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2016.04.26_몬드라곤 연수단 - Ep.06 라군아로 (Lagun Aro)와 사회보장제도

몬드라곤 HQ를 방문한 이후 바로 언덕길 따라 내려와서,

이미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사회보장협동조합 라군아로(Lagun-Aro)를 방문했습니다.



라군아로의 시작은 1959년으로 올라갑니다.


스페인 노동부의 명령으로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자영업자로 분류되면서,

공공복지체계로부터 제외되어 버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1967년, 급여에서 공제한 기금을 기반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주요 시스템을 갖춘 라군아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은 Caja Laboral의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에 불과했다고 하네요)


같은 해 라군아로 같은 자발적 사회복지기관(EPSV)을 위한 정부 시스템 생기면서,

조합원들은 라군아로와 정부에 연금을 모두 내고 이중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 연금에는 최소한의 비용을 내고, 혜택이 더 좋은 라군 아로에 나머지를 내게 됩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첫번째 고용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1983년에는 이러한 문제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고용지원 기금을 최초로 설립합니다.


또한 1984년에는 일시적인 병가(sick-leave)와 의료 서비스(Health-care)부분에 대한

사회안전망으로써의 역할까지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나갑니다.


1999년에는 퇴직 후의 재정 운영(retirement coverage)을 설계하는

Arogestion이라는 자발적 사회복지기관(EPSV)을 추가로 설립해 2001년부터 2가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2005년부터는 바스크 주정부와 의료 서비스에 대한 협력사업을 진행하였고,

2008년부터는 라군아로는 바스크 주정부의 의료 서비스(Osakidetza)에 완전히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 라군아로의 연금과 개인 분담금을 대대적으로 개편합니다.


은퇴자들이 계속 들어나면서 지급준비금(solvency)이 상당 부분 고갈되기 시작했고,

정부차원에서도 정부의 자영업자 연금(RETA)에 보다 많은 기금이 모일 수 있도록 압박을 가했습니다.


라군아로는 장기적 관점(수익성과 지속가능성)에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조합원들이 정부의 자영업자 연금(RETA)에 60%, 라군아로에 40%를 부담하도록 시스템을 조절합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전체 연금의 40%만 라군아로의 연금 혜택(저비용 고효율)을 받게 됨으로,

실질적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승적인 결정을 합니다.


+


이 정도가 LagunAro 홈페이지 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략적인 정보이고,

한국에는 실업 재배치에 대한 고용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에 대한 부분만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이라고 하면 '노동인민금고'와 함께

'라군아로'를 가장 먼저 떠올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알려진 정보는 이 정도입니다.


과연 라군아로(Lagunaro)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갖고 들어갔습니다.


  


건물의 겉 모습도 매우 세련된 편이였는데, 사무실도 쾌적하고 개인 공간도 꽤 넓어보였습니다.

이 정도 근무환경이면 나름 일할 맛이 날 것같은 기분이 드네요...


 우선 우리를 맞아준 것은 LagunAro 마크가 찍혀있는 물과 사탕이였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이 동네에 이 정도 손님 대접이면 굉장히 신경써서 준비한 편이라고 하네요)


우리에게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주신 Mrs. Kontxi Benitez 는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부터 들려주면서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쇠고리가 들어간 로고를 라군아로의 로고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사실은 앞에 있는 로고가 진짜 라군아고의 로고라는 것입니다.


열쇠고리가 들어간 로고는

1983년 라군아로와 카하라보랄이 합작해서 만든 '라군아로 보험(주식회사)'의 로고이며,

2011년부터는 카하라보랄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한국에 있는 자료들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라보랄쿠차로 합병(2012)되기 전에 사용하던 '라군아로 보험회사'의 로고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3개의 로고가 모두 뜨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소비자 접점이 많은 보험회사의 로고가 가장 많이 노출되고 또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확한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가장 많이 쓰이는 로고가 맞는 줄 알기에,

그냥 열쇠고리가 들어간 로고를 선택해서 라군아로 로고인줄 알고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이외에도 노동인민금고와 라군라오, 그리고 이탈리아 우니뽈 보험이 합작한

'라군-아로 생명보험(1989)'도 있는데 두 회사 모두 꽤 많은 고객을 보여한 회사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


본격적으로 라군아로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2015년 기준(홈페이지) 가입자 27,970명에, 의료혜택을 받는 가족까지하면 69,875명으로

1984년 기준(making mondragon) 18,266명에, 의료혜택을 받는 가족 포함 47,465명이였던 것에 비교하면 

30년간 약 50%정도 인원이 증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연금혜택을 받는 사람은 12,538명으로 매년 500여명씩 증가하고 있으며,

1년에 지급되는 금액도 1억 6400만 유로(약 2193억 원)로

수령자가 증가하면서 총 지급 금액도 매년 천만유로(약 130억 원)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금 수령자에는 퇴직자(9,345명)와 과부(2,325명)뿐만 아니라 장애인(697명)도 포함되어 있지만,

장애인의 경우에는 비중도 매우 적고 인원도 정체되어 있지만, 퇴직자와 과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1인당 수령액은 본인이 납입한 금액과 상황에 따라서 많이 차이가 나지만,

평균으로 계산했을 때 매년 1인당 약 1750만원(월 146만원)정도 수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인당 실수령액의 경우에는 2010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2010년 연금제도의 개편으로 정부연금에 대한 부담금을 늘리면서 자동으로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라군아로에서 지급해주는 연금 이외에 추가적으로

정부에서 자영업자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을 받을 수 있기에 생활 수준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2015년 OECD에서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Pension at a Glance 2015)'에 따르면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50%로 앞도적 꼴찌(OECD 평균 13%에 4배)였으며,

전체 평균 소득 대비 60세 이상 노인들의 평균 소득도 60%로 꼴찌(OECD 평균 87%)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스페인의 노인 빈곤율은 7%에 불과하고, 노인들의 평균 소득도 전체 평균의 96%에 달합니다.

근데, 이것도 라군아로 시스템에 비하면 별로 혜택이 좋지 않다고 하고 있으니...




저희 연수팀원들도 이쯤 이야기를 들으니 흥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돈을 내길래 그만큼의 혜택을 받는 것인지

그리고 정확하게 정부 연금까지 포함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돈을 받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정확한 금액을 한 번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30분간 산수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


일단 라군아로에서 제공해주는 서비스는 단기와 장기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단기 서비스라고 하면, 의료혜택이나, 산재나 병가(급여의 80% 지원), 

임신과 출산, 육아, 장애아동 교육비 지원, 고용 중 배우자 사망 시 위로금 등을 의미하며,

매년 총 예산을 총 가입자 수에 따라 나눠서 비용을 책정하며 2015년기준 급여의 14.02%를 공제합니다.


여기에 장기서비스로 13.6%를 공제(2010년 이후 변경 기준)하고 있으며,

정부의 사회보장 18% 공제하고, 세금 16~17%까지 때고 나면 대략 급여의 40%를 실수령액으로 받게 됩니다.


연금과 사회보장에서만 30~40% 정도 때는 것이 굉장히 높기는 하지만,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자기가 회사의 주인기이 때문에 기업주 부담같은 개념이 아예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4대보험으로 8.5%를 공제하지만 기업주가 절반을 부담하기에 실제는 17%가 공제됩니다.

소득세도 사전 공제율은 대략 5% 이하지만 실질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10~15% 정도는 나오게 됩니다.

(소득구간 1200 ~ 4500만원 이하의 1인 가구의 경우 / 2015년)



결국은 스페인이 한국보다 소득세와 사회보험료가 더 높아보이기는 하지만,

몬드라곤 사람들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라군아로를 통해서 추가로 공제하는 27%의 금액과

이로 인해서 정부로 부터 받는 것 이외에 추가로 받게 되게는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부분입니다.


단기 서비스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1차적으로는 4대보험을 통해서 해결하는 부분이고, 추가적으로 사보험을 통해서 대체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의 기초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은 괜찮은 편인 듯합니다)


그렇게 보면 평균 14.02%라는 부분이 굉장히 과도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혜택을 얼마나 쉽게 받을 수 있는지와 그 혜택의 질을 생각하면 한국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실업급여나 의료보험, 산재 처리 같은 것을 처리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절차도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며 실질적으로 필요한 혜택을 못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시스템은 잘 되어있으나 이를 이용하기는 매우 힘들게 해놓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사보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정관과 옵션을 매우 복잡하게 짜놓습니다.

막상 어려움이 닥쳤을 때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것이 또 하나의 함정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라군-아로의 사회보장시스템의 경우에는

공제금액이 매우 커보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혜택을 받기 편하다면 유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라군아로가 본격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던 1983년 정부차원의 전국사회보장제도는

사기업으로 하여금 1년에 노동자 1인당 2,800달러를 납부하도록 했습니다.

(많은 사기업들은 보험룔를 납부하지 못했고, 정부에서도 제대로 징수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라군-아로는 자치 정부와 협약을 통해서 조합원들이 전국사회보장제도 대상자에서 제외될 수 있었고,

단지 1,600달러만 라군-아로에 납부하면 훨씬 뛰어난 보험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금액이나 서비스 내용은 많이 바뀌었지만 개별 협동조합이 각종 위원회에 직접 참여해서,

조합원에게는 최소한의 개인부담금을 부여하고 필요한 것을 채워준다는 기본 기조는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장기서비스 곧 연금에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사회보장시스템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과연 몬드라곤 사람들이 연금을 얼마나 받는지 실제 데이터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Mrs. Kontxi Benitez은 친절하게도

실제 데이터를 보면서 공제 금액의 수준과 현재 연금 수령의 금액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임금격차가 현재 1:6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 1.8 Level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로 설명해주었습니다.


2880.36유로의 급여를 받을 경우

연금으로 637.22유로(정부 267.70 / 라군아로 268.77)를 공제하고

라군아로의 단기서비스로 275.82유로를 추가로 공제하게 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공제률과 수치상으로는 차이가 존재하는데요.

이는 소득구간별 그리고 부양가족이나 추가 요소들을 고려해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암튼 대략 이 정도 수준의 공제를 하고 있다고 볼 때,

연금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수령하는지를 살펴보게 되면


현재 평균 퇴직 연령은 62.1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초창기 맴버의 경우에는 월 1,125유로를 라군아로에서 연금으로 받고 있고,

월 325유로를 정부에서 받고 있으니까 총 월 1,450유로(약 194만원)정도를 받고 있습니다.


1959년에는 개인부담금의 비율이 1:2 (정부기금:라군아로)였지만,

2010년 이후에는 개인부담금의 비율이 6:4 (정부기금:라군아로)로 변경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1인당 평균 연금 수령 금액은 조금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이 20년이상 가입해야 월 87만원씩 받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큰 차이지만 국민연금 공제율이 9%(기업주 부담 포함)인 것을 감안하면 비율상은 대충 비슷해 보입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20% 이상 공제를 한 다음에 나중에 더 많이 돌려준다는 것인데,

미래 환경의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수혜자 입장에서는 별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것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금은 안전할까?


한국의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지금은 돈이 넘쳐서 이곳저곳 투자하고 있지만,

이미 특례연금수령자니 뭐니 해서 상당금액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고갈 위험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경우에도 정부차원의 연금같은 경우에는

노령화는 급속히 진행되는데 청년 실업문제는 점점 고조되고 있어서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기금 고갈에 대한 이슈는 빠른 시일안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라군아로의 경우에도 현재는 6%이상의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어서

정부 차원의 연금에 비해서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수익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금을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4% 이상의 수익률을 유지해야하기에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빌바오에 근무 중인 투자 전문가들이 고생이 많다고 합니다.



연금 이슈에 너무 흥분해서 열띤 토론을 이어가다보니

어느 새 약속한 시간이 다되어버리면서 실업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이야기도 못하게 됐습니다.


실업과 노동자의 재배치를 위해서 몬드라곤의 협동조합들은 평소에 일정 수준의 부담금을 부담하고

근무자를 재배치할 경우 일정 금액을 라군-아로를 통해서 경비를 분담하게 됩니다.


일시적인 재배치의 경우에는 원래 직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기존 직장에 대한 조합원의 지위를 유지하며, 라군아로에서는 조합원의 교통비와 급여의 차액만 지원해줍니다.


영구적으로 재배치되는 경우에는 라군-아로는 특별 비용에 대해서만 지원을 해주고,

그 성격과 규모는 이사회에서 협의를 통해서 결정하게 됩니다.


실업 기간 동안 라군아로에서는 80%의 급여를 지급해주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는데 조합원이 재배치를 거부할 경우에는 실업수당을 포기해야합니다.


그렇다고 얼토당토 않은 곳에 재배치를 하는 것은 아니며 충분한 합의를 통해서 진행되지만,

파고르 가전의 파산같은 대형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별다른 선택권 없이 재배치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실업에 대한 재배치는 파고르 산업(Fagor Industrial) 방문기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이 번편은 여기서 마무리 해야할 듯합니다.


Mrs. Kontxi Benitez도 한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의 사회보장 시스템도 굉장히 흥미롭다며 꼭 한국에 한 번 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최근에 복지 이슈가 굉장히 화두가 되고 있는데,

정부차원에서의 복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터에서의 복지 문제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기업들이 자신들과 함께하는 노동자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시작이 스스로 주인인 협동조합에서 일어났으면 합니다.


[HBM] 2016.04.26_몬드라곤 연수단 - Ep.05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 (Mondargon Co-operative Corporation)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몬드라곤 시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몬드라곤 본사가 있는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안내도에서도 보여주듯이 몬드라곤의 주요기관은 이 언덕에 모여있습니다.


맨 꼭대기에 몬드라곤의 HQ가 위치해있구요.

그 밑에 어제 방문한 Laboral Kutxa(구 노동인민금고)

더 밑으로 내려오면 IKerian, LagunAro, Osarten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몬드라곤 시내의 모습이 대충 한 눈에 들어옵니다.

(눈에는 들어오는데 사진에는 못 담았네요. 파노라마 기능을 썼어야하는데... T.T)



한국 사람들은 흔히 몬드라곤이라고 하면

한국의 기업 현실에 비추어서 하나의 기업의 형태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삼성이나 현대처럼 그룹 총수가 존재하고,

다양한 사업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시도해 왔고,

높은 빌딩 하나에 다양한 계열사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이 한국적 특성입니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복합체이고,

각각의 협동조합들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명확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요 기관이 몬드라곤 시내에 모여 있을 뿐이지,

대부분의 협동조합과 자회사들은 바스크 지역 전반에 걸쳐서 완전히 퍼져있습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유대감이나 협동조합적 정체성이 약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많이 봤던 본사의 모습도 상징적인 조형물을 빼면,

한국의 대기업과 비교하면 상당히 조촐한 편입니다.



본사에 들어서 2층으로 올라가니,

일단 상영관처럼 생긴 곳으로 저희를 안내해줬습니다.


상영관의 한쪽 벽면에는 다양한 사업들을 상징하는 비주얼과 노동자들의 모습이

반대편에는 몬드라곤 시내 전경이 보여지는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15분짜리 몬드라곤에 대한 소개영상을 본 후

HQ의 Ander Etxeberria은 몬드라곤의 지리적 위치와 특성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한국의 방문객이 증가하면서 2014년부터 몬드라곤은 

한국어 더빙 버전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소개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많은 분들이 15분동안 열심히 녹화를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유튜브에 올라와있기에 고화질로 한국에서 편하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몬드라곤 공식 유투브 사이트에 영상이 올라온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조회수가 100정도밖에 안되는 것을 보면 한국분들이 아직 잘 모르시는 듯하네요.



영상은 몬드라곤의 기본적인 역사와 사업 영역과 현황에 대해서

비교적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한 번쯤 감상해 볼만 합니다.


영상을 다 본후 자리를 옮겨서 마틴교수님께

몬드라곤 복합체의 전반적인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흔히 몬드라곤에서는 4개의 기본 요소들이

몬드라곤 복합체를 받혀주는 기둥이 된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국타이어 나눔재단에서 오신 연수팀원은

즉석에서 메모장에 다른 비주얼로 몬드라곤의 구조를 재해석해냈습니다.

'몬드라곤을 책상보다는 자동차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몬드라곤이라는 자동차는 4개의 바퀴를 가지고 굴러가고 있으며,

그 안에 들어와 있는 협동조합들은 서로 연대를 하고 있고,

호세 마리아 신부라는 네비게이션이 부착되어 있으며,

인터코퍼레이션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체로,


일자리창출과 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목적을 향해서 달려가는

협동조합복합체가 몬드라곤이 아닐까?


 


마틴 교수를 통해서 몬드라곤의 기본 구조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들어왔지만,

훨씬 더 명확하고 정교하게 설명해주는 비주얼인 듯합니다.


+


이제는 몬드라곤의 사업 구조에 대해서 좀 더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몬드라곤의 사업은  크게 4개의 사업영역(area)으로 구분되며

그 밑에는 14개의 부분(division)으로 다시 재분류가 되는데 이 중에 12개가 산업 영역에 속합니다.


Finance area와 Retail area의 경우에는 각각 그대로 1개의 division으로 구성되어있으며,

 Knowledge Area에는 별도 division이 존재하지 않고 다른 영역들을 뒷받침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몬드라곤 대학과 R&D센터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부분의 협동조합들은 산업 영역에 속하며

12개의 디비전에 들어가 있는 이들의 구성이 가장 복잡합니다.


Automotive Chasis and Powertrain

CM Automotive

Industrial Automation

Components

Construction

Vertical Transport

Equipment

Houselhold

Engineering and Services

Machine Tools

Industrial Systems

Tooling and Systems


부문(division)이라는 것은 각각의 협동조합들이 속해있는 

2차 협동조합에 해당하며 디비전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기준은 업종에 해당합니다.


한국 대기업의 관점으로 본다면, 유사한 사업을 하는 회사들에 대해서는

그냥 하나의 회사로 통합하면 되는데 몬드라곤은 비슷한 상품을 만드는 협동조합들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기위해서는

몬드라곤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

몬드라곤은 1956년 울고(ULGOR)라는 협동조합으로 시작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울고가 빠르게 사업적으로 성공을 이루자

이에 자극받은 다른 기업가들도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설립하게 됩니다.


아라사테(1957), 코프레시(1963), 에델란(1963)의 경우에는

아예 사업적으로 울고의 협력업체로 시작해서 울고와 함께 점차 성장세를 이어갑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개별 협동조합들 간에

보다 긴밀한 연대와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 그룹의 형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미 사업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던

울고(Ulgor)와 아라사테(Arasate), 코프레시(Copeci)가 그 출발점이 되어줍니다.


1964년 3개의 협동조합은 각각의 앞 두 글자를 따서

울라르코(ULARCO)라는 이름의 최초의 협동조합 그룹을 만들게 됩니다.


여기에 1965년 사기업이던 주물 공장을 인수하여

울고의 주물 공장과 합병해 만들어진 에델란(1963)이 네 번째 회원사로 합류하고,


최초의 3개 협동조합에서 몇개의 부서들이 통합해서 새롭게 탄생한

파고르 전기 회사(1966)가 다섯번째 회원사로 합류하게 됩니다.



울라르코 설립 이후 처음 5년간(1965 ~ 1970) 그룹의 경영본부는

일부 보조 인원을 포함해 소속 조합의 경영진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서비스나 정보 교환에는 용이했지만,

그룹 전체의 전략적인 계획을 밀고 나가기 위한 지도력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1976년 파고르 전기회사, 1979년 울고가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되면서

그룹 차원에서의 개별 협동조합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울고의 적자는 큰 충격이였는데,

장기적인 계획없이 성장만을 이어오다보니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것이 그 원인이였습니다.


일하던 사람들은 계속 그 일만 하고 있고 능력이 부족해도 회사가 성장하니까 그냥 승진을 시켜주는

무책임한 성장 정책으로 인해서 조직이 건강하지 못한 체 몸집만 커진 것이였습니다.


1982년부터 울라르코의 경영진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인원을 감축하고

기존 인원들을 다른 협동조합이나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는 등의 체질개선을 진행하였고,

1985년 다시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성공적인 변화를 이루어 냅니다.


파고르 전기회사, 울고, 아라사테까지 연이어 경영난을 겪은 이후

1986년부터 울라르코의 경영진은 10개년 기본 전략 개발에 돌입하고 그룹을 재편하게 됩니다.


특히나 1986년 스페인이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하면서,

이제는 외국 상품들과의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기에 역으로 수출시장에 주목하게 됩니다.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

그룹의 공식적인 상표명을 울고의 대표 상품인 '파고르'로 지정하고,

산업을 기준으로 3개의 단위 구조(소비재/공업용 부품/공학 및 자본재)로 그룹을 개편합니다.


소비재 

 울고(1956), 레니스(1982), 파고르 클리마(1984), 파고르 산업(1974)

공업용 부품 

 코프레시(1963), 에델란(1963), 파고르 전기회사(1966), 레운코(1982)

공학 및 자본재 

 아라사테(1957), 아우르키(1981), 울다타(1982), 울마티크(1986)

(출처: Making mondragon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김성오 역), whyte 1991)



이 시기 울라르코(현 파고르)그룹만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노동인민금고과 유대관계를 맺어오던 다른 협동조합 그룹들 역시 경영난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노동인민금고는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하기 위해서

1982년 '협동조합의 경험'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협동조합 그룹들과 지원 조직에 회람을 시킵니다.


노동인민금고 자체적으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재정 능력을 강화해나갔지만 

이는 대부분의 협동조합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 이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이때부터 노동인민금고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서

신규 프로젝트 개발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협동조합을 지원해주기 시작합니다.


[해피쿱투어] 2016.04.25_몬드라곤 연수단 - Ep.04 라보랄 쿠차(Laboral Kutxa / 구 노동인민금고)


1984년 협동조합 그룹의 대의원들이 모여서

노동인민금고가 제출한 수정계획을 재검토한 후 공동 의사 결정 기구를 설립하기로 합의를 합니다.


그동안 각각의 협동조합과 협동조합 그룹들은 노동인민금고와의 유대를 통해서

서로 연계를 맺고 있었지만 연합체라는 형태를 갖추지 않고 각기 개별적으로 운영되어왔습니다.


하지만, 1993년으로 예정된 유럽공동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복합체가 필요하다는데 합의를 하고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GCM)'을 결성하게 됩니다.


1987년 제 1차 '몬드라곤 협동조합 의회'가 개최되고

협동조합 상호연대기금(FISO)의 설립 권고안을 통과시키게 되고,

1989년 2차 회의에서는 '교육과 협동조합 상호개발기금(FEPI)' 설립이 통과됩니다.


그리고 1991년 더욱더 강력한 연대를 위한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Group of Co-operative Mondragon)이라는 느슨한 연합체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기업(Mondragon Co-operative Corporation)이라는 '기업집단'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GCM)과 몬드라곤 협동조합 기업(MCC)의 가장 큰 차이는

지역에 기반해 만들어진 10개 이상의 협동조합 그룹들이 단순히 연대하는 수준을 넘어서

단일한 시장이나 유사한 기술에 기반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 부문조직으로 재편하자는 것입니다.


이 때부터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몬드라곤의 초창기 로고로 예상되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


1989년 GCM이사회가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모든 협동조합들을 부문(division)별로 완전히 해쳐 모이자고 주장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오랫동안 상당한 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동안 협동조합들은 각기 지역을 기반으로 협동조합 그룹을 형성하며 성장해왔습니다.


몬드라곤의 뿌리라고 알려진 파고르 (전 울라르코)그룹이

규모가 가장 크지만(15개) 파고르 외에도 14개의 협동조합 그룹이 존재했습니다.


그나마 업종별로 묶여잇는 데바코 그룹(6개/기계)이나 에레인 그룹(8개/농산물) 등은

부문별로 다시 해체모여도 기존 그룹을 유지할 수 있기에 큰 문제가 안됐지만,


빌바오 인근에 위치한 네르비온-이바이사발 그룹(12개)

고이에리 지역의 고일란 그룹(6개), 나바라 지역의 고이코아 그룹(8개)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한 10여개의 그룹들은 완전히 해산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결국 이부분은 이중 구조를 취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MCC 관점으로 보면 조직의 구조는 산업영역별 부문(division)으로 구분되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그룹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울마그룹에 속해있는 건설협동조합의 경우에는

MCC에서는 건설부문(division)에 속하지만 울마 그룹의 정체성은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기업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뭐 이렇게 쓸데없이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구조를 취하냐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렇게 얽히고설켜있는 조직 구조는 위기상황에서는 안전망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울마그룹의 방문 후기에서 구체적으로 다시 언급하겠지만,

개별 그룹 차원에서 한 번, MCC의 부문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연대를 하게 되면서

실적이 안좋을 경우 자금의 문제나 인력 순환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실적이 월등히 좋은 경우에는 실적인 나쁜 다른 곳을 도와주게 됩니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연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몬드라곤의 사업조직에 대한 이야기만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네요.


몬드라곤에 대해서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몬드라곤 HQ 방문 후기는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HBM] 2016.04.25_몬드라곤 연수단 - Ep.04 라보랄 쿠차(Laboral Kutxa / 구 노동인민금고)



그동안 호세 마리아 신부를 중심으로 몬드라곤의 기본 정신을 살펴 봤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현재의 몬드라곤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저희가 방문하기로 한 기관은 총 11곳이였습니다.


Otalora, Laboral Kutxa

MCC HQ / Lagun Aro / LKS,

Mondragon University & MTA / BBF & TZBZ

Saiolan / Koopera

ULMA Group / Fagor industrial


하루에 2~3기관 정도를 방문하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지만,

연수가 다 끝나고 나서는 이것도 좀 모자른 듯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Eroski나 Oinarri 등의 기관들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일단 이번 연수에서는 산업체를 지원해주는 기관들 위주로 구성했습니다.


+



1959년 설립된 노동인민금고(Caja laboral)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몬드라곤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는 대충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시기 상조라는 울고(ULGOR)이 지도자들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호세 마리아 신부는 다른 제자를 설득해 Caja laboral의 설립을 강행합니다.


하지만,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울고의 핵심맴버들이 Caja laboral에 합류하면서

사업은 급성장을 했고 신용조합을 넘어서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자본 조달을 목적으로 한 호세 마리아 신부의 최초 구상이 실현된 것이죠)


Caja laboral은 몬드라곤 내의 최초의 2차 협동조합입니다.

2차 협동조합이란 법인들이 조합운영에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담금을 지불한 다른 협동조합의 최고 경영진들이 2/3을

그리고 나머지 1/3은 직원조합원들의 대표들이 모여서 이사회를 구성합니다.


회원협동조합들은 4년에 한번씩 Caja laboral에 대한 회계감사 권한을 가지며,

사회적 또는 기업적 관점에서 감사도 실시해왔습니다.


(Caja laboral의 로고 변천사 - 출처: Laboral Kutxa 공식블로그)


이후 노동인민금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생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업국'이라는 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회사가 설립되어 손익분기점을 지나 이익을 내려면

최소한 3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기간동안 손실을 부담해주면서 신생기업을 발굴합니다.


회사 설립 후 몇 년간 회사 손실의 30%만 당시 비용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70%는 자본계정에 계상하여 7년간 상쇄하기도 하였으며

회사의 경영자체가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직접 개입하여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이는 몬드라곤 그룹 성장의 원동력이 됐으며 

단순히 금융 지원만 아니라 경영 전반에 대한 내용도 컨설팅까지 해주게 됩니다.


몬드라곤의 성장기 Caja laboral은 새로운 기업의 설립에 주목했으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는 위기에 처한 협동조합을 도와주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몬드라곤 성장의 원동력이였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역할을 변경한 것입니다.


또한, 1982년 스페인 경기가 침체되면서 정부차원에서 노동인민금고에게

전체 자산의 15% 범위 안에서 일반인 대출을 허용해주라고 요청을 하게 됩니다.


이는 노동인민금고가 본격적으로 일반인 시장에 진출하게 좋은 계기가 되고,

1982년 라군-아로와 손을 잡고 라군-아로 보험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으로 금융그룹으로 확장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82년 노동인민금고는 기업국의 분리를 시도합니다.


하나의 조직이 재정과 기업 관리 기능을 동시에 맞는 것이 좋지 않으며,

LKS로 분리하는 것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 보다 용이하기 때문이였습니다.

(이 내용은 LKS 방문기를 다룰 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이렇게 몬드라곤 역사에 한 장을 장식한

Caja Laboral의 이름이 낯설게 변했습니다.



2012년 CAJA LABORAL과 Ipar Kutxa 가 합병을 해서

LABORAL kutxa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2012년 IMF 구제 금융 이후 스페인의 은행들은 인수합병을 통해서 대형그룹으로 거듭납니다.

각 지역에 위치한 협동조합들도 자연스럽게 합병의 단계를 걷게 됩니다.


예금유치가 어려워지면서 저축은행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까사마리라는 제일 큰 신용조합도 일반은행으로 전환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strengthen a financial institution of social economy, that would provide services in its current market based on an alternative model to the one resulting in Spain as a result of the banking process of credit unions"


2012년 3월 처음 공식적인 대화를 시작한 두 기관은 명확한 목적을 설정했고,

Ipar Kutxa 역시 신용조합이였기 때문에 가치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스러운 방식으로 합병을 진행합니다.

(합병 당시 고객수나 자산 등의 지표에서 10배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2012년 3월 합병을 결정하고도 7개월간의 과정을 거치면 천천히 진행되었고,

각자의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하다가 2013년 6월에 드디어 이름을 변경하면서 최종적으로 합병이 완료됩니다.


합병 이후 가장 큰 효과는 업무 효율성이 증대되었다는 점입니다.


Caja Laboral은 규모가 10배 정도 컸지만

오래된 직원이 많았고 시스템도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반면에 Ipar Kutxa의 경우에는 젊은 직원이 많았고,

지점의 위치도 90% 이상이 Caja Laboral 근처에 위치하면서 불필요한 지점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지점 당 직원수를 늘리고 IT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오래된 분은 

61세에 조금 일찍 명예퇴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습니다.


몬드라곤의 경우 명예퇴직은 진짜 명예퇴직이라서

서로 빨리 명예퇴직을 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싶어합니다.

(노후 보장이 잘되어있기때문에, 일찍 퇴직하고 연금으로 생활하는 삶을 즐깁니다)


합병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난 로고도 매우 인상적인데요.

두 기업의 정체성을 아주 절묘하게 잘 살린 광고 캠페인도 합병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합병으로 인해서 Laboral Kutxa는

바스크에서 가장 큰 신용조합이면서 동시에 3번째로 큰 금융기관이 되었고,

스페인 전체에서는 3번째로 큰 신용조합이며, 유럽에서는 유일한 노동자 협동조합 은행입니다.

(유럽 내 훨씬 큰 규모의 협동조합은행이나 신용조합은 많이 존재합니다)


현재 110개의 협동조합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조합원으로는 1,950명이 근무중입니다.


합병이후 총회의 구성이 좀 변경되어서

협동조합 대표단이 55%, 노동자들이 45%를 차지하고 있구요.

이사회는 그대로 협동조합 대표 8명과 노동자 대표 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자산이 246억 유로, 자본금 14.4억 유로, 수익 1억 유로

고객수 1,182,000명, 노동자 2,026명, 지점수 370개(73%가 바스크 지방)를 기록중입니다.

(2013년 12월 31일 기준)


+


Laboral Kutxa의 특징 중 하나는 그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50%는 적립금으로 남겨두고,

10%는 교육 및 촉진 기금으로, 15%는 연대기금으로 남겨둡니다.

(나머지 25%는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하구요)


결국은 몬드라곤에 있는 기관에 30% 정도가 돌아가게 되는데는

이 금액이 지난 12년간 4억 유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또한, 빌바오 지역의 청년 실업률이 50%에 달하자

1994년부터 소규모 비즈니스를 위한 Gaztempresa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2002년에는 재단을 설립해서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합니다.



처음에는 카리스타(가톨릭 계통의 NPO)와 함께 시작했으나

점차적으로 바스크 정부와 몬드라곤도 참여하면서 120만 유로의 기금이 급증합니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Gaztempresa에 지원을 하게 되면,

인터뷰를 통해서 50% 정도만 선정이 되고, 이 중에 50%는 사업 계획서 단계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사업을 런칭한 경우의 3년 후 생존률은 80% 정도 수준으로 매우 높다고 하네요.

(결국 지원자 중에 20%만 사업에 성공해서 생존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식당이나 숙박업(13%)이 가장 많고, 헤어샵&화장품샵(12%), 옷가게(10%)

청과물상(10%), 문화&교육(7%), 운송수단(7%), 프리랜서(6%) 정도로 분포되는 것을 봐서는

진짜로 청년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1994년 이후 3000개 이상의 새로운 사업이 창출됐고, 6000명 이상이 고용되었다고 합니다.

2014년에도 4개월만에 263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하니 실적이 꽤 좋은 편입니다.


100만 유로도 안되는 예산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바스크의 대표적인 자영업자 개발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Laboral Kutxa에서는 이를 위해서 60만 유로의 대출을 해주고 있으며

Gaztempresa 의 자원봉사자 가운데 38%는 Laboral Kutxa 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맞아주신 분은

Jon Emaldi Abasolo, Business Model and Quality Director 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책을 받으시고 어찌나 기뻐하시는지...)


Jon Emaldi Abasolo은 금융위기에서

Laboral Kutxa가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로


우선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에서도 깨끗했던 점을 들었습니다.


고객과의 관계도 좋은 편에서 고객들의 신뢰도 있었고,

필요한 시기에 합병에도 성공했던 점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대출은 초창기 75%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2.5%밖에 안되는데

이제는 협동조합을 지원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페인 정부에서는 더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대규모의 협동조합들이 이제는 Laboral Kutxa에 의존하지 않고 15개 정도의 은행과 거래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규모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아직도 자금조달의 25% 정도는 Laboral Kutxa에 의존합니다)


어느새 Laboral Kutxa의 기능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네요.


하지만, 대규모 협동조합이 이제 더 이상 Laboral Kutxa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일반은행들의 의식수준이 많이 달라졌고, 그만큼 사업적으로도 안정됐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Laboral Kutxa의 설립 기능을 생각한다면

소규모 협동조합에 대한 자금조달에 주목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구요.


다면, 또 한 번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Laboral Kutxa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냐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듯합니다.


Caja Laboral의 초창기 모델조차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

Laboral Kutxa의 이러한 걱정들이 한 편으로는 부러운 것도 사실이네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인 시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설립 정신을 잃지 않고, 성공적으로 합병을 이루어낸 점에서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Caja Laboral이 그랬던 것처럼 Laboral Kutxa도

몬드라곤의 심장으로써 수많은 협동조합을 도와주는 역할을 잘 수행하길 기대합니다.


+


P.S.

Laboral Kutxa의 경우에는 바스크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 농구단의 메인 스폰서를 하고 있습니다.


Deportivo Saski-Baskonia S.A.D.


덕분에 Laboral Kutxa에 정보 검색을 하면

농구단에 대한 정보 중에서 옥석을 아주 잘 골라야 한다는 함정이 있습니다.


[HBM] 2016.04.25_몬드라곤 연수단 - Ep.03 오타롤라(Otalora)와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오타롤라(Otalora)는 1984년 만들어진 최고경영자들을 위한 교육시설입니다.

처음에는 '이카스비데'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지만,
1990년부터 오타롤라(Otalora)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몬드라곤은 초창기부터 교육이라는 부분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1943년 기술전문학교가 문을 연 이후로 1961년 경영전문학교를 설립했으며,
사이올란이나, 인근 학교나 유럽의 다른 국가로 유학을 보내는 추가적인 교육도 진행해왔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그룹 내 제조업 고용 인원이 줄면서 기술전문학교 졸업생이 줄어들었고,
대졸 신규 채용의 대부분은 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을 갖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영입된 협동조합 초심자 간부들에 대한 교육 문제와
노동자 출신의 내부 승진이 어려워지는 이슈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현대적 교육센터로 설립된 '이카스비데'를 오타롤라로 이름을 바꾸고,

협동조합 최고 경영자 과정을 신설해 질 높은 교육 훈련 연구 기관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오타롤라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사람은 어제 만났던 Jose Maria Ormaetxea입니다.)



오타롤라(Otalora)의 가장 큰 매력은 주변의 자연 환경입니다.

연수단은 한참 동안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몬드라곤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오타롤라는

14~15세기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옛 장원 영주의 버려진 저택을 개조하여 사무실과 세미나실,

동시통역 시설, 그리고 35명이 생활할 수 있는 주거 시설 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주로 트레이닝 센터로 몬드라곤 대학과는 다른 형태의 다양한 훈련이 진행되며,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도 존재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트레이닝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내부 인테리어도 굉장히 깔끔하고 고풍스러워서

여기에 있으면 저절로 학습이 잘 될 것같은 동화 속에 나오는 별장같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오타롤라의 한쪽에는 몬드라곤의 사내소식지인

<TU Lankide(구 노동과 단결)>을 발행하는 편집국도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제자였다는 Javier Retegui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곳은

신부님의 개인적인 물품과 책, 그리고 사진들이 모아져 있는 뮤지엄입니다.



작고 소박한 곳이지만 중요한 자료들을 모아둔 곳으로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 쓰신 6,450개의 작은 글을 보관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한 쪽에는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소지품들이 생존하셨을 때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고,

나머지 3개의 벽면에는 시대순에 맞춰서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스토리와 소장품들을 전시해두었습니다.



책상에는 타자기와 성경책, 안경, 그리고 나침반이 놓여져있고,

책상 뒤편에는 항상 타고 다니시던 전동자전거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습니다.


뒷편에는 신부님의 초상화가 보이며, 앞에는 제의가 옷걸이에 걸려있습니다.

마치 잠시만 자리를 비우신 것처럼 모든 것이 가지런히 놓여있을 뿐입니다.



바로 옆에는 세계 각국에서 자신의 언어로 출판된

호세 마리아 신부님에 대한 책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김성오 선생님이 쓰신 <몬드라곤의 기적>도 책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옆에 왠지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둔 것처럼 공간이 비어있었습니다.



저희가 준비해갔던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이 자신이 갈 곳을 찾은 듯합니다.

연수단 전원은 한글 번역서에 자신들의 사인을 남기고 책을 전달해드렸습니다.


칼폴라니연구소와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의 첫 번째 협력작품인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한글판이 오타롤라 박물관에 전시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박물관에 비치될 것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애에 대해서 너무나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준

Javier Retegui에게 감사의 표시로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한글판을 전달해주었습니다.


하지만, Javier Retegui은 이것을 개인화하지 않고

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책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이번 연수단의 첫번째 테마였던

호세 마리아 신부의 100년을 따라잡기는 여기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빌바오의 기념 포럼

산세바스티안의 기념 미사

몬드라곤의 기념 광장 개원식

오타롤라의 기념 공간


호세 마리아 신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따라가면서

저희 연수단은 몬드라곤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호세 마리아 신부를 만나봤습니다.


굉장히 실용적이면서도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던 신부님은

심지어는 '협동조합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직 중에 하나'라고 까지 이야기 하셨습니다. 


오늘날 협동조합주의는 권력의 인간화와 경제민주화와 단결을 통해서

양심과 문화의 새로운 국면을 창조해왔습니다.


과연 앞으로의 협동조합도 그 유연한 자세와 사회적 역할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를 활용해서, 과연 어떠한 협동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저희는 이제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현재의 몬드라곤 복합체를 만나러 다시 몬드라곤 시로 이동했습니다.



[HBM] 2016.04.24_몬드라곤 연수단 - Ep.02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글을 연재하면서 왜 이 연수팀이 기획되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팀이 구성되었는지를 먼저 설명했습니다.


[HBM] 2016 몬드라곤 연수단 - 프롤로그


굳이 글을 연재하기 전에 프롤로그를 정리한 이유는

이러한 특징들이 이번 연수의 색깔을 굉장히 독특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매우 다양한 심지어는 매우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분들이 연수단에 합류했습니다.

그 덕에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서로의 스승이 되어서 상호 학습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현지에서 각자 보고 느끼고 생각한 점도 있지만,

다른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수많은 지식이 새로 창출됐습니다.


이는 현지 체험만으로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지식이였으며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몬드라곤이라는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연수팀은 매일 아침을 대화를 통해서 시작했고,

시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버스에서라도 서로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처음 Check-in을 시작할 때만해도 굉장히 서먹서먹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더욱더 풍성해지고 언제나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


또 하나의 특징은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즈니스 혁신을 위해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MTA를 체험하기 위해서 방문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몬드라곤의 현재 모습을 보기 위해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적 출발점인 호세 마리아 신부와 새로운 경영교육방식을 통해서 몬드라곤의 미래를 그려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짧은 연수를 통해서 그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1주일 내내 연수단은 현재의 몬드라곤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의 출발점은

몬드라곤을 시작하게 만든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발음하기도 힘든 이 이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길기에 연수단에서도 줄여서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일생에 대한 기록들은 이미 국내에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몬드라곤에 대한 기록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6165

http://m.blog.naver.com/workercoop/220502828838


그리고 칼폴라니연구소와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에서는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책을 번역해서 국내에 출간하였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30028.html


그리고 2015년 교황청이 발표한 '가경자' 명단 12명에

호세 마리아 신부의 이름이 포함되었습니다.


'가경자'는 공경이 가능한 분이라는 의미로 성인으로 추대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에 해당되며

시복의 단계를 거치면 '복자'의 반열에 오르고, 이 후 시성의 단계까지 거치게 되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단계가 올라갈수록 매우 엄격한 자격을 요구하며 기나긴 검증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성인이 되려면 순교를 하지 않는 한 2개 이상의 기적을 반드시 행해야합니다.

과연 호세 마리아 신부의 업적이 기적으로까지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


호세 마리아 신부가 생존해 계셨다면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몬드라곤에 대해서 가장 오랜기간 치밀하게 분석한 자료 중 하나를 살펴보면,

Making Mondragon(몬드라곤에서 배우자) - William Whyte & Kathleen Whyte (1991)


호세 마리아 신부는 공식적으로
자기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싫어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제자들과 매일 저녁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고,
중요한 사업적 전략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초창기에는 직접 행동에도 옮겼지만,

'노동과 단결(Trabajo y Unión / 사내소식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 이외에는
몬드라곤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으셨고, 전면에 나서는 일도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각종 행사가 열리고 성인추대를 위한 움직임이 나오는 것을 좋아했을리는 만무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몬드라곤과 협동조합운동가들의 노력이 이해가 갑니다.

몬드라곤이 만들어진지 벌써 60년이 넘었고,
이제는 3세대를 넘어서 4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로의 통합 이후 몬드라곤은 거대 복합체로 다시 태어났고,
글로벌 시대에 지역에 기반한 협동조합의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 몬드라곤 시내도 그렇고 바스크 지역 전반에 노인들이 엄청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은퇴를 한 분들이며 손자손녀를 돌보거나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변화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들이 협동조합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이들을 묶어줄 수 있는 구심점이 반드시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협동조합에 대한 철학은
단순히 교조주의적이지 않고 매우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있기에 몬드라곤의 뿌리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은 돌아가신 이후에도 큰 역할을 해주시고 계신 듯 합니다)

연수단은 바스크 곳곳에서 열리는
100주년 기념 행사들의 생생한 현장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

이번 연수단은 호세 마리아 신부 탄생 100주년 기념 포럼에
Gsef 공동의장이신 송경용신부님이 연사로 초청받으면서 처음 기획되었습니다.


빌바오를 방문하시게 된 송경용신부님과 HBM의 송인창 소장은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는 김에 Gsef 관련 미팅과 몬드라곤 연수까지 동시에 기획해버리셨습니다.

Gsef 사무국의 경우에는 포럼 참석 후 미팅만 하고 돌아갈 예정이였는데,
현지에서 추가적인 미팅이 계속해서 생기면서 결국 연수기간 내내 함께하게 됐습니다.


포럼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이 한국의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현하면서 앞으로도 많은 지원을 해주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송신부님 옆에는 President of Mondragon Corporation Mr Javier가 함께하고 있네요.)

뒤늦게 바스크에 도착한 2진의 경우에는 100주년 기념 포럼에는 참석하지 못했는데요.
대신 첫 일정으로 산세바스티안에서 열린 기념 미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12월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 '가경자'가 되신 이후에
과연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 성인의 반열까지 오를 수 있을지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몬드라곤의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면서
프랑코 독재에 맞섰던 독립투사 경력도 있기 때문에
성인으로 추대될 경우 정치, 사회, 종교, 경제 모든 분야에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경우에는 당시 가톨릭 신부들 사이에서도 이단아로 불렸다고 합니다)

2015년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성인으로 추대될 때도
업적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기적이라는 부분에서 논란이 많았고 시간도 오래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업적만 놓고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성인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기념하는 미사에
이탈리아에서 추기경까지 직접 온 것을 보면 바스크 사람들만의 희망사항은 아닌 듯합니다.


이탈리아 추기경 이외에도 수많은 대주교들이 자리를 함께하면서,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를 합심하여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종교계 관계자들 이외에도 수많은 제자들과 가족들도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특히 '울고(ULGOR)'의 창립자 중 1명인 '호세 마리아 오르마에케아'는
100주년 기념 포럼에 이어서 기념 미사에도 참석하며 아직도 정정함을 보여주셨는데요.

다음날 몬드라곤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또 다른 생존자인 '알폰소 고로뇨고이티아'와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

산세바스티안 선한 목자(Buen Pastor) 성당에서의 미사를 마치고,
다음날 저희는 몬드라곤 시내로 이동해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빌바오에서의 기념포럼, 산세바스티안에서의 기념미사에 이어서
3번째 기념행사는 몬드라곤 시내에 신부님의 이름을 딴 광장 개원식이였습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광장을 만든 것은 아니구요.
원래 존재하던 광장인데 그 이름을 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Square라고 명명하고
100주년 기념 명판(commémorative plaque)를 공개하는 행사였습니다.

몬드라곤의 주요인사들이 한 자리에 다 모였습니다.

Maria Ubarretxena, mayoress of Mondragon
Javier Sotil, president of MONDRAGON
Miguel Ángel Laspiur, president of ALE (Arizmendiarrietaren Lagunak Elkartea)

Javier 아저씨는 포럼에 이어서 또 한 번 만나는 것인데요.
그 옆에 앉아있는 Maria의 경우에는 저 분이 시장일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2014 Gsef에도 참석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때만 해도 바스크 정부의 사회적경제 담당관이였다고 하네요.

30대의 미녀 시장이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심지어 연수단의 모든 사람들을 제치고 가장 키도 크네요...


광장 기념식에는 몬드라곤의 첫 번째 협동조합인 울고(ULGOR)의 창립자 중에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2명의 창립 맴버가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Alfonso Gorroñogoitia and Jose Maria Ormaetxea


몬드라곤의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특히 알폰소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노동인민금고와 몬드라곤 전체를 대표해온 경영자이고,
호세 마리아의 경우에는 중요한 시기마다 돌격대장처럼 앞장섰던 해결사입니다.

나머지 맴버들이 생존해 계실 때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주셨는데,
90이 넘은 고령이 되어서도 마지막까지 중요한 자리에 함께해주시네요.

이러한 1세대 경영진과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철학과 존재감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였습니다.

(울고의 5명의 최초 창립자 중 가운데 위치한 2명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하게 행사를 준비한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손님을 많이 초대한 것도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방문한 연수단이 이 행사를 국제적인 행사로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귀하신 분들과 사진은 원없이 찍었네요. 심지어 책에 싸인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행사에 젊은 세대는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올드보이들을 위한 추억을 회상하는 자리로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저희 연수팀은 몬드라곤 젊은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도 젊은이보다는 노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몬드라곤 시내의 모습에서도
과연 몬드라곤의 미래가 어떨지 매우 궁금해진 것입니다.



이들에게 협동조합이 고리타분한 구식의 조직체는 아닌가?
과연 협동조합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저희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소장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오타롤라(Otalora) 내에 있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HBM] 2016.04.23_몬드라곤 연수단 - Ep.01 빌바오 공항과 가톨릭 문화


해외에 나갈 때 공항은 언제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수많은 이별과 만남이 있는 곳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곳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공항들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손을 통해서 세계적인 건축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의 뉴욕 JFK공항과 워싱턴 델러스 공항,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홍콩 첵랍콕 공항과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커티스 펜트레스(Curtis Fentress)의 덴버 국제공항, 인천 국제공항, 산호세 국제공항 등


어느새 공항은 그 기능성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빌바오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입니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명소답게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손을 거친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디자인한 빌바오 국제공항 역시

'라 팔로마(La Paloma/비둘기라는 뜻)'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계적인 건축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건물 중앙에 있는 세모꼴 돌출부의 양쪽에 대칭으로 펼처진 날개 형상이

하얀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데,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사진 출처 : getty image)


빌바오 공항은 쾌적한 내부 공간 디자인으로도 유명한데,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쪽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있는 외팔보(cantilerver)공법을 활용해

실내에 기둥이 없어서 시원한 느낌도 들고 공간에 대한 효용성도 높였다.



빌바오 시내에서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의 손을 거친

또 하나의 명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스크어로 '하얀 다리'라는 의미를 가진 '주비주리(Zubizuri)'는

현수구조(철골구조물로 다리를 매달아서 지탱하는 공법)으로 지어진 다리입니다.

(다리 뒤로는 일본의 건축가 이소자키가 설계한 쌍둥이 빌딩도 보이네요)


빌바오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해보니,

숙소 바로 옆에 성당(Basílica de Begoña) 하나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바실리카(Basílica)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고풍스러운 것이 역사가 오래된 성당이라는 것을 지레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간 날때 한 번 살짝 산책이나 가보면 좋겠다~'

생각하고 숙소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산책 갈 타이밍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숙소에 들어간 2진은 바로 짐만 숙소에 풀어두고,

 먼저 일행을 기다리고 계시던 송신부님과 함께 바로 저녁 먹으로 길을 나섰는데...


엘고이바(마틴 고향)를 방문하고 돌아오기로 했던 1진이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송신부님을 따라 자연스럽게 성당을 구경하게 됐습니다.



성당 앞 길에 있는 플라타나스 나무들은 아쉽게도

모두 가지치기가 되어있었고, 서로 가치를 엮어놓은 모습이였습니다.

(타이밍이... 나중에 오면 참 이쁘겠네요...)


마침 토요일 저녁 미사가 진행중이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이번 연수는 가톨릭 미사로 첫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성당에 계신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어딜가나 노인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성당은 1503년 처음 지어졌지만, 

지금의 모습은 1610년경에 만들어졌고, 전형적인 바실리카(Basílica)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바실리카(Basílica) 형태 알아보기 > 클릭


성당은 웅장했고, 조용했으며 왠지 모를 성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같은 범인들은 유럽의 흔한 고딕 양식 성당과 차이점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를 어여삐 여기신 송경용신부님께서는 일행들이 보지 못하는
이 성당이 가지고 있는 3가지 특이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첫번째로는 스테인글라스 위주로 양식되어있는

다른 유럽의 성당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성화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성당이 상당부분이 전쟁으로 파괴되어서 후대에 다시 지어졌다고 합니다.)


스테인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활용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대부분 성당들의 전통적인 방식인데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재단의 한가운데를 성모마리아 상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성상이 한쪽 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성당에서는 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게 이 성당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빌바오 지역의 특징인지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빌바오나 바스크의 특징은 아닌 듯합니다)


빌바오 산티아고 성당의 가운데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상이

산세바스티안 선한 목자 성당의 가운데에는 양을 치는 예수님 상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특징은 바닥이 살짝 기울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성당은 그 시내의 중심지역이나

아주 높은 곳에 잘보이게 위치하는데요.


빌바오 같은 경우에는

언덕의 높은 지역에 베고 나 성당(Basílica de Begoña)이 있고, 

시내 한 복판에는 산티아고 성당(Catedral de Bilbao - Santiago)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 언덕에 만들어진 성당의 경우에는 자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재단쪽이 약간 높게 기울어진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설계될 경우에는 신도들의 입장에서 재단을 보면서,

마치 천국으로 점차적으로 올라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베고 나 성당(Basílica de Begoña)의 경우에는

바스크 지역의 가톨릭 문화와도 많은 연관성과 역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스크 지역은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의 지역들보다 가톨릭이 늦게 전파되었습니다.

이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특성과 관련이 있는데, 8세기 프랑크 왕국을 통해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가장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고,

현재에도 약 90%의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로 분류될 정도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입니다.


심지어는 가톨릭에서 매주 금요일과 성스러운 날 뜨거운 피를 가진 동물을 못먹게하자

소나 닭을 못먹을 때를 이에 대한 대용품으로 고래고기가 유럽 전역에서 유행을 하게 되는데

고래잡이를 상업적으로 처음 시작한 것도 바스크인들이라고 합니다.


특히나 가톨릭 2000년사에 길이 남을 인물인

예수회를 창시한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가 바스크 출신입니다.


또한, 최근에 한국에서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레자의 길의 경우에도 바스크 지역을 관통하게 되어있습니다.

(콤포스텔라는 바스크 지역은 아니지만, 루트의 주요 스팟이 바스크를 관통합니다)


+


가톨릭이 바스크 지역에 뿌리를 내린 이후에는

바스크 지역의 오랜 투쟁의 역사에서 성당은 중요한 구심점의 역할을 합니다.


특히나 베고 나 성당(Basílica de Begoña)의 경우에는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나폴레옹 전쟁과 2차례에 걸친 칼리스트 전쟁에서 중요한 거점을 활용됩니다.


그 과정에서 건물이 상당부분 손상되지만

1876년 다시 복원되어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20세기 들어 프랑코 독재 시기에는

정부에 대항하는 모임 장소로 성당이 주로 활용됩니다.


칼리스트 전쟁 시에는 가톨릭 신자인 칼리스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것과

바스크 지역의 분리 독립에 대한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정부군과 전면전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면,


프랑코 독재 시기에는 가톨릭을 옹호하는 프랑코의 특성을 활용해서

안전하게 분리 독립을 위한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피난처로써 성당이 활용되었습니다.

(프랑코 독재 시기의 모든 지역의 성당은 중요한 정치적 거점이 됩니다.)


이렇게 베고 나 성당(Basílica de Begoña)뿐만 아니라

바스크의 전 지역에 걸쳐서 성당은 중요한 문화적 정치적 거점으로 활용되었고

그만큼 가톨릭 문화는 바스크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는 몬드라곤과 협동조합운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가 몬드라곤에 심어둔 협동조합 정신은

바스크의 지역적 특성과 가톨릭 문화를 영향력을 빼놓고 설명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이번 연수은 몬드라곤의 현재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뿌리가 되는 바스크 지역과 가톨릭 문화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이번 연수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든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


[HBM] 2016.04.23_몬드라곤 연수단 - Ep.00 바스크의 도시들 (빌바오, 몬드라곤, 산세바스티안)




제가 이번 연수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출발 2주전이였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서 연수단이 구성되는 것은 알았지만,
제가 이번 연수단에 합류하게 것은 상상도 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Gsef 송경용 신부님과 HBM 송인창 소장님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팀이 꾸려졌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 많이 합류한다고 들었기에 사실 부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HBM연구소와 함께하면서 몬드라곤에 대한 최신 정보를 가장 많이 수집해왔고,

몬드라곤의 창업교육프로그램인 MTA 도입을 위한 미팅도 있기에 연수단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사전모임에 대한 내용도 미리 통보받지 못해 참석하지 못하면서,
누가 연수팀에 합류하는지도 모른체 얼떨결에 막판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송경용신부님과 송인창 소장님을 비롯한 1진은 빌바오에 있었고,
저를 비롯한 나머지 4 + 미국에서 직접 합류하시는 1명은 2진으로 토요일 합류하는 일정이였습니다.

인천에서 파리 드골 공항을 경유해 빌바오 공항까지...
무려 17시간의 여정이 걸렸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가장 짧은 동선이라고 합니다.
(
프랑크푸르트나 이스탄불, 마드리드를 경유하는 항공편도 존재하지만 시간은  오래걸린다고 하네요)

몬드라곤은 추가로 빌바오에서 차로 1시간을 더가야만 하지만,
몬드라곤에는 적당한 숙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빌바오에 숙소를 했습니다.

덕분에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가장 도시이자
세계적인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손꽂히는 빌바오에서 1주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빌바오의 도시 재생 이야기 보러 가기 > 클릭




+


만약 어떤 이가 그대들에게 영국을 찬양하면, 그는 영국 사람일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프러시아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그는 프랑스 사람일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스페인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그는 스페인 사람일 것이다. 

- 페르난도 디아스 플라하(스페인 역사학자) -


오랜기간동안 연방제 국가로 지내 온 스페인은

지역마다 특성이나 성격이 다를뿐만 아니라 지역 감정이 심하기로 유명합니다.


특히나 바스크 지역은 인종과 언어까지 달라 오랫동안 분리 독립 운동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무장 투쟁은 포기했지만 분리 독립 운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에 스페인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대부분 아프리 북부에서 건너온 이베로족과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켈트족이 합쳐진 켈트 이베로족인 반면에,


바스크인들은 10만년 전부터 피레네산맥 인근지역에 모여살면서,

7000년 전부터 고유언어인 에우스케라어(Euskadi)를 사용해왔습니다.


로마시대에도 무어족의 침략에도, 프랑크 왕국, 까스타아 왕국에 대해서도

바스크 지역은 나름의 자치권을 인정받으면서 독특한 문화를 유지해 올 수 있었고,

독립을 위해서 오랜세월동안 투쟁을 해온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2차대전 전후의 바스크 독립운동 역사를 보면,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바스크 민족주의로 이어지고 있고,

문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독립적인 지역으로 만듭니다.


바스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The Basque History of the World (Mark Kurlansky, 1999)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대구 이야기(The Cod's Tale>라는 책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내용인데,

친절하게도 중앙대 이상돈 명예교수가 한글로 요약해서 자신의 홈페이지 올려놓으셨네요.


이상돈 명예교수 홈페이지 - 책 요약 내용 보기 < 클릭


 


바스크는 전통적으로 7개 지방으로 구성되며,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남부(Hegoalde) 4개 지방과 북부(Iparralde) 3개 지방으로 나뉩니다.


남부의 4개 지방은 스페인에, 북부의 3개 지방은 프랑스에 편성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남부 바스크의 3개 지방은 1979년부터 자치권을 얻어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행정구역 상 바스크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페인의 3개 지방이 대체적으로 바스크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스페인의 금융 1번지 빌바오가 있는 비즈카야(Bizkaia)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산세바스티안이 있는 기푸즈코아(Gipuzkoa)

바스크 지방 자치주 정부가 위치한 비토리아가 있는 알라바(Araba)


이 중에 이번 연수단은 몬드라곤(아라사떼)과 오나티 이외에도

빌바오와 산세바스티안(도노스티아),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한 엘고이바(Elgoibar)를 방문하였습니다.



+


17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강국이자 해상을 지배했던 스페인은

17세기 30년전쟁, 18세기 왕위계승 전쟁, 19세기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미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고, 20세기 들어서는 어느 새 유럽의 변방이 되어버립니다.


중에서도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 전체로 봤을 때는

가장 소수지역이고 가장 변방이라고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스페인 전체 인구 4677만 / 바스크 지방 인구 218만 / 2014년 기준)


또한, 예전에는 피레네 삭맥 인근에 개인농장인 카세리오를 중심으로 인구가 넓게 분산되어있었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구의 4/5가 산세바스티안이나 빌바오 같은 해안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통적인 거주지역에 해당하는 몬드라곤 같은 지역은

바스크 지방에서도 변방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변방인 스페인
스페인에서도 변방인 바스크
바스크에서도 변방인 몬드라곤



한국과 비교하면 강원도 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중소도시들과 가장 유사하다고 수도 있습니다.

남부 스페인쪽의 아름다운 날씨만 생각하고 옷을 가져갔다가,
모든 팀원들은 1주일 내내 추위에 벌벌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보다 약간 추운데다가 일정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일교차가 엄청나고 습기도 많아서 밤에는 거의 초겨울 날씨에 가까웠습니다.

사회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올드하고 보수적이며 노인 인구 비율도 굉장히 높아보였습니다.

혁신적인 도시재생의 도시 빌바오나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몬드라곤에 대해 기대한 이미지와는 사뭇달랐습니다.

빌바오와 몬드라곤에서 일어난 혁신들은
어떻게 보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

여기에 비하면 산세바스티안은 굉장히 깔끔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했습니다.

프랑스에 가까운 지역이라서 그런지 건물들이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보였고,
실제로도 '리틀 프랑스'라는 별명으로도 많이 불린다고 합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도 아름다웠지만,
실제 도시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닐 보이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였습니다.

주일이라서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기는 했지만,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과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가 인상적이였습니다.

과하지도 않고 깔끔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간판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물과 거리, 도로, 간판,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빌바오와는 사뭇달랐습니다.

빌바오(40) 이어서 바스크 지방의 2 도시(20)이지만,
평균 소득이나 집값등을 고려했을 생활 수준은 오히려 높다고 합니다.

특히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했지만,
저희가 방문한 집의 요리는 너무 짜서 먹을 없었다는...

(스페인 음식 대부분은 한국인의 입맛에 짜기에, 주문할 때 반드시 안짜게 해달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

주일날 오전에 연수팀은 하나의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곳은 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시골인데요, 바로 마틴 교수의 고향 동네입니다.

저희가 굳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도시가 아닌
일반적인 시골 마을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틴의 고향이기도 하구요)

우선 마틴의 아버지가 30년간 근무한 공장에 갔습니다.
일요일이니까 당연히 공장이 열지않고, 주변에 모든 공장이 닫는다고 설명합니다.

어쩌면 당연스러운 설명이 저희에게는 당연스럽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대부분, 특히 중공업에 관련된 공장은 1년간 공장이 멈추지 않습니다.

경제적 효율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3교대로 꾸준히 돌려줘야하고,
감각상각을 계산한다면 중간에 공장을 멈추고 주말에 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드라곤 주변에서는 주일까지 가동하는 공장을 찾아볼 없었습니다.
이는 몬드라곤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일반적인 공장들에 공통된 사항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쉴때는 있어야 진정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내 중심가로 이동을 해보니,
전형적인 스페인의 마을 구조가 나타났습니다.

조그만 개울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다리를 건너서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면 정사각형 모양의 광장이 있고 뒤로 성당이 위치합니다.
광장 한쪽 편에는 시청이 있고, 광장의 다른 한편에는 집권당의 당사가 있습니다.

(스페인이 남미에 진출하면서 마을을 만들  동일한 구조가 적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있으며 상점과 주택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광장 구석에는 당연히 핀쵸를 파는 바들이 있었고, 천막을 쳐놓고 서서 핀초를 먹습니다.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 우리팀도 비를 피해 천막으로 들어가 와인을 마셨습니다.
100
주년 기념 포럼에 참석한 선발대는 벌써 4일째 이런 문화를 일상으로 즐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당 미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광장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80
고령의 마틴교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희와 인사를 있었습니다.

마을 공동체답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동양인 단체 관광객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던 같습니다.

마을의 동네 구석까지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아기자기한 시골 동네의 풍경이 정겹게만 느껴졌습니다.



+

빌바오 > 엘고이바> 산세바스티안 > 몬드라곤


저희 연수팀은 1주일간 4개의 색다른 도시를 경험할 있었습니다.


물론 지리적으로는 몬드라곤 인근의 몇개 지역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시내 중심가를 직접 걸으면서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있었던 곳은 4군데였습니다.

유럽 문화 도시로 선정된 산세바스티안은 다른 동네와 분위기가 사뭇달랐지만,
이는 바스크 지역의 도시 분위기를 대조적으로 느끼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빌바오는 도시 재생으로 신도심의 분위기가 많이 고급스럽고 세련되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도심의 분위기는 다소 올드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더욱더 올드함이 강하게 느껴졌고,
약 8만명의 직원이 일하는 대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분위기였습니다.


그냥 한국의 지방에 위치한 오래된 중소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반면, 마틴의 고향은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상당히 남아있었습니다.
한국 시골 동네의 중심가가 구심점이 없이 그냥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광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였습니다.

가장 부러운 점은 사람들이 모일 있는 광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종교와 정치, 그리고 사회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며 누구에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할  이미 민주주의는 동력을 잃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지식 창출을 위한 대화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새로움을 만들어냅니다.


마을의 자치를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 갖춰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최근에 시청앞에 광장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아직은 너무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바스크 지방의 도시들의 모습은
한국의 마을과 도시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듯합니다.

[HBM] 2016 몬드라곤 연수단 - 프롤로그


"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작고 영세할 밖에 없다는 편견을 완벽하게 깨뜨리며,
60
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면서 스페인 10 기업에 들어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몬드라곤

103개의 협동조합과 125개의 자회사 
조합원 약 28,402명에 총 고용인원 74,117
매출액 약 16조원(118.75억 Euro), 순투자 약 4600억원(3.45억 Euro)


+

취급액으로 봤을 몬드라곤(31위)보다 규모의 협동조합도 많이 존재하지만,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 중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노동자협동조합입니다.


(World Co-operative Monitor / 2013년 기준)


북부 이탈리아지역, 영국의 존루이스 파트너십과 함께 노동자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수많은 작은 협동조합들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 북이탈리아와는 다르게,
몬드라곤은 하나의 복합체를 구성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존루이스파트너십이 백화점이라는 단일 사업으로 구성된 것과는 다르게,
몬드라곤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제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지역개발, 노동자협동조합, 협동조합연합체에 주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몬드라곤에 집중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몬드라곤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 왔습니다.

1991
김성오선생님이 화이트 부부 책을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어졌고,
1997년 IMF시기 이후에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직 당시 국무회의에서
직접 몬드라곤의 현황에 대해서 언급했던 일화도 익히 알려져있습니다.

2010
이후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국내에도 관련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서적이나 논문도 작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분류

제목

출간

저자

번역

기타

국내단행본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2012

윌리엄 화이트

김성오 번역

역사비평사(1992 초판)

몬드라곤의 기적

2012

김성오

역사비평사

협동조합으로 지역개발하라

2012

그레그 맥레오드

이인우 번역

한국협동조합연구소

 국내논문

협동조합 발전의 초기 조건에 대한 연구

2014

이종현

동향과 전망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고성과 작업 시스템의 연계: 몬드라곤 그룹의 사례

2013

최창호

한국경영학회 (KBR)

이탈리아, 몬드라곤, 프랑스 노동자협동조합 발전시스템에 관한 비교분석

2013

장종익

한국협동조합연구

아리스멘디가 꿈꾼 협동조합 질서

2012

황보영조

대구사학

협동 공동체와 폴케 호이스 콜레 

2011

신명직

석당논총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로컬리티와 글로컬리티

2010

장세룡, 류지석

역사학 연구

사람중심기업,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사례

2009

조은상

한국인사관리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조직구조의 변화와 전망

2006

김란

농협조사월보

 몬드라곤에서 배운다

2004 

박성철 

 

한국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을 직접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몬드라곤은 어느새 사람들이 방문해야하는 성지 하나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김성오 선생님의 '몬드라곤의 기적' 이후에는
몬드라곤에 대한 최신 정보를 설명해주는 자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과연 많은 연수단들은 몬드라곤에서 보고 것은 무엇일까요?
연수단이 체류하는 1주일 동안에도, 저희 팀 이외에 2개의 연수단이 추가로 몬드라곤을 방문했습니다.

소문만 들었지 이렇게 많은 연수단이 방문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짧은 시간동안 1-2기관만 방문하고 기념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모습은 약간 아쉬움을 남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몬드라곤은 문화적으로 특별한 케이스이며,
바스크 지방이라는 지리적 폐쇄성과 역사적 전통,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리더십 등의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몬드라곤은 너무나 특별하기에 다른 곳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국 상황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하며 퀘벡이 가장 적당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저도 부분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분명히, 몬드라곤의 모델을 한국사회에 그대로 도입한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몬드라곤을 설명해버린다면,
우리는 몬드라곤의 경험을 배우지 못한 체 우리만의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만 합니다.

문화적 특수성이 있다고 하더도 우리가 배울점은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저희는 그것이 과연 무엇이며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적용할 있을지 고민해보고자 몬드라곤을 방문했습니다.

+

이번 연수단의 가장 특징은 다양한 인맥에 의해서 팀이 구성됐다는 점입니다.

Gsef
의장이신 송경용신부님과 HBM연구소의 송인창 소장을 중심으로 모였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팀에 합류했고, 너무나 다양한 배경과 사회적 경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몬드라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접한 사람은
송경용 신부님과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 소속 인원들 밖에 없었습니다.

특정 기관이나 단체 소속이 아니기에 잘하면 어벤져스가 수도 있지만,
잘못하게 되면 팀이 분열되면서 되어버려서 연수 중간에 분위기가 험악해 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전문가들과 외부 기관의 전문가들의 결합은
단순히 이념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몬드라곤을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종교인, 대학관계자, 비영리재단, 노동운동가, 

대기업 임원, 오너 경영인, 대기업 사회공헌 담당자...
이들이 바라본 몬드라곤은 너무나 다채로웠고,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연수의 가장 큰 매력은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HBM
연구소에서는 지난 6일간의 연수 기록을 블로그에 남고자 합니다.

이는 몬드라곤에 대한 정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욕심과
저희의 발자취를 기반으로 다음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길 바래서 입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저희의 지식이 공유될 위에 많은 지식들이 쌓이기 마련이며,
우리가 과연 몬드라곤에서 무엇을 배울 있을지 깊은 고민을 하는 원동력이 것입니다.

제가 기록한 내용에는 수많은 오류들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록한 내용이 연수단 전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은 내용도 되지 못합니다.

다만, 이것이 몬드라곤을 이해하고자 하는 누군가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부족한 글솜씨로나마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댓글로 많은 의견을 남겨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대화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2016.03_MTA MINN China 2기 - Learning Journey in Seoul

지난 주 몬드라곤 팀아카데미(MTA)의 중국프로그램 참여자들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http://mondragonteamacademy.com


몬드라곤 팀아카데미(MTA)는 핀랜드의 창업교육 프로그램인 팀아카데미(TA)의 방법론을 가지고,

몬드라곤에서의 창업교육을 위해서 몬드라곤 대학에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지금은 몬드라곤대학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고,

유럽뿐만 아니라 남미와 아시아에도 퍼져나갔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인도에서 운영중입니다.



중국의 MTA 프로그램으로는 실무자 교육 프로그램인 MINN과

코치 양성 프로그램인 TMINN이 운영중인데요, 현재 해피브릿지에서도 1명씩 교육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은 HBM연구소의 송인창 소장님의 동기생들인

MINN프로그램 2기 수강생들의 정규 모듈 중 5번째 모듈로 기획이 되었고,

한국의 사회적기업과 창업지원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공부를 해보는 시간이였습니다.


특별히 이번 방문에는 MTA의 공동창립자이자 얼마 전 아쇼카 팰로우로 선정된,

Jose Mari Luzarraga도 참여했는데요. 혁신적 경영 교육의 확산에 기여한 점이 높게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http://spain.ashoka.org/jose-mari-luzarraga-emprendedor-social-ashoka-2015


MTA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과연 코치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의문이 갈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번 방문에 대해서도 학생들 스스로 정하고 비용까지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설프고 때로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고 하네요.


결국은 이번 한국투어는 HBM의 송인창 소장님이 주도적으로 계획을 짤 수 밖에 없었구요.

방문지를 컨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방문 목적이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창업지원 - 디캠프, 마루180

소셜 밴쳐 - MYSC, Sopoong

협동조합 - 해피브릿지, iCOOP생협

지원기관 -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아쇼카 재단

추가적인 전문가 집단 - 파트너스K&K, 특허법인 신세기


+


이번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소셜벤처와 협동조합이라는 각각의 영역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는 같이 존재하지만,

활동 반경이나 구성원의 특성 등의 부분에 있어서 서로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창업교육이라는 큰 주제를 놓고 고민해봤을 때는

협동조합과 소셜벤쳐, 심지어는 청년창업 지원까지 모든 곳이 큰 과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이던 창업경진대회와 멘토링 방식만으로는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아이디어발상법이나 디자인씽킹같은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고민들에 대해서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핀랜드의 팀아카데미아(TA)의 교육방법론이나 MTA의 교육 커리큘럼은 큰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TA의 교육방법론이나 MTA의 교육모델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모든 분야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미션을 추구하는 이러한 조직들 사이에서

함께 고민을 공유하고 해결해나가는 좋은 단초가 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또 하나의 시사점은

중국에서도 곧 사회혁신에 대한 이슈가 많이 생길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사회혁신과 소셜벤쳐, 협동조합에 대한 이슈가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10년 전부터 이러한 이슈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저성장 시대의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국도 곧 그런 시대가 올 것이고 워낙 빠르게 트랜드를 받아들이는 곳일뿐만 아니라,

이미 조금씩 그러한 움직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MINN CHINA 1기 수강생들은 이미 Impact Hub를 만들어서 운영중이구요.

2기 수강생들도 MINNer라는 경영컨설팅 회사를 만들어서 교육 지원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인구 10억이 넘는 중국에서는 당연히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고,

중국에서 이러한 변화의 물결이 시작된다면 그 이후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러한 점에서는 한국은 중국에 좋은 모델이 되어줄 수가 있을 듯하네요.

(물론 아직 한국에서도 더 많은 성공사례들이 나와주어야하지만요.)


+


마지막으로 TA방법론에 대한 재발견입니다.


소문에서 듣던대로 진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별것이 없고, 심지어 어설프게 진행됩니다.

학생들이 주도해서 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요.


지난 4일간 이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통역도 제대로 구하지도 않고 동선도 제대로 짜지도 않았습니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에 대해서 반성을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Post-motolora를 통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점검해나갔습니다.


불과 4일 동안 참가자들이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뭐 그런 것으로 깨닫냐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스스로 계획을 짜서 움직여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진행되는 중간중간 뭐가 잘못됐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큰 학습이 되는 것이 보였습니다.


중간중간 적당히 개입하는 코치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코멘트만 하고 같이 따라만 다닐뿐 절대 먼저 주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이러한 방식의 교육이 한국에서는 가능할까요?


친절한 서비스와 엄마들의 극성에 길들여진 환경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교육입니다.

교육을 주도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 마인드가 모두 바뀌어야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도입했다가는

비싼 수업료 내고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다고 욕만 먹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여자들이 프로그램에 잘 적응해나간다면 훌륭한 효과가 기대됩니다.

 MINN CHINA에서도 그래서 수강생들의 일부는 중도 하차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도입할지 고민할 단계입니다.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그대로 도입할지,

약간의 변형을 통해서 충격을 감소시킬지,

기본 교육방법론만 따오고 한국식 스타일을 접목시킬지,


이번 기회를 통해서 뜻이 통한 많은 기관들과

이미 관련 방식을 활용해 성공회대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쿠피협동조합,

그리고 TA방법론에 관심이 많은 다른 분들과 함께 좋은 모델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


마지막으로 지난 4일간 함께해주신 모든 관련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997_신영복 교수님의 몬드라곤 방문기


1997년 중앙일보에 실렸던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님이 남기신 몬드라곤 방문기를 공유드립니다.

(무려 약 20년 전의 글이네요...)


한참 MCC가 만들어지고 해외 사업을 확장해나가던 시기의 이야기네요.


과연 오늘날의 몬드라곤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원문 출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392461


우리는 우리가 현재 서 있는 곳으로부터. 

그리고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면서 길을 만듭니다.



스페인의 역사는 크로마뇽인이 그린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속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니발. 시저. 나플레옹과 같은 전쟁영웅에서부터 사도 바울. 세네카. 프란시스 베이컨.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그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이슬람과 카돌릭 등 인류사가 보여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사의 출항지(出航地)이며 참혹한 내전이 휩쓸고 간 시련의 땅이기도 합니다. 세계사의 증인(證人)같은 땅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스페인이 모색하는 21세기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특히 몬드라곤 생산자 협동조합(Workkers Coorperation)에 대해서는 그것을 어떤 대안적 의미로 읽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엽서를 받고 느낄 당신의 실망이 마음에 걸립니다. 나 역시 비내리 는 빌바오 공항에서 몬드라곤을 떠나면서 Making Mondragon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그곳에 묻어두고 돌아온다는 것이 무척 서운하였습니다.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신부가 5명의 노동자와 함께 그들의 이름자를 따서 울고 (ULGOR)생산협동조합을 만든 것이 오늘의 몬드라곤의 효시입니다. 폐업한 작은 주물공장에서 석유난로를 만들기 시작한 지 40년. 지금은 무려 3만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협동조합 그룹으로 눈부신 성공을 이룩하였습니다. 

협동은 인류의 원초적 정서이고 공동체는 오랜 삶의 틀입니다. 20세기 역시 다른 세기와 마찬 가지로 그 엄청난 격동의 파고를 헤쳐오면서도 이러한 공동체적 이념이 포기되지 않은 세기였습니다. 인간적인 정서가 파편화되고 공동체적인 삶의 틀이 심하게 상처받을수록 오히려 귀소본능(歸巢本能)과 같은 그리움을 키워내기도 하였습니다. 

유럽 각국에서 광범하게 일어났던 60-70년대의 협동조합 운동이 또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협동조합 운동은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세를 잃게 됩니다. 혹은 이상주의로 말미암아. 혹은 현실의 높은 벽으로 말미암아 결국 실패하거나 변질되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MCC(Mondragon Collective Corporation)가 보여준 성공은 당연히 20세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다. 그것은 경제적 약자인 노동 자들이 자본가나 국가관리자들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정의롭고. 더 인간적인 경제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는 사례로서 이른바 대안(代案)의 맹아(萌芽)를 만들어 내는 운동적 의미로 읽혀졌 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몬드라곤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습니다. 실망의 상당부분은 어쩌면 나의 과도한 기대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초기의 많은 가치들이 포기되었다고는 하지 만 몬드라곤이 지향했던 협동의 가치에 대한 신뢰는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물론 MCC가 헤쳐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무한경쟁의 높은 파도를 모르지 않습니다. 몬드 라곤의 헤수스 이 힌또(J. E. Ginto)이사 역시 민주. 자치. 협동의 원리를 원칙적으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생산과 고용규모. 수출량 등의 통계치를 들어 MCC가 스페인 10대 그룹으로 성장한 사실을 앞세웠으며 교육과 기술투자를 바탕으로한 경쟁력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었습니다.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또다시 스페인의 몬드라곤에서 들었을 때의 착잡한 심정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쟁력이라는 요건은 자본주의의 바다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작은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한 일차적 조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엄습해오는 경쟁의 높은 파고는 가히 사활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이 아닌 경우는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중에서 가장 정곡을 찌르고 있는 답변은 ‘협동조합이 회사가 되는 경우’라는 ICA(국제협동조합연맹)의 명쾌한 답변입니다. 

협동조합과 회사의 차이는 제도면에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 수롭지 않은 차이야말로 결정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은 경쟁과 협동이라는 아득한 거리를 두고 갈라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오냐티의 ETEO(몬드라곤 경영기술대학)에 서 만난 호세 루이스(J. Luis)학장은 바로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비교적 솔직한 견해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효율성에 밀리는 인간적 관점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와 협동조합의 차이는 로봇트와 인간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21세기에는 민족이라는 혈연적 공동체나 국가와 같은 공간적 공동체 대신에 고도신뢰 집단(高度信賴集團)을 핵으로하는 어떤 공동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의 구심력이 되는 신뢰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인간주의에 대한 신뢰를 구심력으로 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경쟁력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대상화되고 인간의 삶이 파편화된 냉혹한 시장(市場)현실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각이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을 재구성하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비록 인간주의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인간관계와 신뢰집단이 밖으로는 편협한 집단이기적 집단으로 경원시되고 안으로는 신앙촌의 헌신성으로 맹목화되지 않을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별 공동체를 넘어서는 연대(連帶)에 대한 전망을 잃지 않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른 공동체를 향하여 변함없이 창문을 열어 두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경제적 약자들이 견딜 수 있는 물심양면의 힘을 모울 수 없을 것이며 무한경쟁의 세계체제속에서 20세기의 수많은 집단들이 보여준 공격 과 방어의 역사를 청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몬드라곤은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미리뫼(龍山)입니다. 몬드라곤이 있는 이곳 바스크지역은 산세와 기후는 물론이며 역사와 민족과 언어에 있어서도 스페인의 보편적 문화와는 구별되는 비스페인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하려는 이유가 납득이 갈 정도였습니다. 몬드라곤의 이러한 역사와 전통의 특수성이 오히려 대안적 의미를 낮추는 요인으로 여겨졌습니다. 

특수한 사례가 보편적 교훈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특수한 전형(典型)을 만들어내는 노력보다는 저마다의 역사와 현실을 이루고 있는 가장 보편적 정서와 가장 현실적인 삶의 틀에서부터 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 적 실천과 그 일상적 실천을 부단히 축적해간다면 전형은 사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가장 친숙한 생산. 소비. 학습. 문화의 틀에서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삶의 틀을 주어진 조건으로 인정하고 그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을 좀 더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어나가는 평범하면서도 꾸준한 노력에 서 시작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카소는 그 개인의 생애가 곧 현대회화의 역사가 될 만큼 언제나 새로운 미학의 선두에 서 있었던 행복한 미술가임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의 명화 게르니카 앞에 서면 그가 말라가의 메르세데츠가에서 키워온 지극히 서민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가가 해변의 눈부신 햇살 그리고 서민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는 메르세데츠 광장과 그 광장의 비둘기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생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이러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서민적 정서가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민적 현실을 뛰어 넘는 이상과 추상의 세계로 비약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찾아 온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가우디의 천재성에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나 가우디의 천재적인 건축물 역시 스페인의 도처에서 만나는 스페인의 보편적인 전통미학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시대의 어떠한 천재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오랜 전통과 서민적 정서로부터 그들의 천재를 길어 올리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넓게 그리고 오래 공감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안은 차별성에 열중할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보편성에 충실해야 옳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피카소가 어린 시절에 햇빛을 나누어 받았던 메르세데츠 광장에 앉아서 다시 몬드라곤을 생각합니다. 

스페인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과거의 중압속에서 몬드라곤의 이상을 개척해간 호세 마리아 신부의 이야기를 상기합니다. 우리는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 그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나아가면서 길을 만드는 실천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마저도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