음식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바(Bar)에서는 앉는 자리 없이 서서 와인(또는 맥주) 한잔과 타파스 한 접시를 먹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이동해서 다른 바(Bar)에 가서 타파스 한 접시와 와인(또는 맥주) 한잔을 즐기죠.

한 잔만 먹으려니 뭔가 아쉽게 느껴지기에 5라운드 정도는 돌아줘야지 뭘 좀 마셨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근데, 바스크 지방에서는 이러한 타파스가 핀초스(Pinchos)라는 독특한 형태로 발달하게 됩니다.


핀초는 가시나 못을 뜻하는 스페인어인데,

흔히 빵조각에다가 이쑤시개 같은 것으로 박아서 고정하는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타파스의 종류가 100개가 넘는 것처럼 핀초스도 매우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빵위에 언질 수 있는 모든 식재료는 핀초스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먹은 핀초(이쑤시개)의 숫자를 가지고 나중에 계산을 한다는 점입니다.

회전 초밥집에서 접시 숫자로 계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가격도 핀초 1개에 1~2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기에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에 비해서 오히려 저렴한 편입니다.

(보통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최소 10~15유로는 잡아야해서, 일반인들은 외식을 잘 안한다고 합니다.)


+


저희 연수팀이 바스크에 먹거리 여행을 온 것은 아니기에 완전 유명한 고급 식당을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안내 맡아준 김명진(Monica)씨 덕에 대중적인 가격의 나름 유명한 식당은 몇 군데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빌바오 지역에는 한국인이 아직까지 많이 거주하고 있지는 않은데,

그래도 해피쿱투어에서 현지인 김명진씨를 연결해주셔서 굉장히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위에서 열거한 음식들 외에도 특이하고 맛있는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상치도 못한 초대로 방문했던 몬드라곤의 초코(Txoko)에서 먹은 음식은

바스크 문화와 음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주었습니다.


몬드라곤 연수팀의 초코(Txoko) 방문기 < 클릭


1주일 동안 먹은 내용을 모두 담으려고 하니 사진이 너무 많아서 이 정도에서 정리를 해야겠네요.


음식은 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코드이기에

연수를 마감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로 바스크 지역의 음식 문화와 관련된 내용을 쭉~ 정리해봤습니다.


독특한 레시피와 관련된 부분은 다른 블로거들이 작성한 내용에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클릭해서 전문가들이 써놓은 내용들을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번 연수에서 아쉽게도 방문하지 못한 곳 중에 하나가

몬드라곤 대학에서 새롭게 설립했다는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Basque Culinary Center) 입니다.


지역 밀착형이고, 단순히 훌륭한 쉐프를 길러내는 요리학원보다는

전문 외식창업교육과정에 가깝기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이렇게 몬드라곤에서의 마지막 밤도 모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아쉬움을 달래며 구도심 광장에서 핀초스를 즐긴 연수팀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바스크 현지 연수에 대한 내용은 이제 마지막 포스팅이 되겠네요.

과연 저희들의 몬드라곤 연수가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마지막 포스팅은 한국으로 돌아온 연수팀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벌써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저희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합니다.


마지막 포스팅이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HBM] 2016.04.28_몬드라곤 연수단 - Ep.16 빌바오 시내투어 & 구겐하임 미술관

1주일 간의 몬드라곤 연수는 지속적인 학습의 기간이였습니다.

하지만, 멀리 스페인까지 왔는데 공부만 하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특히나 3일 먼저 도착한 1진이 빌바오 시내를 동네 마실다니듯이 완전 마스터 한 반면,

늦게 합류한 2진에게 빌바오는 밤에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 먹으러 돌아다닌 기억 밖에 없었습니다.


멀리 여기까지 왔는데 빌바오 시내를 못본다는 것은 완전 고문이였습니다.

게다가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뭐라고 사가고 싶기에 맘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으로 여행블로거들의 글을 살펴보니

빌바오 투어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구겐하임 미술관만 보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결국 아직까지 시내 구경을 하지 못한 2진은

연수 도중 과감하게 연수단에서 이탈해 반나절 빌바오 시내 투어를 결행하게 됩니다~ ^^


+


오전에 쿠페라와 빌바오 시내 BBF를 견학한 연수팀은 점심을 먹고 난 후에

1진은 사이올란(Saiolan)을 방문하기 위해 몬드라곤으로 떠나고 2진은 빌바오에 잔류하게 됩니다.


 스페인어 한 마디 못하는 저희에게는 통역도, 여행 가이드도 없었지만,

구글지도와 블로거들의 여행후기만으로도 충분히 빌바오 시내 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빌바오 시내는 대부분의 도시처럼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네오비온강 동편에는 성당을 중심으로 구도심이 형성되어있고,

길이 좁은 유럽의 도시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오밀조밀 상점들이 몰려있습니다.

(연수팀은 주로 숙소에서 가까운 구도심의 북쪽에 있는 광장 인근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반면에 네오비온강 서편은 1990년대 부터 시작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빌바오의 도시재생 이야기 살펴보기 < 클릭


빌바오 효과라고 불리는 빌바오의 도시재생 사례는 한국에도 잘 알려졌습니다.

(그 덕분에 서울에도 랜드마크를 만들겠다고 지어진 건축물이 몇 개 있죠)


구겐하임 미술관을 정점으로해서 네오비온강 인근에 주요 건축물이 위치하게 되는데,

어느 새 빌바오 시는 세계 주요 건축가들의 경연장이 되어버립니다.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구겐하임 빌바오 (Guggenheim Bilbao)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의 주비주리(Zubizuri)

콜 바루(Coll-Barreu)의 바스크 건강관리국(Health Department) 본사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의 아롱디하 빌바오(Alhóndiga Bilbao)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빌바오 지하철  입구지붕


이 외에도 지하철 역이나, 트램, 옛 부두가 등 강변을 따라서 걷다보면 눈이 저절로 호강을 하게 됩니다.

빌바오로 건축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


일단 연수단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일단 강변을 따라 걸어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강변을 걷기만 했는데도 참~ 도시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으면서도 중간중간 인상적인 건물들이 눈에 자연스럽게 드러웠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명불허전인 구겐하임 미술관은

등장만으로 그 장엄한 존재감을 드러내주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듯하게 만들어진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벽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외관을 장식하는 조형물들도 눈에 띄고, 반대편에서 살베 다리가 보이는 풍경도 훌륭합니다.

밤에 한 번 더 올 기회가 있었는데 밤에 보는 구겐하임 빌바오의 모습은 또 새롭네요~ ^^


루이스 부르주아(Louis Bourgeois)의 마망(Maman)

아니쉬 카푸어(Anish Kappor)의 큰 나무와 눈(Tall Tree & The Eye)

제프 쿤스(Jeff Koons)의 튤립(Tulips)


리움 미술관에서 봤던 <마망>과 <큰 나무와 눈>을 여기서도 만나니 반갑네요~

구겐하임 빌바오의 멋진 외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멋진 사진으로 감상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전문가들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사진 < 클릭


정문에 있다고 하는 <Puppy>는 이따가 나오면서 만나기로 하고

일단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서 관람을 하기로 했습니다.


미술관에 들어가자마자 저희를 맞아준 것은 대표 전시물,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이였습니다.



미술관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함께 기획되었다는 작품답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녹이 스는 철재로 만든 작품은 크기도 엄청났지만,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온갖 다양한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8개의 설치물을 모두 돌아보는 동안에 미로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길이 좁아졌다가 넓어지고, 또한 어두어지고 밝아지는 등의 변화들이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한쪽편에 제작 후기처럼 그 과정을 설명해주는 공간이 마련되어있었고,

2층에 올라가게 되면 작품의 전체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


건물의 내관도 굉장히 인상적이였는데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내부 구조를 찍을 수 없었지만,


직선보다는  곡선위주로 만들어진 휘어진 기둥이나 천장, 유리 엘리베이터 등

건물의 외관 만큼이나 내부 구조도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았습니다.


1층의 한 쪽편에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 전시중에 있었고,

3층에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온 세계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칸딘스키, 피카소, 후안 미로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작품들이였지만,

개인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2층에 있던 루이스 브루주아에 대한 전시였습니다.


단순히 <마망>의 작가로만 알고 있던 그녀의 전시물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괴기스러운 작품들의 연속이길래 그녀에 대해서 알고싶어져버렸습니다.




즉시 인터넷으로 그녀에 대한 글들을 검색해보니

왜 그녀가 이런 작품들을 남기게 됐는지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최선호의 아트 오디세이

GQ에 실린 루이스 부르주아 인터뷰


개인적으로는 GQ의 인터뷰가 더 인상적이였습니다.


평론을 읽을 때는 그녀의 인생이 안스럽다는 생각을 많이했는데,

생각보다 담백하게 인터뷰하는 모습이 더욱더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습니다.


글들을 읽고 그녀의 작품을 다시 보니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승화로 현실을 마주하는 그녀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유럽의 다른 미술관들과는 좀 다르게

내부에서 사진촬영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기에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녀가 던진 메세지들은 적어올 수 있었습니다.


Art is the guarantee of sanity.

Pain is the ramsom of formalism.


그녀는 조형물 이외에 상당 수의 작품들에 메세지를 남겨두기도 했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작품들 만큼이나 매우 강렬했습니다.


인터뷰에 보면 아버지가 예술가를 굉장히 천시여겼다고 하는데,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 예술에 대한 열정 등이

매 작품마다 상당부분 녹아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


구겐하임 빌바오를 나와 정문으로 향했더니 이번에는

제프 쿤스(Jeff Koons)의 퍼피(Puppy)가 저희를 맞이해주고 있었습니다.



문을 지키고 있는 듯한 퍼피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왜 제프 쿤스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였는지 세삼 느끼게 됩니다.

다소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가 확~ 밝아지는 느낌이네요.


남들에게는 이 모습이 구겐하임 빌바오의 첫 인상이겠지만,

저희 팀은 마지막 모습으로 마음에 담아둔 채 이제 본격적으로 빌바오 시내로 진격했습니다.


+



하지만, 그 전에 또 남들 다간다는 곳은 꼭 가야하기에,

구겐하임 빌바오를 구경한 사람들이 쉬면서 꼭 들리는 아이스크림 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꽃모양을 이쁘게 잘 만들어주시네요~

(물론 한국에서도 이렇게 만들어주는 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친절한 한국 블로거들의 안내에 따라서,

빌바오 파인아트 미술관을 거쳐서 인근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미술관은 시간 관계상 들어가보지는 않고 그냥 스쳐지나갔고,

한적한 공원은 빌바오 사람들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남미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스페인의 타일 무늬가 세겨진 기둥이 눈에 띄네요.

세계 어딜가나 공원만큼 여유있고 한적한 곳은 없는 듯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빌바오 시내 중심가로 이동했습니다.


목적지는 선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 일행들을 위해서

빌바오에서 젤 크다는 백화점으로 이동하면서 시내를 관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미팅을 위해서 택시타고 그냥 지나치던 곳들을

여유있게 걸으면서 구경하니 감회가 굉장히 새로웠습니다.


길을 걸으며 현지인들과 호흡을 하는 것과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굉장히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세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빌바오 사람들의 모습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특정 기관의 사람들만 만나보았다면,

길가를 걷는 동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노인이 많다', '사람들이 우울하다', '다들 잘생기고 이쁘다'


바스크 사람들에 대한 우리끼리의 여러가지 평가가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길을 걸으면서 보니까 여기도 그냥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보다는 약간은 차갑고 다양성이 적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희가 방문했던 바스크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바스크 지역 다른 도시 방문기)


대형 백화점에서 필요한 물품들에 대한 쇼핑을 마친 후

사회저경제 포럼이 열리는 KOOPERA의 시내 매장으로 이동해 다시 팀에 합류했습니다.


협동조합과 자활의 상생적 협력 모델인 KOOPERA의 시내 매장이기에

작은 공간을 상상했는데 KOOPERA의 사업적인 경쟁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KOOPERA방문 후기 보기 < 클릭


오후에 있었던 Saiolan방문은 땡땡이 쳤지만

빌바오 시내 탐방팀은 이래저래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도시보다 더 유명한 미술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도시 계획 안에서 전체적으로 너무나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인상적이였고 도시 재생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에 곧 불어닥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세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연 빌바오의 철강과 조선업계의 선두자리를 밀어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빌바보의 도시재생을 어떻게 다시 한 번 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할 듯합니다.



빌바오 도서관 벽면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다양한 말들이 써있는데요.

한국어로는 다음과 같이 써있네요.


'새로운 변화는 새로운 답을 가져오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물음을 묻기 시작하는 사람에 의해서 가능하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5 파고르(Fagor)

해피쿱투어와 함께하는 몬드라곤 연수단의 마지막 행선지는

Fagor industiral 이였습니다.



몬드라곤 인근지역을 방문하면서 신기하게 느꼈던 점은


대부분의 회사들이 넓게 퍼져있다보니 굉장히 한적한 곳에 덩그러니 위치한 경우가 많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건물들이 굉장히 세련되고 멋지게 지어졌다는 점입니다.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해 약간은 올드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Ikerlan밖에 없었는데,

오랫만에 그나마 제조업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물을 만나서 한편으로는 반가웠습니다.


+


파고르 그룹이 가지는 몬드라곤 내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이미 Ep.05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HBM] 2016.04.26_몬드라곤 연수단 - Ep.05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


몬드라곤 최초의 협동조합그룹 Ularco는 대표 브랜드 파고르의 이름을 따서 파고르 그룹이 되었고,

몬드라곤 최초의 노동자협동조합 ULGOR는 그룹의 이름을 따라서 파고르 가전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몬드라곤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파고르 가전이 2013년 파산을 맞이하게 되며 큰 화제가 됩니다.


파고르 가전(Fagor Electrodomésticos) 파산에 대한 이전 글 보기



그후로 3년이 지난 지금 파고르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고르 가전'의 주요 해외 브랜드는

알제리계 가전회사 Cevital과 독일계 가전회사 BSH Hausgeräte에 각각 인수되었으며, 

파고르 가전 본사는 2014년 7월 카탈루니아 지역의 회사 Cata가 전격 인수합니다.


그리고 파고르 그룹은 전격 해체되고 산업별 그룹으로 헤쳐모이게 됩니다.


B2B전문 주방용 가전제품 기업으로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던 Fagor Industrial은 

산업용 가전 제품 기업들이 한데 모여서 새롭게 만든 Onnera Group에 합류에 대표 협동조합이 됩니다.


+


Fagor industrial에서 저희를 맞아주신 Gema Mancebo는

파고르 가전 인사팀에서 13년간 근무를 하다가, 파고르 가전이 파산하면서 파고르 인더스트리얼로 재배치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원들을 재배치를 할때는 업무의 유사성과 기존 근무지와의 거리를 중요시 하는데,

파고르 가전의 경우에는 워낙 규모가 큰 사건이였고 재배치 대상만 2000명에 달했기 때문에 자신은 운이 굉장히 좋았다고 하네요.


파고르 인더스트리얼에 대한 대략적인 브리핑을 들은 후

역시 연수단원들의 질문은 파고르 가전 파산 사건에 맞춰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파고르 가전의 파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때부터 직견되었으니 파산까지 5년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공장이 가동이 안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조합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간만 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자체 해결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파산이 결정된 후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선 900명은 몬드라곤 그룹 내 개별 협동조합에 임시 재배치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900명의 사람들은 임시로 재배치될 곳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몬드라곤 본부가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본부의 역할은 거기까지였고 결국은 남겨진 자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만 했습니다.


실직된 조합원들은 '오스갈리아츠' 협동조합(인력파견업체)을 만들어서

스스로 인력의 재배치에 대한 내용을 해결해나갑니다.


몬드라곤 그룹의 공장에서 성수기에 맞춰 빈 자리를 매꾸는 일을 하기도 하고

일반 사기업이나 파고르 가전을 인수한 기업에 배치되기도 하고, 일부 인원은 명예퇴직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파고르 가전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 충격이 켰고 몬드라곤 도시 전체가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협동조합 방식의 혁신적인 시도를 하기보다는

각자 흩어져서 생존을 준비하기 바빴고, 기술자들은 별도 A/S전문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고르 가전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누적된 배당금은 파산과 함께 모조리 날아가버렸기에,

라군아로에서 80%의 임금을 지원해주는 2년 동안 각자의 살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재배치가 된 인원의 경우에는 라군아로에서 재배치 받은 회사에 6만 유로를 지원해 주게되며,

이 중 15,000유로는 개인 계좌에 출자금으로 지급해주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비용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임시 재배치된 인원에 대한 채용 여부는 재배치된 협동조합에서 결정하게 되는데,

너무 급하게 재배치했기 때문에 일부 인원들은 직무와 거리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 채용이 안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공장 노동자가 갑자기 마케팅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


파고르 가전의 파산은 몬드라곤 전체에 큰 경각심을 줬다고 합니다.


가장 역사가 깊고 규모도 컸던 파고르 가전이 파산을 하면서

그 어떤 협동조합도 충분히 파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것입니다.


그동안 파고르 가전의 경우에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화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기본 출자금 이상으로 추가 출자를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많게는 10만 유로까지 투자를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또한,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2세대 자녀들이 능력이 없어도

부모들의 인맥과 출자금을 이어받아 파고르에 입사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산 과정에서도 파고르가 설마 망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시간만 질질끌다가 일을 더 키운 점도 큰 문제였습니다.


본부 차원에서도 이미 예견된 사고였으나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사전에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경영진들의 경우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업무 능력이 생산직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재배치된 경우도 나타났습니다.


모든 주요 의사결정은 총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영진만을 탓할 수 없다는 점과

결국은 본부가 도와주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점을 크게 배웠다고 합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원리와 원칙이지만 막상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이 것대로 진행된다는 것들을 조합원 당사자들이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길거리를 헤매야만 하는 상황

오히려 큰 책임이 있는 것같은 경영진들이 오히려 현장직들보다 더 빨리 좋은 자리에 배치받는 상황

언제 어디로 재배치 될지도 모르고 한없이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

내가 넣은 출자금이지만 그것이 날아갔을 경우에 느끼는 억울함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됐을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한,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주지 않으면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해가야한다는 것


협동조합도 만능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였습니다.

천하의 몬드라곤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협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주인이 된다는 것이며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려울 때 기댈 곳이 있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요?


몬드라곤의 파고르 전자는 이러한 새로운 피난처를 찾던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이 절대적인 피난처가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협동조합은 기존 주식회사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은 나 자신이 되야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


스스로에 대한 주인의식과 자발성이 없을 때

협동조합이라는 시스템도 온전한 방어막이 되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


이제 몬드라곤에서의 현장연수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연수에 참여한 모든 분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삶을 사실 것입니다.


연수팀에는 협동조합 종사자도 있고, 그냥 관심이 있어서 참여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내용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몬드라곤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게 될까요?

이러한 이야기들을 After 모임에서 이야기하면서 연수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4 에로스키(Eroski) 소비자 협동조합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대부분 제조업을 떠올립니다.


최초의 협동조합 ULGOR 역시 제조업이 기반이며,

전세계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몬드라곤만큼 성공한 협동조합이 없기 때문입니다.


(http://monitor.coop)


The World Co-operative Monitor 자료를 봐도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협동조합에서는 31위의 규모이지만,

제조업 기준으로 봤을 때는 월등히 높은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몬드라곤 자체로만 놓고 봤을 때

몬드라곤의 매출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은 유통부분의 Eroski 그룹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보면 Eroski의 매출액 비중은

몬드라곤 그룹 전체의 52%(62억 유로 / 8조 2천억원)까지 상승합니다.


몬드라곤에서 매출액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고용인원 숫자에서도

Eroski의 고용인원은 38,686명으로 전체 74,117명의 52.2%에 해당합니다.

(노동자조합원의 숫자는 12,295명으로, 전체 직원의 30%를 차지합니다)


그룹 차원에서 차지하는 실질적인 비중은 매우 높지만

제조업 분야에서의 신화적인 성공으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별로 주목을 못받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소비자협동조합만 놓고봤을 때도 세계에서 15번째로 규모가 큰 성공사례입니다)



몬드라곤의 역사를 살펴봐도

초기 설립자들 역시 소비자협동조합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바스크 지방에는 이미 몇 개의 소비자 협동조합이 존재했기 때문에

몬드라곤의 초기 설립자들은 굳이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기존의 소비자협동조합 중 9개가 재정과 조직 운영 면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Caja Laboral에 찾아와 자신들의 조직을 통합해서 새로운 협동조합 복합체를 만들어달고 요청합니다.


소비자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Caja Laboral의 경영진은

이를 위해서 연구팀을 만들어 프랑스와 스위스의 성공 사례에 대한 현지 조사까지 진행합니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의 법률에서는 비조합원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금액을 납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합니다.


조합원 가입을 위한 출자금을 최소로 낮춰서

최초 방문 고객의 경우에는 계산대에서 즉시 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줬으며,

조합원 배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서 다수의 조합원을 관리하는 사무업무를 최소화시켜버립니다.


배당을 실시하지 않는 대신 물건가격을 낮추고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높임으로써,

조합원들에게 혜택을 돌려주면서 오히려 조합원들이 급증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월간 소비자 잡지를 무료로 출간하며, 여행과 숙박 상품을 싼 가격에 제공하는 등

추가적인 혜택과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의 활동은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


이렇게 탄생하게 된 Eroski는 거버넌스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다른 소비자협동조합들의 경우에는 소비자들만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조합원들은 이사를 선출할 때 1인 1표의 투표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Eroski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소비자 조합원과 노동자 조합원이 동시에 존재하는

혼성 조직으로 출발했으며, 이사회의 구성도 소비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가 같은 수로 선출됩니다.

(단, 이사장은 항상 소비자 조합원이 맡게 됩니다.)


이러한 거버넌스 구조는 전세계 소비자 협동조합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구조였습니다.


최근에 소비자 협동조합들 가운데 노동자들의 처우와 경영 참여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면서

다른 소비자협동조합들도 에로스키의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몬드라곤 그룹 내에 별다른 주목을 못받았던 Eroski 였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기존 공업협동조합들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급성장을 이루고 있던 Eroski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Eroski의 경우 1984년에 이미 소비자 조합원은 13만명을 넘어섰고

노동자 조합원도 1,220명이 되면서 고용 창출 면에서도 큰 협동조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


1990년대 이후 eroski의 성장은 더욱더 눈부실 정도입니다.

고용인원과 매출은 20여년간 약 20배 정도 늘어나면서 매년 20% 정도의 성장을 기록합니다.


1990년 2,600명이던 노동자는 1995년 1만명을 돌파하더니

2000년 25,000명, 2005년 34,000명, 2010년 42,000명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납니다.

(2000년대 이후 몬드라곤 내 신규 고용의 70%가 Eroski에서 발생합니다.)


매장의 형태도 하이퍼마켓, 맥시마켓, 슈퍼마켓 등으로 다양화하였으며,

의류 및 가정용품 전문 매장, 여행사무소, 헬스클럽 등의 생활 전 분야로 사업도 확장해나가면서,

2010년에는 매장 수가 2,100여개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Eroski는 1990년대부터 바스크 지역을 벗어나 스페인 전역으로 사업장을 확대해왔으며,

1999년에는 프랑스 시장에도 진출하였고 2003년과 2007년에는 유통 사기업에 대한 M&A도 단행합니다.


+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Eroski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 전체의 경기 침체와 함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2008년 Eroski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매출 감소를 기록했고,

84억 유로까지 성장했던 매출은 현재 62억 유로까지 감소해 정체기를 겪고 있습니다.


1억 2천 유로(약 160억원)까지 급작스럽게 증가했던 당기 손실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감소추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Eroski는 자구책으로 10% 노동시간은 무급연장하고, 향후 5년간 임금 동결을 결의했는데,

이럴 경우 결과적으로 보면 5% 정도 급여 삭감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여기에 Fagor 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그룹 전체가 1%의 급여를 삭감한 것도 있습니다.


그나마 조합원들은 재배치를 통해서 근무환경을 보장받지만

비조합원의 경우에는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급여차이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 닥치게 되면 비조합원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1년 이상 근무해 노동자 조합원 자격을 갖췄을 때

미리 조합원 가입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조합비 15000유로(약 2000만원)은

일반직 노동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돈은 아니기에 마냥 조합원 가입을 안한 이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사기업이라면 더욱더 어이없는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몬드라곤 역시 사업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그 한계가 존재함을 드러내는 사건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기를 다함께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왜 노동자협동조합에 기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연수단의 공식일정에 Eroski의 방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몬드라곤 시내에 큰 Eroski 복합매장이 존재해 식사하기 위해서 방문했고,

빌바오 숙소 앞에도 Eroski 슈퍼마켓이 있었기에 장보기 위해서 추가로 방문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다른 매장들을 방문해본 적이 없는 연수단원들이 보기에

Eroski의 매장은 한국의 일반 대형매장들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몽이나 치즈, 와인 등이 한국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는 정도?

연수팀원들은 Eroski 브랜드가 찍힌 초콜릿과 와인, 차 등을 선물로 사면서 매대를 싹쓸이했습니다.


한국의 이마트나 홍플러스 같은 규모의 대형 매장처럼 없는 품목이 없었기에,

친환경 제품에만 치우쳐있는 한국의 생협들과 비교했을 때 소비자 입장에서는 훨씬 더 편리했습니다.


확실히 사회운동성이 강한 한국과 비교해보면 일반 기업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Eroski의 전략에 대해서는 연수단원 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느낌이였습니다.


거버넌스 측면에서 그리고 사업 전략적인 측면에서

Eroski가 한국의 소비자협동조합에게 주는 특징은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이번 연수에서는 Eroski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기회는 없었지만,

Eroski는 다시 한 번 방문해서 자세히 뜯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례임에는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3 이켈란(Ikerlan)

몬드라곤은 250개의 조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복합체입니다

그리고 중간지원조직들은 그룹화가 진행되기 전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금융 분야의 Laboral Kuxta(1959)

사회복지 분야의 Lagun-Aro(1959)

교육 분야의 Mondragon Universitatea(1943)


그리고 이들과 함께 R&D 분야의 성장을 책임져왔던 곳이 바로 Ikerlan(1974)입니다.



이켈란은 1965년 마뉴엘 케베도를 비롯해 설립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기술전문학교에서 학교의 교과과정을 강화시키기 위해 공업기술 연구의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시작됩니다.


지속적인 프로젝트와 연구활동으로 케베도와 동료 교사 2명은

학교 교육 업무까지 면제받으면서 이 일에 전담했으며, 휴가를 내고 프랑스에 6개월간 연수도 다녀옵니다.


케베도는 자신이 번돈을 학교에 기부하면서까지 자동화 연구실 설립을 추진했고,

1974년 호세 마리아 신부는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업기술 연구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합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몬드라곤의 외부의 과학기술과 자본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해야한다고 보았고,

케베도를 연구소장으로 임명하면서 몬드라곤의 R&D를 주도할 공업기술연구협동조합이 시작됩니다.


 

  


연수단을 맞아주신 분은 마케팅담당자 Guillermo Irazoki입니다.

올해 60세로 곧 명예퇴직을 할 예정이기에 자신의 후임자를 데리고 함께 연수단을 맞이해주셨습니다.


몬드라곤대학 경영학부를 막 졸업한 23살의 젊은 후임자는

협동조합 가치에 공감해서 졸업 후 이켈란의 입사를 선택했다고 당돌하게 대답을 하네요.


앞에서 이야기해왔던 것처럼 몬드라곤에서 명예퇴직은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65세(정년)가 되기 전까지 일을 하지 않아도 연금의 80% 수준을 받을 수 있기에 일종의 특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명예 퇴직 후 수익을 걱정해야하기에, 일종의 사형선고로 여기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


Guillermo Irazoki은 차분히 이켈란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기업은 지식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고, 이켈란은 기업과 인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연구를 할때는 대학과 함께 진행하기도 하고 연구자료를 방탕으로 기업에 결과를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켈란은 설립초기부터 단순히 몬드라곤 그룹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았으며,

바스크 지역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해왔고 1982년부터는 지방정부가 이켈란 예산의 절반을 부담합니다.


나머지 예산의 약 38%는 연구 프로젝트 계약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12%는 몬드라곤 그룹의 지원조직들의 회비로 충당하는 비영리 2차 협동조합입니다.

(현재는 정부 지원 비중이 약 30% 나머지는 프로젝트 계약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234명(조합원 200명)이 근무 중이며 90개(50%는 몬드라곤 그룹사)의 고객이 존재하며

1780만 유로(한화 23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스크 지역의 다른 연구소들과 함께 IK4라는 연구 연합(research alliance)를 형성하고 있는데,

IK4 네트워크 기준으로는 1275명의 연구진이 1억 2백만유로(약 1349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4개 지역에 나눠서 운영되고 있으며, 320개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서 거의 30분 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확실히 다양한 분야에 최첨단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나,

공학도가 아닌 연수단원들에게는 너무 전문적분야라서 '아~ 열심히 연구하는구나' 정도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이 시작됐는데요.

이번에도 주식회사와의 차이를 발견하고 싶은 질문이 이어졌고, 여전히 FM에 가까운 대답들이 돌아왔습니다.


몬드라곤 그룹을 지원해주는 중간지원조직으로 시작되었지만,

역시나 몬드라곤은 몬드라곤이고 이켈란은 이켈란이라는 관점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급여 테이블의 경우에는 몬드라곤 전체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연구원이라는 고급 인력에 대한 처우가 다른 연구소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최저 임금에 대한 기준은 다른 연구소들보다 훨씬 높게 책정됐지만,

최고 임금에 대한 기준은 다른 연구소들보다 훨씬 낮게 책정됩니다.


이에 대해 우수 인재 확보 차원에서 문제가 있지 않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같이 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대답만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존재했습니다.


그동안은 스페인 자체에 박사 학위자가 많지 않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켈란 내에도 박사 학위자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만 박사들만 연구소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변화의 여지는 있었습니다.


몬드라곤 그룹 내에서도 급여의 격차가 4.5에서 6으로 확장됐던 것처럼,

시장 환경의 변화는 인재 확보 차원에서 이켈란에게 새로운 기준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기존의 원칙을 쉽게 바꾸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뀌는 환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혁신의 시작입니다.


과연 이켈란은 이러한 변화들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기존의 원칙을 잘 유지하면서도 기술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2 울마(ULMA)그룹과 인터코퍼레이션(intercooperation)

몬드라곤을 상징할 수 있는 핵심 운영 전략 중 하나는

'협동조합 간 협동'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intercooperation 입니다.


'협동조합간 협동'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부적인 단결성과 정체성이 강한 협동조합일수록

다른 협동조합과 연대라는 것이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경제적 이해관계만 맞다면 쉽게 이루어지지만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마음에 맞는 협동조합을 찾는 것도 어렵고 또 만나서 연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마음이 맞는다고 아무렇게나 연대할 수도 없기에 어떻게 연대할지 한참을 논의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60년이 넘는 역사 가운데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라는 조직을 만들어냈습니다.


103개의 협동조합들이 모여있으며 이들은 각자 알아서 서로 연대를 합니다.

공동의 규칙은 당연히 존재하며 프로젝트 별로는 각기 따른 원칙을 세워서 연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연대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은 무엇인지

오나테(Oñate) 지역을 대표하는 울마 그룹을 방문해 그 사례를 들어보았습니다.



울마(ULMA)는 2003년 몬드라곤 그룹에 뒤늦게 합류한 협동조합 그룹입니다.


하지만, 1961년 울마 그룹의 최초 협동조합인 Talleres ULMA S.C.I. 가 설립될 때부터

호세 마리아 신부와의 수 차례의 미팅을 통해서 ULGOR에서의 경험을 전수받습니다.


이후, 1986년 오나테(Oñate) 지역의 협동조합들과 함께

ONALAN이라 이름으로 뭉치게 되고 1992년부터 현재의 ULMA라는 그룹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오랜기간 동안 몬드라곤과 함께 해온 대표적인 협동조합 그룹 입니다.)


울마는 50년이 넘는 기간동안 오나테(Oñate)라는 강한 지역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룹 내의 8개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산업적으로 이어지는 분야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다.


울마의 직원 4,353명 중 2,010명이 오나테(Oñate) 지역에 근무하고 있는데,

오나테(Oñate) 지역의 주민이 11,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지역 주민 1/5이 울마에서 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가능인구의 절반 정도는 울마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중 1,800명 정도가 조합원입니다)


매출은 약 7억유로(한화 약 9000억) 정도 수준이고,

해외 매출의 비중(74%)이 점차 높아지면서 유럽 시장(53%)에 대한 의존도 역시 줄어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전략이 없었다면 몬드라곤 협동조합들이 오늘날 같이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듯 하네요)


울마그룹의 경우에는 다양한 산업분야의 협동조합들이 지역적으로 뭉쳐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으며, 내부적으로 많은 것을 서로 조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대가 진행됐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정체성과 애정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의 미션은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다음 세대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희를 맞이해주신 Javier Orbea는 울마 그룹의 Financial Director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곳 중에서 가장 프로패셔널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주셨고,

친절하게 맛있는 아메리카노와 쿠키는 물론 UNESCO 기부에 동참하자는 카드까지 선물로 준비해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스페인 커피는 쓴데, 외국인을 위한 배려한 센스가 빛나네요)


Javier Orbea의 경우에는 일반 주식회사에서 10년, 그리고 은행권에서 6년 정도 근무를 했었는데,

협동조합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서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ULMA에 합류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이 있으셔서 그런지 다른 몬드라곤 사람들과는 다르게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연수단의 접근에 가장 잘 공감해주셨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원래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걸 왜 물어보지라는 반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포인트를 잘 집어서 친절하게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센스도 발휘해주셨습니다.


+


먼저 그룹 본부와 개별 협동조합의 운영방식에 대한 부분을 설명해주셨는데요.


그룹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금융만 공동으로 관리하지 나머지 사업은 작자 알아서 합니다.

그룹 내에 해당 품목의 사업을 하는 곳이 있어도, 그룹 계열사라고 일감을 몰아주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그룹 내 계열사와 함께 일을 할지 말지는 각자 계열사들이 결정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렇게 비즈니스와 연대라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울마의 성공요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수익성이 있는 부분과 연대를 해야하는 부분은 명확히 구분해 사업을 하지만,

실제 사업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는 함께 나누는 방식을 취합니다.


부실한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의 물건을 그냥 사주는 것이 아니라

사업은 사업대로 경쟁력에 맞춰서 진행하고 손실이 난 부분에 조건 없이 보존해줍니다.


+


그렇다면 울마 그룹의 수익 배분 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단, 8개의 협동조합들은 수익이 날 경우 30%를 때서 그룹 공동 기금에 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아진 기금(Profit sharing)으로 손실이 난 협동조합에 대해서

손실 금액의 50%까지 일단 보존해줍니다.


예를 들면, 막대한 손실이 난 D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손실액의 절반을 그룹 공동 펀드로 우선 보존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손실액을 매꾸기 위해서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조합원들 스스로 임금을 삭감하고, 삭감분으로 성장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때 2차적으로 그룹차원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지원을 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공동 펀드로 모았던 기금이 남게되면,

이는 다시 개별 협동조합들에게 총 인건비에 비례해서 재배분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D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부담해야하는 손실이 20% 수준으로 줄게 됩니다.


나머지 협동조합들이 그만큼 수익을 포기하고 손실을 보존해준 것입니다.

사업적으로는 실력이 없으면 도와주지 않지만 실적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존을 해줍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것같으면서도 확실한 연대 정신이 기반에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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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마 그룹 내의 연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급여연대기금(Wage Solidarity Fund)라는 것을 추가로 운영합니다.


각 협동조합은 수익의 3%를 급여연대기금으로 내야합니다.


그 이유는 그룹의 현재 급여 수준보다 낮게 받는 협동조합의 급여를 보존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면, 특정 협동조합의 급여 수준이 전체 급여 수준보다 낮을 경우에는

급여연대기금을 통해서 일정 수준 보존을 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동등하게 보존해주지는 않습니다.

실적이 좋은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107% 수준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처럼 모두가 똑같이 받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 간의 일정 정도 격차를 줄여준다는 개념이 훨씬 더 강한 것입니다.


여기에 매출의 0.08%는 '신사업개발기금'으로 내야만 합니다.


이 경우에는 손실이 있는 협동조합도 부담해야하는데 신사업을 위한 투자는

손실의 유무와는 별도로 모두가 부담해야하는 의무라는 개념이 강한 것이지요.

(확실히 몬드라곤 사람들은 사업과 연대는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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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울마그룹 내의 정산이 끝난 이후에는 몬드라곤 그룹 차원에서 다시 정산이 들어갑니다.


1) 몬드라곤 그룹 내의 모든 협동조합은 수익의 10%를 공동투자기금으로 내야합니다.

2) 또한, 그룹 차원의 연대기금(Solidarty Fund)으로 수익의 2%를 추가로 징수하며,

3) 마지막으로, 교육기금(Education Fund)로 수익의 2%를 추가로 징수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그룹차원에서 수익의 14%를 징수하고 난 후,


나머지 추가 수익에 대해서는 10%는 자체 교육에 투자하게 되며,

45%는 협동조합 자체로 적립하고, 나머지 45%는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해줍니다.

(배당금은 대부분 순환출자의 형태로 협동조합에 재투자되며, 시중보다 월등히 높은 이율이 보장됩니다)


사실 이 정도까지 듣고 있으면 과연 수익 중에 뭐가 남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일단 이익 공유(Profit sharing)과정에서 상당한 수익이 감소할 수 밖에 없고,

나머지 추가적으로 내야하는 기금을 다 합치면 수익의 약 20% 정도를 공동 기금으로 내야 합니다.

(물론 몬드라곤 공통 기준 이외에 자체 그룹 내 규정은 협동조합 그룹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손실이 난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3중의 안전망이 존재합니다.


이익 공유(Profit sharing)를 통해서 손실이 보존되고,

급여연대기금(Wage Solidarity Fund)을 통해서 조합원들의 급여가 보존됩니다.

마지막으로 몬드라곤 그룹차원의 연대기금(Solidarty Fund)을 통해서 위기 시 보존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존을 받은 기금들은 갖아야할 부채가 아니기에 사업적 부담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손실로 인해서 특정 협동조합이 망하게 되고 실업자가 양상되는 것은 막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구책을 가지고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도 남겨두게 해줍니다.

이는 개별 협동조합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럴 경우 도덕적 헤이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도와주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지만 비즈니스는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자구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고 회생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협동조합이라도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역사에서 증명해주었습니다.


2000명의 조합원이 근무하고 있는 파고르 가전 부분이 2013년 파산을 할 때

아무리 상징성이 큰 몬드라곤 최초의 협동조합일지라도 회생 가능성이 없자 과감히 파산을 결정합니다.

(파고르 가전의 파산에 대해서는 파고르 방문 후기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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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재무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자금과 관련된 부분으로 흘렀는데요.


몬드라곤 내에서는 자금적인 부분 이외에도

중간지원기관들을 통해서 일자리와 인력에 대해서도 연대를 진행중이고, 

각종 사업적인 정보와 기술도 공유하면서 공동의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서 새로운 협동조합이 설립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한국의 재벌그룹처럼 내부적으로 연대를 하기는 하지만,

그 연대하는 기준과 방식에서는 굉장히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그룹 본부의 인원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울마 그룹은 40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며 매출이 9000억원에 달하지만,

그룹 본부 직원은 10명에 불과하며 그룹차원의 금융, 인사, 브랜드 관리 업무만 지원해줍니다.


모든 전략적 의사결정은 개별 협동조합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며,

그룹 본부에서는 그야말로 조율만 해주고 그룹 차원의 안건은 협동조합들의 대표가 모여서 의결합니다.


특정인의 이해관계와 의사결정으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한국과는 달리

몬드라곤에서는 전형적인 Bottom-up의 의사결정과 전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업은 철저히 구분하고 수익은 연대한다는 기본 철학이 기반에 깔려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경영학에서도 최근에 항상 이야기하는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인데,

현실에서는 그게 그대로 구현되는 것을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교과서적인 요소들이 실제 구현되는 몬드라곤에서 와서

우리는 과연 그게 맞냐고 계속해서 물어보고 다닌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왜 그렇게 안하는데?'라는 그들의 질문에

우리는 궁색한 변명들만 계속해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Intercooperation


하면 좋은데 우리는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그것이 몬드라곤에서는 너무나 당연시 되는 일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