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2016.04.28_몬드라곤 연수단 - Ep.16 빌바오 시내투어 & 구겐하임 미술관

1주일 간의 몬드라곤 연수는 지속적인 학습의 기간이였습니다.

하지만, 멀리 스페인까지 왔는데 공부만 하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특히나 3일 먼저 도착한 1진이 빌바오 시내를 동네 마실다니듯이 완전 마스터 한 반면,

늦게 합류한 2진에게 빌바오는 밤에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 먹으러 돌아다닌 기억 밖에 없었습니다.


멀리 여기까지 왔는데 빌바오 시내를 못본다는 것은 완전 고문이였습니다.

게다가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뭐라고 사가고 싶기에 맘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으로 여행블로거들의 글을 살펴보니

빌바오 투어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구겐하임 미술관만 보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결국 아직까지 시내 구경을 하지 못한 2진은

연수 도중 과감하게 연수단에서 이탈해 반나절 빌바오 시내 투어를 결행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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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쿠페라와 빌바오 시내 BBF를 견학한 연수팀은 점심을 먹고 난 후에

1진은 사이올란(Saiolan)을 방문하기 위해 몬드라곤으로 떠나고 2진은 빌바오에 잔류하게 됩니다.


 스페인어 한 마디 못하는 저희에게는 통역도, 여행 가이드도 없었지만,

구글지도와 블로거들의 여행후기만으로도 충분히 빌바오 시내 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빌바오 시내는 대부분의 도시처럼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네오비온강 동편에는 성당을 중심으로 구도심이 형성되어있고,

길이 좁은 유럽의 도시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오밀조밀 상점들이 몰려있습니다.

(연수팀은 주로 숙소에서 가까운 구도심의 북쪽에 있는 광장 인근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반면에 네오비온강 서편은 1990년대 부터 시작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빌바오의 도시재생 이야기 살펴보기 < 클릭


빌바오 효과라고 불리는 빌바오의 도시재생 사례는 한국에도 잘 알려졌습니다.

(그 덕분에 서울에도 랜드마크를 만들겠다고 지어진 건축물이 몇 개 있죠)


구겐하임 미술관을 정점으로해서 네오비온강 인근에 주요 건축물이 위치하게 되는데,

어느 새 빌바오 시는 세계 주요 건축가들의 경연장이 되어버립니다.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구겐하임 빌바오 (Guggenheim Bilbao)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의 주비주리(Zubizuri)

콜 바루(Coll-Barreu)의 바스크 건강관리국(Health Department) 본사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의 아롱디하 빌바오(Alhóndiga Bilbao)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빌바오 지하철  입구지붕


이 외에도 지하철 역이나, 트램, 옛 부두가 등 강변을 따라서 걷다보면 눈이 저절로 호강을 하게 됩니다.

빌바오로 건축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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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연수단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일단 강변을 따라 걸어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강변을 걷기만 했는데도 참~ 도시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으면서도 중간중간 인상적인 건물들이 눈에 자연스럽게 드러웠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명불허전인 구겐하임 미술관은

등장만으로 그 장엄한 존재감을 드러내주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듯하게 만들어진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벽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외관을 장식하는 조형물들도 눈에 띄고, 반대편에서 살베 다리가 보이는 풍경도 훌륭합니다.

밤에 한 번 더 올 기회가 있었는데 밤에 보는 구겐하임 빌바오의 모습은 또 새롭네요~ ^^


루이스 부르주아(Louis Bourgeois)의 마망(Maman)

아니쉬 카푸어(Anish Kappor)의 큰 나무와 눈(Tall Tree & The Eye)

제프 쿤스(Jeff Koons)의 튤립(Tulips)


리움 미술관에서 봤던 <마망>과 <큰 나무와 눈>을 여기서도 만나니 반갑네요~

구겐하임 빌바오의 멋진 외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멋진 사진으로 감상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전문가들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사진 < 클릭


정문에 있다고 하는 <Puppy>는 이따가 나오면서 만나기로 하고

일단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서 관람을 하기로 했습니다.


미술관에 들어가자마자 저희를 맞아준 것은 대표 전시물,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이였습니다.



미술관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함께 기획되었다는 작품답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녹이 스는 철재로 만든 작품은 크기도 엄청났지만,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온갖 다양한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8개의 설치물을 모두 돌아보는 동안에 미로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길이 좁아졌다가 넓어지고, 또한 어두어지고 밝아지는 등의 변화들이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한쪽편에 제작 후기처럼 그 과정을 설명해주는 공간이 마련되어있었고,

2층에 올라가게 되면 작품의 전체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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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내관도 굉장히 인상적이였는데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내부 구조를 찍을 수 없었지만,


직선보다는  곡선위주로 만들어진 휘어진 기둥이나 천장, 유리 엘리베이터 등

건물의 외관 만큼이나 내부 구조도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았습니다.


1층의 한 쪽편에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 전시중에 있었고,

3층에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온 세계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칸딘스키, 피카소, 후안 미로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작품들이였지만,

개인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2층에 있던 루이스 브루주아에 대한 전시였습니다.


단순히 <마망>의 작가로만 알고 있던 그녀의 전시물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괴기스러운 작품들의 연속이길래 그녀에 대해서 알고싶어져버렸습니다.




즉시 인터넷으로 그녀에 대한 글들을 검색해보니

왜 그녀가 이런 작품들을 남기게 됐는지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최선호의 아트 오디세이

GQ에 실린 루이스 부르주아 인터뷰


개인적으로는 GQ의 인터뷰가 더 인상적이였습니다.


평론을 읽을 때는 그녀의 인생이 안스럽다는 생각을 많이했는데,

생각보다 담백하게 인터뷰하는 모습이 더욱더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습니다.


글들을 읽고 그녀의 작품을 다시 보니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승화로 현실을 마주하는 그녀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유럽의 다른 미술관들과는 좀 다르게

내부에서 사진촬영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기에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녀가 던진 메세지들은 적어올 수 있었습니다.


Art is the guarantee of sanity.

Pain is the ramsom of formalism.


그녀는 조형물 이외에 상당 수의 작품들에 메세지를 남겨두기도 했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작품들 만큼이나 매우 강렬했습니다.


인터뷰에 보면 아버지가 예술가를 굉장히 천시여겼다고 하는데,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 예술에 대한 열정 등이

매 작품마다 상당부분 녹아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


구겐하임 빌바오를 나와 정문으로 향했더니 이번에는

제프 쿤스(Jeff Koons)의 퍼피(Puppy)가 저희를 맞이해주고 있었습니다.



문을 지키고 있는 듯한 퍼피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왜 제프 쿤스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였는지 세삼 느끼게 됩니다.

다소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가 확~ 밝아지는 느낌이네요.


남들에게는 이 모습이 구겐하임 빌바오의 첫 인상이겠지만,

저희 팀은 마지막 모습으로 마음에 담아둔 채 이제 본격적으로 빌바오 시내로 진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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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전에 또 남들 다간다는 곳은 꼭 가야하기에,

구겐하임 빌바오를 구경한 사람들이 쉬면서 꼭 들리는 아이스크림 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꽃모양을 이쁘게 잘 만들어주시네요~

(물론 한국에서도 이렇게 만들어주는 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친절한 한국 블로거들의 안내에 따라서,

빌바오 파인아트 미술관을 거쳐서 인근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미술관은 시간 관계상 들어가보지는 않고 그냥 스쳐지나갔고,

한적한 공원은 빌바오 사람들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남미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스페인의 타일 무늬가 세겨진 기둥이 눈에 띄네요.

세계 어딜가나 공원만큼 여유있고 한적한 곳은 없는 듯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빌바오 시내 중심가로 이동했습니다.


목적지는 선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 일행들을 위해서

빌바오에서 젤 크다는 백화점으로 이동하면서 시내를 관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미팅을 위해서 택시타고 그냥 지나치던 곳들을

여유있게 걸으면서 구경하니 감회가 굉장히 새로웠습니다.


길을 걸으며 현지인들과 호흡을 하는 것과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굉장히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세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빌바오 사람들의 모습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특정 기관의 사람들만 만나보았다면,

길가를 걷는 동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노인이 많다', '사람들이 우울하다', '다들 잘생기고 이쁘다'


바스크 사람들에 대한 우리끼리의 여러가지 평가가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길을 걸으면서 보니까 여기도 그냥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보다는 약간은 차갑고 다양성이 적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저희가 방문했던 바스크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바스크 지역 다른 도시 방문기)


대형 백화점에서 필요한 물품들에 대한 쇼핑을 마친 후

사회저경제 포럼이 열리는 KOOPERA의 시내 매장으로 이동해 다시 팀에 합류했습니다.


협동조합과 자활의 상생적 협력 모델인 KOOPERA의 시내 매장이기에

작은 공간을 상상했는데 KOOPERA의 사업적인 경쟁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KOOPERA방문 후기 보기 < 클릭


오후에 있었던 Saiolan방문은 땡땡이 쳤지만

빌바오 시내 탐방팀은 이래저래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도시보다 더 유명한 미술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도시 계획 안에서 전체적으로 너무나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인상적이였고 도시 재생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에 곧 불어닥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세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연 빌바오의 철강과 조선업계의 선두자리를 밀어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빌바보의 도시재생을 어떻게 다시 한 번 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할 듯합니다.



빌바오 도서관 벽면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다양한 말들이 써있는데요.

한국어로는 다음과 같이 써있네요.


'새로운 변화는 새로운 답을 가져오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물음을 묻기 시작하는 사람에 의해서 가능하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5 파고르(Fagor)

해피쿱투어와 함께하는 몬드라곤 연수단의 마지막 행선지는

Fagor industiral 이였습니다.



몬드라곤 인근지역을 방문하면서 신기하게 느꼈던 점은


대부분의 회사들이 넓게 퍼져있다보니 굉장히 한적한 곳에 덩그러니 위치한 경우가 많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건물들이 굉장히 세련되고 멋지게 지어졌다는 점입니다.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해 약간은 올드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Ikerlan밖에 없었는데,

오랫만에 그나마 제조업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물을 만나서 한편으로는 반가웠습니다.


+


파고르 그룹이 가지는 몬드라곤 내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이미 Ep.05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HBM] 2016.04.26_몬드라곤 연수단 - Ep.05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


몬드라곤 최초의 협동조합그룹 Ularco는 대표 브랜드 파고르의 이름을 따서 파고르 그룹이 되었고,

몬드라곤 최초의 노동자협동조합 ULGOR는 그룹의 이름을 따라서 파고르 가전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몬드라곤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파고르 가전이 2013년 파산을 맞이하게 되며 큰 화제가 됩니다.


파고르 가전(Fagor Electrodomésticos) 파산에 대한 이전 글 보기



그후로 3년이 지난 지금 파고르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고르 가전'의 주요 해외 브랜드는

알제리계 가전회사 Cevital과 독일계 가전회사 BSH Hausgeräte에 각각 인수되었으며, 

파고르 가전 본사는 2014년 7월 카탈루니아 지역의 회사 Cata가 전격 인수합니다.


그리고 파고르 그룹은 전격 해체되고 산업별 그룹으로 헤쳐모이게 됩니다.


B2B전문 주방용 가전제품 기업으로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던 Fagor Industrial은 

산업용 가전 제품 기업들이 한데 모여서 새롭게 만든 Onnera Group에 합류에 대표 협동조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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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gor industrial에서 저희를 맞아주신 Gema Mancebo는

파고르 가전 인사팀에서 13년간 근무를 하다가, 파고르 가전이 파산하면서 파고르 인더스트리얼로 재배치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원들을 재배치를 할때는 업무의 유사성과 기존 근무지와의 거리를 중요시 하는데,

파고르 가전의 경우에는 워낙 규모가 큰 사건이였고 재배치 대상만 2000명에 달했기 때문에 자신은 운이 굉장히 좋았다고 하네요.


파고르 인더스트리얼에 대한 대략적인 브리핑을 들은 후

역시 연수단원들의 질문은 파고르 가전 파산 사건에 맞춰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파고르 가전의 파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때부터 직견되었으니 파산까지 5년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공장이 가동이 안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조합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간만 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자체 해결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파산이 결정된 후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선 900명은 몬드라곤 그룹 내 개별 협동조합에 임시 재배치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900명의 사람들은 임시로 재배치될 곳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몬드라곤 본부가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본부의 역할은 거기까지였고 결국은 남겨진 자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만 했습니다.


실직된 조합원들은 '오스갈리아츠' 협동조합(인력파견업체)을 만들어서

스스로 인력의 재배치에 대한 내용을 해결해나갑니다.


몬드라곤 그룹의 공장에서 성수기에 맞춰 빈 자리를 매꾸는 일을 하기도 하고

일반 사기업이나 파고르 가전을 인수한 기업에 배치되기도 하고, 일부 인원은 명예퇴직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파고르 가전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 충격이 켰고 몬드라곤 도시 전체가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협동조합 방식의 혁신적인 시도를 하기보다는

각자 흩어져서 생존을 준비하기 바빴고, 기술자들은 별도 A/S전문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파고르 가전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누적된 배당금은 파산과 함께 모조리 날아가버렸기에,

라군아로에서 80%의 임금을 지원해주는 2년 동안 각자의 살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재배치가 된 인원의 경우에는 라군아로에서 재배치 받은 회사에 6만 유로를 지원해 주게되며,

이 중 15,000유로는 개인 계좌에 출자금으로 지급해주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비용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임시 재배치된 인원에 대한 채용 여부는 재배치된 협동조합에서 결정하게 되는데,

너무 급하게 재배치했기 때문에 일부 인원들은 직무와 거리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 채용이 안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공장 노동자가 갑자기 마케팅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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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르 가전의 파산은 몬드라곤 전체에 큰 경각심을 줬다고 합니다.


가장 역사가 깊고 규모도 컸던 파고르 가전이 파산을 하면서

그 어떤 협동조합도 충분히 파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것입니다.


그동안 파고르 가전의 경우에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화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기본 출자금 이상으로 추가 출자를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많게는 10만 유로까지 투자를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또한,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2세대 자녀들이 능력이 없어도

부모들의 인맥과 출자금을 이어받아 파고르에 입사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산 과정에서도 파고르가 설마 망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시간만 질질끌다가 일을 더 키운 점도 큰 문제였습니다.


본부 차원에서도 이미 예견된 사고였으나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사전에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경영진들의 경우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업무 능력이 생산직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재배치된 경우도 나타났습니다.


모든 주요 의사결정은 총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영진만을 탓할 수 없다는 점과

결국은 본부가 도와주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점을 크게 배웠다고 합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원리와 원칙이지만 막상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이 것대로 진행된다는 것들을 조합원 당사자들이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길거리를 헤매야만 하는 상황

오히려 큰 책임이 있는 것같은 경영진들이 오히려 현장직들보다 더 빨리 좋은 자리에 배치받는 상황

언제 어디로 재배치 될지도 모르고 한없이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

내가 넣은 출자금이지만 그것이 날아갔을 경우에 느끼는 억울함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됐을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한,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주지 않으면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해가야한다는 것


협동조합도 만능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였습니다.

천하의 몬드라곤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협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주인이 된다는 것이며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려울 때 기댈 곳이 있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요?


몬드라곤의 파고르 전자는 이러한 새로운 피난처를 찾던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이 절대적인 피난처가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협동조합은 기존 주식회사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은 나 자신이 되야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


스스로에 대한 주인의식과 자발성이 없을 때

협동조합이라는 시스템도 온전한 방어막이 되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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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몬드라곤에서의 현장연수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연수에 참여한 모든 분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삶을 사실 것입니다.


연수팀에는 협동조합 종사자도 있고, 그냥 관심이 있어서 참여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내용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몬드라곤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게 될까요?

이러한 이야기들을 After 모임에서 이야기하면서 연수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4 에로스키(Eroski) 소비자 협동조합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대부분 제조업을 떠올립니다.


최초의 협동조합 ULGOR 역시 제조업이 기반이며,

전세계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몬드라곤만큼 성공한 협동조합이 없기 때문입니다.


(http://monitor.coop)


The World Co-operative Monitor 자료를 봐도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협동조합에서는 31위의 규모이지만,

제조업 기준으로 봤을 때는 월등히 높은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몬드라곤 자체로만 놓고 봤을 때

몬드라곤의 매출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은 유통부분의 Eroski 그룹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보면 Eroski의 매출액 비중은

몬드라곤 그룹 전체의 52%(62억 유로 / 8조 2천억원)까지 상승합니다.


몬드라곤에서 매출액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고용인원 숫자에서도

Eroski의 고용인원은 38,686명으로 전체 74,117명의 52.2%에 해당합니다.

(노동자조합원의 숫자는 12,295명으로, 전체 직원의 30%를 차지합니다)


그룹 차원에서 차지하는 실질적인 비중은 매우 높지만

제조업 분야에서의 신화적인 성공으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별로 주목을 못받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소비자협동조합만 놓고봤을 때도 세계에서 15번째로 규모가 큰 성공사례입니다)



몬드라곤의 역사를 살펴봐도

초기 설립자들 역시 소비자협동조합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바스크 지방에는 이미 몇 개의 소비자 협동조합이 존재했기 때문에

몬드라곤의 초기 설립자들은 굳이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기존의 소비자협동조합 중 9개가 재정과 조직 운영 면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Caja Laboral에 찾아와 자신들의 조직을 통합해서 새로운 협동조합 복합체를 만들어달고 요청합니다.


소비자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Caja Laboral의 경영진은

이를 위해서 연구팀을 만들어 프랑스와 스위스의 성공 사례에 대한 현지 조사까지 진행합니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의 법률에서는 비조합원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금액을 납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합니다.


조합원 가입을 위한 출자금을 최소로 낮춰서

최초 방문 고객의 경우에는 계산대에서 즉시 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줬으며,

조합원 배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서 다수의 조합원을 관리하는 사무업무를 최소화시켜버립니다.


배당을 실시하지 않는 대신 물건가격을 낮추고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높임으로써,

조합원들에게 혜택을 돌려주면서 오히려 조합원들이 급증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월간 소비자 잡지를 무료로 출간하며, 여행과 숙박 상품을 싼 가격에 제공하는 등

추가적인 혜택과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의 활동은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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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생하게 된 Eroski는 거버넌스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다른 소비자협동조합들의 경우에는 소비자들만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조합원들은 이사를 선출할 때 1인 1표의 투표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Eroski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소비자 조합원과 노동자 조합원이 동시에 존재하는

혼성 조직으로 출발했으며, 이사회의 구성도 소비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가 같은 수로 선출됩니다.

(단, 이사장은 항상 소비자 조합원이 맡게 됩니다.)


이러한 거버넌스 구조는 전세계 소비자 협동조합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구조였습니다.


최근에 소비자 협동조합들 가운데 노동자들의 처우와 경영 참여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면서

다른 소비자협동조합들도 에로스키의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몬드라곤 그룹 내에 별다른 주목을 못받았던 Eroski 였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기존 공업협동조합들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급성장을 이루고 있던 Eroski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Eroski의 경우 1984년에 이미 소비자 조합원은 13만명을 넘어섰고

노동자 조합원도 1,220명이 되면서 고용 창출 면에서도 큰 협동조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


1990년대 이후 eroski의 성장은 더욱더 눈부실 정도입니다.

고용인원과 매출은 20여년간 약 20배 정도 늘어나면서 매년 20% 정도의 성장을 기록합니다.


1990년 2,600명이던 노동자는 1995년 1만명을 돌파하더니

2000년 25,000명, 2005년 34,000명, 2010년 42,000명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납니다.

(2000년대 이후 몬드라곤 내 신규 고용의 70%가 Eroski에서 발생합니다.)


매장의 형태도 하이퍼마켓, 맥시마켓, 슈퍼마켓 등으로 다양화하였으며,

의류 및 가정용품 전문 매장, 여행사무소, 헬스클럽 등의 생활 전 분야로 사업도 확장해나가면서,

2010년에는 매장 수가 2,100여개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Eroski는 1990년대부터 바스크 지역을 벗어나 스페인 전역으로 사업장을 확대해왔으며,

1999년에는 프랑스 시장에도 진출하였고 2003년과 2007년에는 유통 사기업에 대한 M&A도 단행합니다.


+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Eroski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 전체의 경기 침체와 함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2008년 Eroski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매출 감소를 기록했고,

84억 유로까지 성장했던 매출은 현재 62억 유로까지 감소해 정체기를 겪고 있습니다.


1억 2천 유로(약 160억원)까지 급작스럽게 증가했던 당기 손실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감소추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Eroski는 자구책으로 10% 노동시간은 무급연장하고, 향후 5년간 임금 동결을 결의했는데,

이럴 경우 결과적으로 보면 5% 정도 급여 삭감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여기에 Fagor 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그룹 전체가 1%의 급여를 삭감한 것도 있습니다.


그나마 조합원들은 재배치를 통해서 근무환경을 보장받지만

비조합원의 경우에는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급여차이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 닥치게 되면 비조합원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1년 이상 근무해 노동자 조합원 자격을 갖췄을 때

미리 조합원 가입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조합비 15000유로(약 2000만원)은

일반직 노동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돈은 아니기에 마냥 조합원 가입을 안한 이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사기업이라면 더욱더 어이없는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몬드라곤 역시 사업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그 한계가 존재함을 드러내는 사건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기를 다함께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왜 노동자협동조합에 기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연수단의 공식일정에 Eroski의 방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몬드라곤 시내에 큰 Eroski 복합매장이 존재해 식사하기 위해서 방문했고,

빌바오 숙소 앞에도 Eroski 슈퍼마켓이 있었기에 장보기 위해서 추가로 방문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다른 매장들을 방문해본 적이 없는 연수단원들이 보기에

Eroski의 매장은 한국의 일반 대형매장들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몽이나 치즈, 와인 등이 한국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는 정도?

연수팀원들은 Eroski 브랜드가 찍힌 초콜릿과 와인, 차 등을 선물로 사면서 매대를 싹쓸이했습니다.


한국의 이마트나 홍플러스 같은 규모의 대형 매장처럼 없는 품목이 없었기에,

친환경 제품에만 치우쳐있는 한국의 생협들과 비교했을 때 소비자 입장에서는 훨씬 더 편리했습니다.


확실히 사회운동성이 강한 한국과 비교해보면 일반 기업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Eroski의 전략에 대해서는 연수단원 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느낌이였습니다.


거버넌스 측면에서 그리고 사업 전략적인 측면에서

Eroski가 한국의 소비자협동조합에게 주는 특징은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이번 연수에서는 Eroski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기회는 없었지만,

Eroski는 다시 한 번 방문해서 자세히 뜯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례임에는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3 이켈란(Ikerlan)

몬드라곤은 250개의 조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복합체입니다

그리고 중간지원조직들은 그룹화가 진행되기 전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금융 분야의 Laboral Kuxta(1959)

사회복지 분야의 Lagun-Aro(1959)

교육 분야의 Mondragon Universitatea(1943)


그리고 이들과 함께 R&D 분야의 성장을 책임져왔던 곳이 바로 Ikerlan(1974)입니다.



이켈란은 1965년 마뉴엘 케베도를 비롯해 설립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기술전문학교에서 학교의 교과과정을 강화시키기 위해 공업기술 연구의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시작됩니다.


지속적인 프로젝트와 연구활동으로 케베도와 동료 교사 2명은

학교 교육 업무까지 면제받으면서 이 일에 전담했으며, 휴가를 내고 프랑스에 6개월간 연수도 다녀옵니다.


케베도는 자신이 번돈을 학교에 기부하면서까지 자동화 연구실 설립을 추진했고,

1974년 호세 마리아 신부는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업기술 연구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합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몬드라곤의 외부의 과학기술과 자본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해야한다고 보았고,

케베도를 연구소장으로 임명하면서 몬드라곤의 R&D를 주도할 공업기술연구협동조합이 시작됩니다.


 

  


연수단을 맞아주신 분은 마케팅담당자 Guillermo Irazoki입니다.

올해 60세로 곧 명예퇴직을 할 예정이기에 자신의 후임자를 데리고 함께 연수단을 맞이해주셨습니다.


몬드라곤대학 경영학부를 막 졸업한 23살의 젊은 후임자는

협동조합 가치에 공감해서 졸업 후 이켈란의 입사를 선택했다고 당돌하게 대답을 하네요.


앞에서 이야기해왔던 것처럼 몬드라곤에서 명예퇴직은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65세(정년)가 되기 전까지 일을 하지 않아도 연금의 80% 수준을 받을 수 있기에 일종의 특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명예 퇴직 후 수익을 걱정해야하기에, 일종의 사형선고로 여기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


Guillermo Irazoki은 차분히 이켈란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기업은 지식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고, 이켈란은 기업과 인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연구를 할때는 대학과 함께 진행하기도 하고 연구자료를 방탕으로 기업에 결과를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켈란은 설립초기부터 단순히 몬드라곤 그룹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았으며,

바스크 지역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해왔고 1982년부터는 지방정부가 이켈란 예산의 절반을 부담합니다.


나머지 예산의 약 38%는 연구 프로젝트 계약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12%는 몬드라곤 그룹의 지원조직들의 회비로 충당하는 비영리 2차 협동조합입니다.

(현재는 정부 지원 비중이 약 30% 나머지는 프로젝트 계약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234명(조합원 200명)이 근무 중이며 90개(50%는 몬드라곤 그룹사)의 고객이 존재하며

1780만 유로(한화 23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스크 지역의 다른 연구소들과 함께 IK4라는 연구 연합(research alliance)를 형성하고 있는데,

IK4 네트워크 기준으로는 1275명의 연구진이 1억 2백만유로(약 1349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4개 지역에 나눠서 운영되고 있으며, 320개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서 거의 30분 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확실히 다양한 분야에 최첨단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나,

공학도가 아닌 연수단원들에게는 너무 전문적분야라서 '아~ 열심히 연구하는구나' 정도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이 시작됐는데요.

이번에도 주식회사와의 차이를 발견하고 싶은 질문이 이어졌고, 여전히 FM에 가까운 대답들이 돌아왔습니다.


몬드라곤 그룹을 지원해주는 중간지원조직으로 시작되었지만,

역시나 몬드라곤은 몬드라곤이고 이켈란은 이켈란이라는 관점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급여 테이블의 경우에는 몬드라곤 전체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연구원이라는 고급 인력에 대한 처우가 다른 연구소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최저 임금에 대한 기준은 다른 연구소들보다 훨씬 높게 책정됐지만,

최고 임금에 대한 기준은 다른 연구소들보다 훨씬 낮게 책정됩니다.


이에 대해 우수 인재 확보 차원에서 문제가 있지 않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같이 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대답만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존재했습니다.


그동안은 스페인 자체에 박사 학위자가 많지 않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켈란 내에도 박사 학위자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만 박사들만 연구소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변화의 여지는 있었습니다.


몬드라곤 그룹 내에서도 급여의 격차가 4.5에서 6으로 확장됐던 것처럼,

시장 환경의 변화는 인재 확보 차원에서 이켈란에게 새로운 기준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기존의 원칙을 쉽게 바꾸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뀌는 환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혁신의 시작입니다.


과연 이켈란은 이러한 변화들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기존의 원칙을 잘 유지하면서도 기술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HBM] 2016.04.29_몬드라곤 연수단 - Ep.12 울마(ULMA)그룹과 인터코퍼레이션(intercooperation)

몬드라곤을 상징할 수 있는 핵심 운영 전략 중 하나는

'협동조합 간 협동'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intercooperation 입니다.


'협동조합간 협동'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부적인 단결성과 정체성이 강한 협동조합일수록

다른 협동조합과 연대라는 것이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경제적 이해관계만 맞다면 쉽게 이루어지지만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마음에 맞는 협동조합을 찾는 것도 어렵고 또 만나서 연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마음이 맞는다고 아무렇게나 연대할 수도 없기에 어떻게 연대할지 한참을 논의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60년이 넘는 역사 가운데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라는 조직을 만들어냈습니다.


103개의 협동조합들이 모여있으며 이들은 각자 알아서 서로 연대를 합니다.

공동의 규칙은 당연히 존재하며 프로젝트 별로는 각기 따른 원칙을 세워서 연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연대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은 무엇인지

오나테(Oñate) 지역을 대표하는 울마 그룹을 방문해 그 사례를 들어보았습니다.



울마(ULMA)는 2003년 몬드라곤 그룹에 뒤늦게 합류한 협동조합 그룹입니다.


하지만, 1961년 울마 그룹의 최초 협동조합인 Talleres ULMA S.C.I. 가 설립될 때부터

호세 마리아 신부와의 수 차례의 미팅을 통해서 ULGOR에서의 경험을 전수받습니다.


이후, 1986년 오나테(Oñate) 지역의 협동조합들과 함께

ONALAN이라 이름으로 뭉치게 되고 1992년부터 현재의 ULMA라는 그룹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오랜기간 동안 몬드라곤과 함께 해온 대표적인 협동조합 그룹 입니다.)


울마는 50년이 넘는 기간동안 오나테(Oñate)라는 강한 지역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룹 내의 8개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산업적으로 이어지는 분야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다.


울마의 직원 4,353명 중 2,010명이 오나테(Oñate) 지역에 근무하고 있는데,

오나테(Oñate) 지역의 주민이 11,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지역 주민 1/5이 울마에서 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가능인구의 절반 정도는 울마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중 1,800명 정도가 조합원입니다)


매출은 약 7억유로(한화 약 9000억) 정도 수준이고,

해외 매출의 비중(74%)이 점차 높아지면서 유럽 시장(53%)에 대한 의존도 역시 줄어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전략이 없었다면 몬드라곤 협동조합들이 오늘날 같이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듯 하네요)


울마그룹의 경우에는 다양한 산업분야의 협동조합들이 지역적으로 뭉쳐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으며, 내부적으로 많은 것을 서로 조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대가 진행됐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정체성과 애정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의 미션은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다음 세대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희를 맞이해주신 Javier Orbea는 울마 그룹의 Financial Director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곳 중에서 가장 프로패셔널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주셨고,

친절하게 맛있는 아메리카노와 쿠키는 물론 UNESCO 기부에 동참하자는 카드까지 선물로 준비해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스페인 커피는 쓴데, 외국인을 위한 배려한 센스가 빛나네요)


Javier Orbea의 경우에는 일반 주식회사에서 10년, 그리고 은행권에서 6년 정도 근무를 했었는데,

협동조합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서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ULMA에 합류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이 있으셔서 그런지 다른 몬드라곤 사람들과는 다르게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연수단의 접근에 가장 잘 공감해주셨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원래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걸 왜 물어보지라는 반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포인트를 잘 집어서 친절하게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센스도 발휘해주셨습니다.


+


먼저 그룹 본부와 개별 협동조합의 운영방식에 대한 부분을 설명해주셨는데요.


그룹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금융만 공동으로 관리하지 나머지 사업은 작자 알아서 합니다.

그룹 내에 해당 품목의 사업을 하는 곳이 있어도, 그룹 계열사라고 일감을 몰아주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그룹 내 계열사와 함께 일을 할지 말지는 각자 계열사들이 결정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렇게 비즈니스와 연대라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울마의 성공요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수익성이 있는 부분과 연대를 해야하는 부분은 명확히 구분해 사업을 하지만,

실제 사업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는 함께 나누는 방식을 취합니다.


부실한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의 물건을 그냥 사주는 것이 아니라

사업은 사업대로 경쟁력에 맞춰서 진행하고 손실이 난 부분에 조건 없이 보존해줍니다.


+


그렇다면 울마 그룹의 수익 배분 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단, 8개의 협동조합들은 수익이 날 경우 30%를 때서 그룹 공동 기금에 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아진 기금(Profit sharing)으로 손실이 난 협동조합에 대해서

손실 금액의 50%까지 일단 보존해줍니다.


예를 들면, 막대한 손실이 난 D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손실액의 절반을 그룹 공동 펀드로 우선 보존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손실액을 매꾸기 위해서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조합원들 스스로 임금을 삭감하고, 삭감분으로 성장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때 2차적으로 그룹차원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지원을 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공동 펀드로 모았던 기금이 남게되면,

이는 다시 개별 협동조합들에게 총 인건비에 비례해서 재배분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D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부담해야하는 손실이 20% 수준으로 줄게 됩니다.


나머지 협동조합들이 그만큼 수익을 포기하고 손실을 보존해준 것입니다.

사업적으로는 실력이 없으면 도와주지 않지만 실적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존을 해줍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것같으면서도 확실한 연대 정신이 기반에 깔려 있습니다.


+


울마 그룹 내의 연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급여연대기금(Wage Solidarity Fund)라는 것을 추가로 운영합니다.


각 협동조합은 수익의 3%를 급여연대기금으로 내야합니다.


그 이유는 그룹의 현재 급여 수준보다 낮게 받는 협동조합의 급여를 보존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면, 특정 협동조합의 급여 수준이 전체 급여 수준보다 낮을 경우에는

급여연대기금을 통해서 일정 수준 보존을 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동등하게 보존해주지는 않습니다.

실적이 좋은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107% 수준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처럼 모두가 똑같이 받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 간의 일정 정도 격차를 줄여준다는 개념이 훨씬 더 강한 것입니다.


여기에 매출의 0.08%는 '신사업개발기금'으로 내야만 합니다.


이 경우에는 손실이 있는 협동조합도 부담해야하는데 신사업을 위한 투자는

손실의 유무와는 별도로 모두가 부담해야하는 의무라는 개념이 강한 것이지요.

(확실히 몬드라곤 사람들은 사업과 연대는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울마그룹 내의 정산이 끝난 이후에는 몬드라곤 그룹 차원에서 다시 정산이 들어갑니다.


1) 몬드라곤 그룹 내의 모든 협동조합은 수익의 10%를 공동투자기금으로 내야합니다.

2) 또한, 그룹 차원의 연대기금(Solidarty Fund)으로 수익의 2%를 추가로 징수하며,

3) 마지막으로, 교육기금(Education Fund)로 수익의 2%를 추가로 징수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그룹차원에서 수익의 14%를 징수하고 난 후,


나머지 추가 수익에 대해서는 10%는 자체 교육에 투자하게 되며,

45%는 협동조합 자체로 적립하고, 나머지 45%는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해줍니다.

(배당금은 대부분 순환출자의 형태로 협동조합에 재투자되며, 시중보다 월등히 높은 이율이 보장됩니다)


사실 이 정도까지 듣고 있으면 과연 수익 중에 뭐가 남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일단 이익 공유(Profit sharing)과정에서 상당한 수익이 감소할 수 밖에 없고,

나머지 추가적으로 내야하는 기금을 다 합치면 수익의 약 20% 정도를 공동 기금으로 내야 합니다.

(물론 몬드라곤 공통 기준 이외에 자체 그룹 내 규정은 협동조합 그룹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손실이 난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3중의 안전망이 존재합니다.


이익 공유(Profit sharing)를 통해서 손실이 보존되고,

급여연대기금(Wage Solidarity Fund)을 통해서 조합원들의 급여가 보존됩니다.

마지막으로 몬드라곤 그룹차원의 연대기금(Solidarty Fund)을 통해서 위기 시 보존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존을 받은 기금들은 갖아야할 부채가 아니기에 사업적 부담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손실로 인해서 특정 협동조합이 망하게 되고 실업자가 양상되는 것은 막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구책을 가지고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도 남겨두게 해줍니다.

이는 개별 협동조합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럴 경우 도덕적 헤이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도와주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지만 비즈니스는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자구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고 회생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협동조합이라도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역사에서 증명해주었습니다.


2000명의 조합원이 근무하고 있는 파고르 가전 부분이 2013년 파산을 할 때

아무리 상징성이 큰 몬드라곤 최초의 협동조합일지라도 회생 가능성이 없자 과감히 파산을 결정합니다.

(파고르 가전의 파산에 대해서는 파고르 방문 후기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아무래도 재무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자금과 관련된 부분으로 흘렀는데요.


몬드라곤 내에서는 자금적인 부분 이외에도

중간지원기관들을 통해서 일자리와 인력에 대해서도 연대를 진행중이고, 

각종 사업적인 정보와 기술도 공유하면서 공동의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서 새로운 협동조합이 설립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한국의 재벌그룹처럼 내부적으로 연대를 하기는 하지만,

그 연대하는 기준과 방식에서는 굉장히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그룹 본부의 인원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울마 그룹은 40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며 매출이 9000억원에 달하지만,

그룹 본부 직원은 10명에 불과하며 그룹차원의 금융, 인사, 브랜드 관리 업무만 지원해줍니다.


모든 전략적 의사결정은 개별 협동조합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며,

그룹 본부에서는 그야말로 조율만 해주고 그룹 차원의 안건은 협동조합들의 대표가 모여서 의결합니다.


특정인의 이해관계와 의사결정으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한국과는 달리

몬드라곤에서는 전형적인 Bottom-up의 의사결정과 전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업은 철저히 구분하고 수익은 연대한다는 기본 철학이 기반에 깔려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경영학에서도 최근에 항상 이야기하는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인데,

현실에서는 그게 그대로 구현되는 것을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교과서적인 요소들이 실제 구현되는 몬드라곤에서 와서

우리는 과연 그게 맞냐고 계속해서 물어보고 다닌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왜 그렇게 안하는데?'라는 그들의 질문에

우리는 궁색한 변명들만 계속해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Intercooperation


하면 좋은데 우리는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그것이 몬드라곤에서는 너무나 당연시 되는 일상이었습니다.


[HBM] 2016.04.28_몬드라곤 연수단 - Ep.11 쿠페라 (Koopera)와 한국의 자활기업

바스크 지역에는 굉장히 많은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협동조합이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일원은 아니죠.


오늘은 특별히 몬드라곤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참고할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협동조합을 방문했습니다.



쿠페라는 1992년 카톨릭 기반의 국제적인 NGO인 카리타스가

몬드라곤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협동의 모델을 만들고자 설립한 2차협동조합입니다.


카리타스는 1897년 독일 카리타스의 설립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긴급구호와 국제 개발을 위한 비영리 기구로

개별적으로 활동하다가 국제적 연대체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165개국에 퍼져있습니다.


카리타스의 경우에는 한국의 협동조합 운동과도 인연이 매우 깊습니다.


1972년 강원지역 집중호우 발생하였고,

당시 피해지역의 대부분은 원주 교구 관할이였습니다.


원주 교구의 지학순 주교는 전 세계 카톨릭 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독일의 카리타스와 미네레올이 지원해준 3억 6천만원은 구호활동의 핵심 자금이 됩니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1973년)'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구호활동이 시작되었고,

원주 지역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원주 지역 시민운동의 핵심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때 합류한 맴버들이 사실상 오늘날의 한살림을 만든 주역들이 됩니다.

 

이후 1975년 지학순 주교를 초대 총장으로 인성회(仁成會)가 만들어지고,

국제 카리타스의 정회원으로 등록되었으며, 현재는 한국 카리타스 정식 법인(2010)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협동조합 운동에 역사적 사건을 함께했던 카리타스가

스페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쿠페라(Koopera)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와 환경의 혁신으로 크게 5가지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영역은

사회적 소외계층에게 취업을 알선해주는 자활이라는 부분입니다.


재활용 시장을 기반으로하는 자활기관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시면 이해하시기 쉬울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도 자활단체는 많고, 아름다운 가게처럼 재활용시장도 존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묶일 때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는

우리가 예상하던 것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에도 자활센터는 많이 존재하고, 재활용 사업도 따로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자활센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일반 사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카리타스에서 쿠페라를 만든 것은 협동조합이 가진 가능성 때문이였습니다.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을 운영할 경우 가질 수 있는 규모의 경제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협력이라는 가치를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쿠페라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소외계층입니다.

홈리스, 마약/술 중독자, 매춘부, 미혼모, 해체 가정 자녀, 가출 청소년 등


이들에게는 일자리도 필요하고 일할 수 있는 스킬도 배워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함께 일하고 협력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쿠페라에 조합원으로 남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일자리가 있지 않기에,

다른 조직에 가거나 활동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일만 잘하는 노동자를 양성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방식과 정신이 필요했고, 현재는 사업적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작은 기관들이 생겨나서

2006년 오늘날의 형태인 2차 협동조합이 만들어졌고,

2013년 에는 발렌시아에 동일한 모델이 만들어졌으며,

칠레와 루마니아에서도 관련된 프로젝트가 진행중입니다.


현재 10개의 자활센터가 지역별로 만들어져서 운영되고 있으며,

9개가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제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매장은 총 31개가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자활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숫자가 약 2400명 정도되는데,

쿠페라에 고용된 사람이 433명이니까 전체 자활 고용의 15%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5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고 있고,

매출이 1억4800만 유료(약 196억)이고 수익률은 약 2% 정도 된다고 합니다.


수치 상으로만 보면 사실 한국에 비해서는 크게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은 약 550개의 자활기관에 5만 명 정도가 현재 고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복지와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한국의 자활은 전체 규모면에서 스페인을 압도합니다.


또한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2015년 기준)의 경우에는

매출액 242억 / 직원수 406명 / 자원봉사자 4000명으로 쿠페라와 규모가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매장 숫자는 아름다운가게가 149개로 쿠페라 31개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편입니다.

설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공장 내부 시설을 구경하고 빌바오 시내에 있는 쿠페라 매장에 가보니

비즈니스적으로는 아름다운 가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가게가 주로

임대료가 낮은 주요 상권에서 살짝 벗어난 곳 작은 규모로 위치해있다면,


쿠페라는 일반 패션 브랜드와 별 차이 없이 시내 한복판 아주 넓은 공간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하고

너무나 다양한 물품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옷의 상태들도 굉장히 깨끗해서 중고 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 비결은 90% 이상의 제품들이 이미 깨끗히 세탁이 된 상태에서 수령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버려야하는 옷들을 주로 기증하는 것과는 관점이 다르기에 가능한 일 입니다)


핵심 기술에 대한 유출과 자활 근무자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작업장 내부에서 사진을 못찍게 했지만 물류 시스템도 상당히 수준이 높아보였습니다.


사회운동차원이 강한 한국의 사회적기업이나 자활단체들과는 조금은 다름이 느껴졌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는 바스크인들의 마인드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참여자수와 사업 규모만으로는 아주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재활용사업에 대한 물류 시스템이나 운영 노하우 등에서는 굉장한 전문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쿠페라(Koopera)의 방문은 연수단에게 2가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수치적으로는 한국의 자활관련 기업들이 훨씬 더 활성화되어있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보면 쿠페라 정도의 수준에 올라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자활관련 종사자가 2400명 밖에 안되는 스페인이지만,

50000명이나 되는 한국에 쿠페라 정도 수준의 자활기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장 성공한 사회적기업이라는 '아름다운가게'의 경우에는

수치상으로는 쿠페라와 비슷한 규모이지만 단위 매장의 경쟁력에서는 훨씬 부족해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름다운 가게'의 경우에는 자활기업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는 자활기업이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가질 때 가져오는 효과입니다.


한국의 자활기업들은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그자체에만 주목하지만,

쿠페라의 경우에는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사회구성원이 되는 훈련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단순 일자리 창출을 넘어서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때

일반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 가서도 사회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협동조합을 단순히 운영체제로만 본 것이 아니라 교육방식으로도 본 것입니다.

이는 협동조합에 대해서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학습의 장'으로 그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한국의 자활기업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줍니다.


자활기업이나 복지기관에서 가끔씩 터져나오는 인권의 문제 역시

협동조합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드시 해결되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들인 듯합니다.


물론 현장에 계신분들은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고, 당연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쿠페라가 보여주고 있기에 고려해볼만 합니다.

(그게 설사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겠죠.)



[HBM] 2016.04.27_몬드라곤 연수단 - Ep.10 바스크의 초코(Txoko)문화 체험과 몬드라곤에서의 노후생활

초코(Txoko)라고 들어보셨나요?


초코(Txoko)에 대해서 들어보셨다면,

아마도 당신은 미식(美食)에 굉장한 관심을 가진 분임이 틀림없습니다.


바스크 특히 그 중에서도 산세바스챤(San Sebastian)은 스페인 요리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있는 미식가들을 위한 도시입니다.


초코(Txoko)라는 바스크만의 특별한 문화적 공간은 

산세바스챤(San Sebastian)을 미식의 도시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평가를 받습니다.


근대적 형태의 초코(Txoko)는 187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역사적 기원으로 보면 바스크 지방에서 이러한 공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위의 사진은 초코(Txoko)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모두 남자들만 있구요.

두 번째, 즐겁게 요리를 합니다.

세 번째, 너무나 행복해 합니다.


+


이게 특별한 이유는 바스크 지역이 철저히 모계 중심 사회라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집안의 모든 재정과 살림살이는 모두 여자가 결정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남자들은 아내에게서 탈출해 자신들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죠.

(가부장적 성향이 강한 한국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시달림에 피곤해진 남자들은 친구들과 함께 초코(Txoko)에 모여서

함께 요리를 하고, 술먹고, 노래부르고, 때로는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초코(Txoko)는 철저히 남자들을 위한 마쵸적인 공간이지만,

사실은 집안에 발붙일 곳이 없는 남자들의 심리적 피난처와 같은 곳입니다.


초코(Txoko)는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cuadrillas)' 만이 모이는

폐쇄적인 공간이기에 정해진 사람들은 물건도 공유하며 마음껏 공간을 쓰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공간이기에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프랑코 독재 기간에는 바스크 어를 몰래 사용하면서 정치적 논의를 이어가는 용도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산세바스챤 지역에는 120여개의 초코(Txoko)가 존재합니다.

여전히 정해진 인원들의 월 회비로 운영되고 있고 대부분이 80명 내외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일부 초코(Txoko) 새로 가입하기 위한 대기자 리스트도 엄청나고 그것마저도 간헐적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합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임의 어르신들에게 허락을 받아야합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 합류하면 대가 없이 많은 도움을 주지만,

대신 조직의 구성원과 아닌 사람은 확실히 구분하고, 구성원으로 받아주는 것도 매우 까다롭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기본원칙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님을 여기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함께 모여서 요리를 즐기는 남자들이라...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이러한 공간들은 바스크 지역의 요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됩니다.


남자들은 여기에서 서로의 음식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서로 식자재를 교환하기도 하면서 점차적으로 지식을 쌓아갔던 것이죠.


전통적으로 초코(Txoko)에는 여자들은 들어올 수 없었으나,

오늘날 남아있는 초코(Txoko)들은 여자들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된다고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요리하는 것만은 오늘날에도 금지되어있다고 하네요.


 

 

 


몬드라곤 연수단은 Martin 교수 덕분에 우연히

Juanjo abarte의 초대로 몬드라곤에 위치한 초코(Txoko)를 방문해볼 수 있었습니다.


Juanjo abarte의 요리 솜씨는 상상을 초월했고,

바스크 여행 내내 먹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최고의 맛을 자랑했습니다.


바스크 특유의 전통소시지 치스토라(Chistorras)

원산지를 반드시 표기하는 게로니카산 고추(Pimiento del Guernica) 등


바스크 어딜가나 원없이 없을 수 있는 핀쵸(Pincho)뿐만 아니라,

기존 식당에서 구경해보지 못했던 바스크 전통 음식들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남자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라서 주방에는 절대 아무도 못들어오게 하시며

모든 요리를 손수만들고 손수 서빙까지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코(Txoko)를 방문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바스크 지역의 초코(Txoko) 문화를 알게 된 것과 Juanjo abarte의 퇴직 후 삶을 들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몬드라곤 시내의 광장에서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이름을 딴 현판식을 한참 진행하고 있을 때,

(관련 내용 보기 > http://happybridge.tistory.com/137)


갑자기 덩치가 산만한 아저씨가 한 분 다가오더니 

어디서 왔는지 물어본 다음 다짜고짜 언제까지 여기 머물 예정이냐고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데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우리를 대듬 자기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한참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잠시 자리를 비웠던 Martin 교수가 와서 너무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더니,

다음 방문지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그 아저씨의 집에 잠시 들렸다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방문하게 될 곳이

초코(Txoko)라는 독특한 공간인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8명이 모여서 공동 주택을 건설해 살고 있다는 Juanjo abarte는

지하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있다고 하면서 연수단을 지하에 있는 초코(Txoko)로 안내해주었습니다.


 

 

     


공동주택의 공용공간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여기는 Juanjo abarte의 개인 공간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은 대략적으로 600장 정도는 넘어보였으나,

벽면으로만은 부족했던지 책상위 쌓여있는 사진첩도 엄청 많았습니다.


온갖 각종 기념품들이 다 모여있었고,

추억의 LP판도 엄청 많이 소장하고 계셨습니다.


작년에 방문한 조선대학교 총장님도 이 집에 잠시 들렸다갔다고 하면서,

그 때 받은 태극기를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서 간식에 꽂아놓는 센스를 발휘해주셨습니다.


알고봤더니 우리 연수팀뿐만 아니라 수시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를 해주고 이렇게 멀리서 온 손님들은 특별 대접도 해주는 '상습 초대남'이였습니다.


+


 Juanjo abarte는 맛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초코(Txoko)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제대로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음식은 기본이고, 술먹고, 떠들고,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노래까지 부르는...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들 회식문화가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왜  Juanjo abarte가 우리 연수단을 그렇게 반가워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남자들이 술취한 것에 굉장히 관대한 한국 사회에서는

예사롭게 일어나는 일들이기에 초코(Txoko) 문화는 사실 한국 남성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였습니다.


하지만, 바스크의 남자들이 초코(Txoko)에서 이렇게 노는 이유가

여기 말고는 자신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은 굉장한 차이인 거죠.


자신들의 초코(Txoko) 문화에 너무나 잘 어울려

아니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즐기는 한국의 남자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울까요?


월요일 잠깐 1시간 정도 함께 이야기하고 놀더니,

수요일 저녁에 식사대접을 한다고 꼭 다시 오라고 하는 친절함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그 덕에 수요일 날 바스크 여행 중의 최고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초코(Txoko)에 숨겨둔 최고의 독주들을 계속해서 꺼내오면서

한 번 먹어볼 것을 권하더니 자신있게 원샷하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내친김에 다음에 또 오면 숙박까지 제공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혹시 자녀들이 몬드라곤에 올 일이 있으면 장기간 체류도 가능하다고 약속까지 해주시네요.


 


우리의 흥미를 끌었던 또 다른 것은 Juanjo abarte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대화의 상당부분은 공동 주택 운영에 대한 내용이였습니다.

연수단원 중에 공동 주택을 만들려고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대화가 집중되었죠.


하지만, 여기가 괜히 몬드라곤이 아니구나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공동으로 4층짜리 건물을 짓고 각자 살 집을 그냥 제비뽑기로 배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음만 비우면 충분히 가능하고 가장 깔끔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온갖 장단점과 이해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1층과 4층은 관리비와 유지비도 차이가 나고 나중에 되팔 때 가격차도 날 수 있다는 것까지 고려하게 되면...)


하지만, 이들의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원하는 것이다.'


온갖 이해관계와 손익을 따지지 말고 그냥 제비뽑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제기하지도 않았고 결과에 대해서도 모두가 군말없이 수용했다고 하네요.


물론 특수한 경우가 있을 경우에는 그런 것에 대한 고려도 한다고 하는데,

아주 큰 이슈가 아닌 이상은 그냥 왠만하면 제비뽑기로 결정한다고 하네요.

(성경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제비뽑기의 합리성이 여기서 다시 밝휘되는 듯합니다)


+


또 하나의 인사이트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이들의 태도였습니다.


라군아로와 라보랄쿠차에 대한 방문 후기에서

이미 퇴직과 노후 생활에 대한 이들의 자세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노후 보장 시스템이 잘 되어있기에 조기 퇴직을 오히려 선호하며,

퇴직 후에는 충분한 연금을 기반으로 다양하게 자신을 삶을 즐긴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퇴직을 하게 되면 당장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할지 걱정해야하는 사람이 태반이고,

충분한 재산을 쌓아둔 경우에도 일을 안하면 뭘할지 몰라서 당황하게 되는 한국과는 확실히 다른 자세입니다.


한번도 제대로 놀아본 적없이 일만 했던 한국의 개발국가 세대들의 비극이기도 한데,

문제는 이들이 놀줄 모를 뿐만 아니라 집말고는 모아둔 돈도 별로 없다는 것이 한국의 비극입니다.


반면 올해 67세인 Juanjo abarte는 Caja Laboral (현재는 Laboral Kutxa)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지금은 은퇴해서 새로운 삶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수요일날도 저녁 식사 시간을 앞으로 땡긴 이유도

식사가 끝난 이후에는 인근 고등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줘야한다고 하더군요.

(스페인은 일상적으로 저녁식사를 8시 반에 시작하지만 저희는 6시에 만났습니다)


일을 더 한다는 것은 더 이상 고려할 가치도 없는 사항이고,

어떻게 하면 보다 즐겁게 살면서 이렇게 때때로 다양한 이벤트를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노후 보장이라는 것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몬드라곤과 바스크 지역을

사회주의가 유일하게 구현된 곳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란

가난(poverty)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wealth)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Wealth)를 나눈다'는 것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Adam Smith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발상입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지만,

부를 나누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요?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은 기적의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해외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해외 원조를 해주는 국가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세계적으로는 '부(Wealth)'를 나눠주는 멋진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부(Wealth)'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렇다면 이제는 왜 '부(Wealth)'를 나눠줘야하는지, 

그리고 과연 어떻게 '부(Wealth)'를 나누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할 듯합니다.


몬드라곤과 바스크 지역의 방법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없는지 확실히 참고해볼만 동네입니다.



[HBM] 2016.04.27_몬드라곤 연수단 - Ep.09 MTA (Mondragon Team Academy)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대로 몬드라곤 대학은 바스크 지역 일대에 넓게 퍼져있습니다


대학의 HQ는 몬드라곤 시내에 위치하고 있지만,

몬드라곤의 경영대학은 다소 떨어진 Onati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멀리 떨어진 몬드라곤 경영대학을 방문한 이유는

MTA프로그램에 참여중인 코치들과 학생들을 직접만나보기 위해서입니다.




일단, MTA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부터 시작해야겠네요.


MTA는 창업과 혁신을 위한 기업가 정신 교육 기관입니다.

2007년  설립되어서 올해로 10년을 맞이하며 몬드라곤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앞서 2편의 글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몬드라곤의 성장과정에서

1980년대 이전까지는 노동인민금고의 기업국, 그리고 그 이후로는 사이올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주고, 때로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면서

장기간(2~3년)에 걸쳐서 물질적/지식적 지원을 해왔기에 오늘날 몬드라곤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시 실업률은 점차 높아져가고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1990년대에는 신선했던 사이올란의 방식도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속에서 몬드라곤이 새롭게 주목한 것은

핀란드의 Jyväskylä 대학에서 처음 시작된 Tiimi Akatemia의 창업 교육방법이었습니다.




TA(Tiimi Akatemia)방법론은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JAMK(Jyväskylä)대학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던 Johaness Partanen은

1993년 1월, 새로운 방식으로 마케팅 교육을 해보기 위해서 세계여행을 미끼로 학생들을 모집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교수가 아닌 코치라고 소개하고,

실제 회사에서 직접 요청한 마케팅 리서치 프로젝트를 학생들이 직접 수행해보도록 합니다.

(당연히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번 돈으로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학생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살아있는 마케팅을 학습하게 됩니다.

그 후로 Johaness Partanen은 이 방법을 경영뿐만 아니라 창업 교육으로 확대했으며,

현재는 전세계 14개국으로 퍼져 나가 여기에 참가했던 사람들만 해도 10,000명이 넘습니다.


지난 20여년간 TA의 방법론은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어갔으며,

2010년 핀랜드의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교육 카운셀러(Counsellor of Education)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졸업생의 91%가 6개월 안에 취업(창업 포함)을 하고,

졸업생의 37%가 6개월 안에 창업을 하며, 2년을 확장해서 보면 47%가 창업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전세계적으로 이 창업 교육 방법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겠죠.



JAMK(Jyväskylä)대학에는 매년 60명 정도가 TA(Tiimi Akatemia)에 입학을 합니다.


학생들은 3.5년 동안 8~12명씩 팀을 나눠서 커리쿨럼을 이슈하게 되고,

각 팀들은 알아서 자금을 모으고 사업을 진행하고 수익을 서로 배분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교육을 다 받고나서 창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에 다니는 내내 사업을 하고 실패하고 또 다른 사업을 하기를 반복합니다.


티미아케데이마의 목표는 팀프로너(Teampreneur)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업은 팀 단위로 진행해야하며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비즈니스를 진행하게 됩니다.


재학생들이 올리는 매출도 매년 상승하고 있어서,

2012년에는 180명의 학생들이 2백만유로(약 27억원)의 매출을 올렸네요.


1999년부터는 핀랜드 내의 다른 대학에도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200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유럽 내 다른 국가들로 그 교육방식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TA의 파트너로 활동하는 것이 바로

몬드라곤대학이 만든 MTA(Modragon Team Academy)이고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에도 진출합니다.


과연 TA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영국 진출 시 제작된 홍보 영상을 한 번 보시죠~

(한글자막은 없지만, 영어자막이 제공되고 단어가 별로 어렵지 않네요)



TA의 방법론은 기존 경영학의 교육방식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학생은 없고, 팀프러너(Teampreneur) 있다. 

교실은 없고, 24시간 개방된 사무실(Open Plan Office) 있다. 

가르침은 없고, 배움은 있다. 

선생은 없고, 팀코치가 있다. 

시뮬레이션 대신, 실제 비즈니스를 실행한다. 

학습자들을 통제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을 조직할 있도록 한다

일단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부터 많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Johaness Partanen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이론적 기반으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간디의 리더십, 피터센게의 학습조직, 노나카의 지식창조기업 등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영감들은 그가 만들어낸 학습 방법에 상당히 잘 녹아져 있습니다.




개인차원에서는 책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팀차원에서는 대화를 통해서 이러한 지식을 공유하며

팀기업차원에서는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서 지식을 내재화시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끝없이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장(field)이 형성되고,

새로운 지식은 끝없이 창조되어지면서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을 이어가게 됩니다.


한 때 유행처럼 번지며 경영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같았던

학습조직, 지식창조, 실천공동체 등의 개념들이 현실에서 적용되지 못하며 교과서에만 남아있는 동안,


핀란드의 변방에 위치한 JAMK(Jyväskylä)대학에서는

TA(Tiimi Akatemia)라는 방법론으로 개발해서 이를 훌륭하게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켓이라는 훌륭한 은유(metaphor)를 활용해

자신들의 커리큘럼을 로켓모델이라는 비주얼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다행히 디캠프와 씨닷에서 1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공유해주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코리아 리포트 No1. 팀아카데미


국내에서도 TA의 교육 방법과 관련된 관심이 점차적으로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미 성공회대에서는 TA방법론을 적용해 팀창업과 관련된 수업을 진행하고 있구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지원으로 관련 연구 보고서도 작성했습니다. 


성공회대 팀창업교육 프로젝트 내용 확인하기




이제는 다시 몬드라곤으로 돌아가 MTA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07년 전세계를 강타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에 스페인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남부 스페인지역을 중심으로 호황 중이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스페인 전체적으로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고 청년 실업률은 다시금 하늘을 찔렀습니다.


상대적으로 북부에 위치한 바스크 지역은 직접적인 타격은 적었지만,

전세계적인 불황이 닦쳤기 때문에 바스크 지역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또한 1990년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던 몬드라곤의 협동조합들도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정체기를 벗어나지 못했고 새로운 창업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몬드라곤에는 또 다시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새로운 방식들은 근본적으로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팀창업이라는 개념은 여기에 아주 걸맞는 방식이였을 뿐만 아니라,

TA에서 이야기하는 방법론과 다양한 교육 도구들은 몬드라곤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07년부터 MTA는 몬드라곤 경영학부에서 시작되었고,

2009년 드디어 첫번째 프로그램인 LEINN이  개설되어 신입생을 받게 됩니다.


LEINN프로그램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졸업하게 되면 기업가정신과 혁신에 대한 유럽 공동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 최초의 기업가정신과 혁신에 대한 학사 학위)


2013년 6월 LEINN의 첫 졸업생들이 배출되었고,

점차 캠퍼스를 늘려나가면서 현재는 스페인 내 7개 지역에서 300명이 재학중입니다.

(올해 9월에는 중국 상하이에도 새롭게 캠퍼스가 오픈한다고 합니다)


LEINN 졸업생 역시 JAMK(Jyväskylä)대학과 마찬가지로

90%라는 높은 취업률(이중 50%가 창업)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2014년 기준) 24개의 회사가 만들어져서 운영중에 있다고 합니다.


 

 

 


몬드라곤 연수팀은 LEINN프로그램에 대한 대략적인 브리핑을 들은 후에는

현재 코치로 활동하고 계신분들과의 대화, 그리고 재학생들과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코치들과의 대화는 책상이 없이 원으로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트레이닝 룸에서 진행되었고,

학생들과는 그냥 학생들이 활동하는 오피스로 찾아가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ONATI캠퍼스에는 8명의 코치가 있으며,

1학년 때부터 2명의 전담 코치가 담임처럼 학생을 관리한다고 합니다.


코치들도 하나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간의 정보공유도 하고

서로간에 다른 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 한다고 합니다.


코치들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오랜 교육경험을 가진 사람과 사회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코치가 되서 가장 어려운 점은

자신들의 기존 방식을 버리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들도 교수처럼 그냥 강의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합니다.

언제 대화에 끼어들어야할지 고민하는 것이  어렵고 서로 대화를 하게 만들고 질문을 잘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실제적으로는 학생들이 기존의 배움의 방식을 버리게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네요.


그래서 코치를 뽑을 때도 얼마나  교육방식에 공감하고, 열정이 있는지가 최우선 순위라고 합니다.

선배 팀코치들이 부족한 분야에 대해서 보완할 수 있는 팀코치를 선정해서 충원을 해나간다고 하네요.


+


몬드라곤의 경우에는 핀란드와는 다르게 1~2학년 때는 경영기초과목에 대한 수업이 진행됩니다.


물론 기존의 강의식 수업은 아니고 학생주도형 수업방식이죠.


이는 핀란드와 스페인의 기초교육 과정의 차이때문이라고도 하는데,

몬드라곤의 현실을 생각하면 경영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성적의 경우에는 실적에 따라서 나오게 되는데,

학점은 코치 평가뿐만 아니라 동료 평가도 크게 좌우하게 된다고 합니다.


목표도 설정해주지만 이걸 못지킨다고 진급이 안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실질적으로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 시하기에 매출이 성적으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1학년의 경우에는 목표 순수익이 1500유로(200만원)이고,

4학년의 경우에는 1만유로(1300만원)이기에 한국기준에서 보면 쉬운 목표는 아닙니다.


졸업을 못하는 학생이 15~20% 정도 되는데 이는 금액보다는 다른 이유가 많다고 하네요.

(대부분 중도 이탈자들은 1학년 때 적응하지 못해서 나오기에 선발과정이 까다롭다고 합니다)



 


이제 스무살이 갓넘은 1학년 학생들이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서 도대체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들어보았습니다.


이들은 현재 1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고,

비디오게임 이벤트, 생리용품이나 악세사리 판매, 지도제작, 여행상품 개발 등입니다.


보통 3~4명 단위로 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중복해서 여러개에 참여하는 학생도 있다고 합니다.


사업 아이템들을 들어보면 획기적인 것보다는 약간 평범한 것이 많은데,

아무래도 자기돈으로 처음 사업을 하다보니 아직까지는 감을 잡는 단계로 보이네요.


그래도 별것도 아닌 것을 해외에 있는 회사에 연락해서 만들어보겠다는

열정과 패기만큼은 이미 성공한 기업가들 못지 않아보여서 참으로 대견스러웠습니다.


반면에 4학년 학생들은 이미 돈을 몇 번 벌어보더니 독이 올랐는지

말하는 것부터 여유가 있고 이미 한 사람당 수십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봤습니다.

 

사업도 국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해외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고,

이미 중국에서 제대로 사업을 말아먹은 학생도 있는데 다시 한 번 도전할꺼라고 하네요.


예전에 LEINN 재학생 Jon Ander가 한국에 와서 비즈니스를 제의할 때

어린 녀석이 참으로 당돌하다고 생각했는데 Jon은 여기서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였습니다.


Jon Ander의 한국 방문기 보기


이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애들이면 뭘해도 해낼 것깥다는 것은 저만의 기대일까요?

암튼 에너지 넘치는 애들의 모습은 MTA뿐만 아니라 몬드라곤의 미래를 밝게해주네요.



+


몬드라곤 연수팀은 다음날 빌바오 시내에 위치한

LEINN 1기 졸업생들이 만든 회사 TZBZ를 방문했습니다.


(http://www.tzbz.coop)



TZBZ는 바스크 주정부가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BBF라는 건물 2층 위치해 있었습니다.

(한국의 마루180이나 스타트업캠퍼스 등과 유사한 공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바로 아래 층에는 MTA 빌바오 캠퍼스가 위치하고 있어서,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한 건물에서 서로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우리가 만난 TZBZ의 LEINN 1기 졸업생 Jon Abaitua는 MTA 코치로도 활동한다고 합니다)


 

 

 


TZBZ는  주로 전략 수립이나 상품 기획같은 비즈니스 컨설팅을 진행하는데,

TA의 교육방법론과 MTA에서 배운 다양한 지식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1기 졸업생 12명이 함께 시작했는데, 지금은 9명이 남아 조합원으로 활동중이고,

4명의 계약직을 추가로 고용해서 총 13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2105년 매출은 186,000유로(약 2.5억 정도)였으니까,

1인당 14,307유료(약 1900만원)정도의 돈을 벌었다고 봐야하네요.


한국과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1인당 급여를 월 100만원 정도 가져갔다고 본다면 사실 많은 돈을 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평균 나이 25살의 친구들이 3년째 망하지 않고 150여개의 프로젝트를 해왔다는 점에서

지금의 현재 모습보다는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


MTA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TA방법론을 활용해

2010년에는 실무진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MINN도 개설합니다.


MINN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에로스키의 사내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는데,

MINN의 1기 졸업생들이 DOT라는 컨설팅 회사를 창업한 것을 시작으로 벌써 3개나 회사가 설립됩니다.

(http://www.feeldot.com)


MINN 1기 졸업생이자 DOT의 설립자인 Inigo Blanco 역시

이미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해서 비즈니스 미팅도 하고 워크숍도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Inigo Blanco의 한국방문기


DOT의 사업 분야 역시 TZBZ와 크게 차이가 없는데요.


이는 현재 스페인에서는 사회 혁신이나 창업과 관련된 흐름이 초창기이기에

TA의 방법론과 D.school의 다양한 도구들에 대한 정보와 관련 인력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친구들이 대규모 자본을 투자할 수 없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직접 생산보다는 아이디어 제공이나 컨설팅이 더 안전하다고 접근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어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너무나 젊기에 현재 모습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앞으로 무엇을 해나갈지 매우 궁금해지는 군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MTA는 현재 중국에도 진출해있습니다.


MINN은 2014년에 처음 시작해서 벌써 3기를 모집해서 진행중에 있구요.

LEINN의 경우에는 올해 9월에 1기를 오픈할 예정이라서 한참 학생을 모집중에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MINN 2기 재학생들이 Learning Journey로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의 소셜 영역과 창업관련 생태계를 한번에 쭉~~ 훌터보고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MINN China 2기의 한국방문기


+


이미 한국을 두차례나 방문한 MTA의 공동 설립자이자 아쇼카 팰로우로 선정된

Jose Mari Luzarraga는 한국에도 MTA를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LEINN의 경우에는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대학교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현재 관심을 보이고 있는 대학교들이 몇 곳이 있지만 다들 풀어야만 하는 숙제들이 산재해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졸업후 몬드라곤 대학의 MBA 학위가 수여되는 MINN의 경우에는

교육부의 통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 차원에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미 Intercoop Academy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MINN프로그램과는 다소 차이가 존재하지만,

TA방법론을 활용한 교육의 효과성은 이를 통해 이미 충분히 검증이 된 듯합니다.


 Intercom Academy 아직 모듈2까지 밖에 진행되지 않았기에

교육이 모두 마무리가 될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


암튼, 저희 연수단은 MTA를 통해서 새로운 창업교육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인프라와 자금 등 하드웨어 중심의 지원보다는

기업가 정신을 배양시키고 학습에 중점을 두는 소프트웨어적인 접근


최근 한국의 창업지원정책과 창업교육방식과는 굉장히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창업 아이디어와 자금 지원, 그리고 인프라 제공이면 창업이 된다는

단순 기계적 접근이 아니라 창업에 대한 기초를 장기간에 걸쳐 쌓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창업교육 컨텐츠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

MTA와 같은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다양한 접근들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해봅니다.


[HBM] 2016.04.27_몬드라곤 연수단 - Ep.08 몬드라곤대학교 (Mondragon Unibersitatea)



몬드라곤 연수 3일차는 하루 종일을 몬드라곤 대학에서 보냈습니다.


몬드라곤 대학에 무슨 볼 것이 그리 많은가 물어보실 수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MTA프로그램을 체험하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데 사용했습니다.


 MTA에 대한 내용은 할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별도 포스팅에서 정리하겠구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몬드라곤 지식 영역의 핵심인 몬드라곤 대학에 대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몬드라곤 대학의 건물들은 각 단과대의 특징을 반영해서 그런지 참으로 개성이 넘칩니다)


+


한국에서는 대학이라고 하면 넓은 캠퍼스에 큰 건물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하실 것입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공립대뿐만 아니라 사립대학도 대부분 그렇게 모여있지요.


하지만, 몬드라곤 대학은 4개의 단과대가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될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바스크 지역 내 9개 지역으로 떨어져서 캠퍼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몬드라곤의 실용주의적인 특성과도 연결이 됩니다.


'필요하면 만들고, 만들면 알아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필요하면 연대한다.'


몬드라곤 대학의 발전과정도 전형적인 이러한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먼저 몬드라곤대학의 전신은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설립한 '기술전문학교'입니다.


언변도 뛰어나지 못하고 보수적인 마을 주민들로부터 빨갱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호세 마리아 신부는

노동청년조직과 교구민 가족 조직을 되살리기 위해서 의료소 설립과 스포츠 리그를 만드는데 초기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후 학부모연합회를 조직해 현지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고 다양한 문화활동과 운동경기로 돈을 모아 학교를 설립합니다.

이때 몬드라곤 성인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600명이 후원을 약속했지만 지방정부는 참여를 거부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소수의 젊은이들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교육기회가 부족했습니다.


경제상황에 관계없이 누구나 교육을 받고

그 지식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전해져야한다는 목적으로 학교는 설립됩니다.


20명으로 구성된 1개 반으로 시작한 '기술전문학교'는

이후 몬드라곤 시장을 포함한 이사회를 구성하면서 지역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데 성공합니다.


1943년 설립된 이 학교는 오늘날 몬드라곤이 만들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학교의 1회 졸업생 5명이 1956년 몬드라곤 최초의 협동조합 울고(ULGOR)를 설립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울고가 막상 설립되고 운영을 하다보니

실질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은 있었지만 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1960년 경영대학(Business Faculty)이 두번째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학생들이 중간에 포기하는 문제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에 학생들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학생협동조합 알레콥(ALECOP)이 설립됩니다.

1966년 설립된 알레콥(ALECOP)은 오전반과 오후반을 나눠서 4시간씩 2교대로 근무를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학업을 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구성했으며 운영진과 학생 조합원, 협력업체가 거버넌스를 구성합니다.




이후 알레콥은 지속적으로 교육과 관련된 서비스와 장비를 개발해왔으며,

현재는 20개국 200여개의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50년째 운영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멕시코,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대학에 알레쿱의 모델을 전파해 현재 운영중입니다)


+


이후 1972년에는 국제적 교류를 위한 GOIER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현재로는 100개 이상의 해외 대학과 학생 교류를 진행(전교생의 13%) 중에 있습니다.


1976년에는 인문학부(Humanities and education sciences)가 설립되었고,

1997년에는 단과대학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몬드라곤 대학을 만들게 됩니다.

(중간에 이켈란, 사이올란 같은 주요 기관들이 몬드라곤 대학에서 만들어진 후 분화되어 나갑니다)


그리고 2011년 산세바스티안지역에 요리학부(Gastronomic sciences)가 설립되면서

오늘날의 4개 단과대학 체제가 완성되게 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 싶이 몬드라곤 대학은 실용적인 이유에서 설립되었고,

현재도 실용적인 학풍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있으며,

교육 방법도 혁신적이고 실용적이여서 기존 기업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 전문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학사(3,451명)이외에도 석/박사(774명)와 전문가 과정(5,600명)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사와 석사 교육과정 역시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학생들이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50% 이상의 연구비용이 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연구 내용 역시 실제 활용가능한 내용을 주로 다루며,

박사 과정 역시 기업에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무슨 폴리텍대학도 아니고

종합대학이 이런 연구를 하냐는 비판도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논문 인용지수를 보면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스크 지역을 대표하는 2개의 대학들(UPV-EHU / DEUSTO)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Universidad Carlos III de Madrid와 비교를 하고 있는데요.


학생의 규모가 10배정도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당연히 연구원과 보고서의 숫자는 적지만,

논문 인용지수와 외부 연구 수입면에서는 굉장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용적인 연구를 많이하면서도 논문이 상당히 많이 인용되고 있다는 이야기죠)


2014년 학교 소개 자료에는 논문 인용지수 등은 표기하지도 않았는데,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는지 2015년 자료에는 떡하기 자랑스럽게 들어갔네요.


실용적인 연구가 오히려 더 많은 학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인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같아서 제가 다 뿌듯합니다.


암튼 몬드라곤 대학(MU)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은 연수단은

이제 본격적으로 MTA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 경영대학이 있는 오나티로 이동했습니다.



[HBM] 2016.04.26_몬드라곤 연수단 - Ep.07 LKS(구 노동인민금고 기업국)와 사이올란(Saiolan)


1991년 설립된 LKS (Lan kide sustaketa)는 국내에는 약간 생소한 기관입니다.


'란 키테 슈스타케타'라는 이름부터가 약간 생소한데요. 

바스크어를 우리식으로 해석해보면 '노동, 조합원, 개발'의 약자라고 볼 수 있겠네요.


Lan = work 

kide = friend and member

sustaketa = promotion or development


하지만, '노동인민금고의 기업국'이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분들이 몬드라곤에 대한 책이나 강연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노동인민금고(Caja Laboral)가 처음 설립된 1959년부터 자금을 담당하는 은행국과 함께

오늘날의 몬드라곤이라는 거대한 복합체를 만드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


Caja Laboral 내의 기업국은 과거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들을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서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예비창업자들이 은행을 방문하면 제조업진흥부에서는 그들 가운데 대표역할을 하는 좋은 매니저를 선출하고,

가능성있는 상품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 이들과 계약을 체결하는데, 상품 아이디어가 없을 경우에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예비창업자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하는 '대부(padrino)'가 붙게되고 사무실과 매니저에 대한 보수가 지원됩니다.

대부는 창업과정 전반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함께 검토를 하며, 기업국 내 다양한 부서에서는 기술적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매니저에 대한 보수는 통상적으로 18~24개월까지 지급되며, 지원형태는 이자납부가 연기된 대출의 형식을 취합니다.

이 기간동안 매니저는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하며, 기업국은 이 내용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실시합니다.


상품에 대한 정보, 기업에 대한 정보, 회사 전체의 경제적 가능성에 대한 정보로 구성된 3권을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며,

최종보고서가 완성되면 caja Laboral 내 은행국으로 넘어가서 사업 진행에 대한 심사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절차를 무사히 마친 경우에는 대부분 최종 지원이 거절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최종 지원 결정을 얻은 회사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창립 자금을 모으게 됩니다.

(전체 자본의 20%는 출자금, 정부 지원금으로 20%, 나머지 금액은 노동인민금고의 대출로 충당)


초기 창업 이후 안정적인 회사 운영을 위해서 초기 창업 비용 대부분은 원칙적으로 7년 이후에 상황이 시작되며,

창업 이후 2년 동안은 대출에 대한 이자납부는 물론 자본화된 초기 비용의 감가상각도 하지 않고, 3~4년간은 시중보다 낮은 이자율을 적용해주었습니다.


< 그림출처 : 티스토리 블로거 - 아침에 일어나 일할 곳을 정한다 (2012)>


+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국은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1980년대 전체적인 불황이 시작되면서 기업국은 어려움에 빠진 협동조합들의 경영에 개입해 도움을 주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필요에 따라서 산발적으로 개입이 진행되었으나,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1983년에는 위험단계를 3단계로 구분해 우선순위와 대응 방안을 제도화시키게 됩니다.


기업국은 각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계약을 통해서 개입 절차를 진행하였으며,

계약 내용에서는 사업체 운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기업 관리자들과 이사진에게 있고, 회생 절차 역시 그들이 책임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대상 기업의 경영진에게는 '무죄추정 원칙'이 적용되어

기존 경영진이 추진하려는 기업 회생에 대한 노력을 존중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하지만 기존 경영진들의 문제가 명백히 들어날 경우에는 경영진 교체가 일어나게 되며,

총체적 부실로 인해서 기업의 회생이 불가능할 경우 폐쇄조치를 단행하고 조합원들의 재배치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업국의 위기에 대한 대응과 방어는 상당수 협동조합들의 재생의 원동력이 되어주었으며,

다양한 지원정책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caja Laboral은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은행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지만, 재정과 기업 관리 기능을 하나의 조직에서 동시에 맞는 부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기업국의 분리 운영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도 더 유리하기 때문에 기업국의 분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됩니다.


처음 설립될 때부터 기업국은 노동인민금고 내에서도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왔으며,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GCM)이 출범하게 되면서 중앙서비스를 제공할 조직이 필요한 시점이였습니다.


이에 LKS는 협동조합 그룹평의회의 이사회 및 경영진을 보좌하고 그룹 경영진과 작업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1986년 말 노동인민금고 근처의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간 후, 1991년 공식적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노동인민금고 내에 있을 때는 비용의 60%를 각종 프로젝트 비용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노동인민금고의 지원을 받았으나, 독립 이후에는 GCM관련 업무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받게 됩니다.


2014년 현재 LKS는 724명이 근무 중이며

매출 5100만 유로(약 677억 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LKS는 현재 몬드라곤의 4개 영역(area)에서 산업 영역에 속해있으며,

Engineering and services 부문(division)에서 전문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노동인민금고에서 분리되면서 예전처럼 원스톱으로 신규 사업을 지원해주는 역할은 사라지게 됩니다.

조직 체계에서도 지식 영역이 아닌 산업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죠.


주로 경영컨설팅과 기술컨설팅, 법률 상담, 건축 엔지니러링, 재무 컨설팅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략기획이나 행정서비스, 제조 경영기법 등에 대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1970년대까지의 기업국의 역할은 사라지고 1980년대 이후의 역할만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바스크지역에만 국한되어서 컨설팅을 진행해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외부로 지속적으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몬드라곤의 사회혁신 모델을 전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몬드라곤 복합체 내의 프로젝트의 비중은 30% 정도 된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매출 규모에 비해서 인원수가 매우 많다는 점입니다.

(엑센츄어 코리아가 400여명의 직원으로 720억의 매출(2006)을 올리는 것에 비하면 인원이 2배 정도됩니다)


이는 1인당 부가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들이 컨설팅을 하는 대상은 대기업들이 아닌 소규모 협동조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평균 연봉도 약 40000유로(약 5311만원) 정도로 

맥킨지나 베인&컴퍼니 같은 평균 억대 연봉을 받는 컨설팅 회사와는 접근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몬드라곤의 성장 역사를 감안한다면,

이들의 주요 역할은 컨설팅을 통해서 이익을 많이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 기업들에게 도움을 주고 장기간에 걸쳐서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직원들이 필요하게 되고

일인당 평균 급여 수준은 더욱더 낮아지는 추이를 보이게 됩니다.

(한국에서 주로 행해지는 컨설팅과는 목적 자체가 많이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접근이 점차 필요해지면서,

신규 창업을 지원해주는 역할은 사이올란(Saiolan)이라는 새로운 기관에 역할이 넘어가게 됩니다.




사이올란이 설립된 것은 1985년으로 1986년 기업국이 분리되어 건물을 옮겨가기 전입니다.


당시는 스페인 전반적으로 경기가 어려웠고 바스크 지역 대학졸업생 실업률이 60%에 달했으며,

청년들도 초기 몬드라곤 내의 활발했던 혁신적인 기업가 활동보다는 안정적 직장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몬드라곤 내의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고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들이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한다는 목적으로

위험을 수반하면서도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실습 위주의 교육을 시작합니다.


'saiolan' = experience work

('일을 통한 실험'이라는 뜻의 바스크 언어)




몬드라곤 대학 내에 설치된 사이올란 센터에서는

대학졸업생과 이미 사회 경험이 있는 기업가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합니다.


입학 후 일정기간 동안 사업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를 구체화해서 사업체를 만들게 되는데,

모든 과정은 팀을 기반으로 한 협업을 통해서 진행되며 모든 학생은 커다란 작업실을 공유하게 됩니다.


각자 아이디어에 대한 상호 개방을 기본으로 하며 철저히 외부 기관들과 협력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특히 경쟁과 협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학습하며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학습도 진행합니다.


학생들에 대한 선생들의 관찰과 지도는 이루어지지만,

모든 사업에 대한 지적재산권은 새로 만들어지는 기업에 귀속되고 책임도 스스로 지게 됩니다.


교육 내용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 교육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양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교육과정은 3단계(아이디어찾기 - 사업성 검토 - 실습)으로 진행되며,

제품에 대한 프로토 타입 제작은 물론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진행됩니다.



사이올란의 신규 사업 개발을 위한 논리적 프레임워크를 보시는 분들 중에는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프레임워크를 쓰고 있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최근 창업분야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디자인씽킹의 프레임워크와 비교하면

확실히 고전적 스타일의 프레임워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몬드라곤 대학 내의 또 다른 창업 프로그램인 MTA에 코치로 참여하는

Inigo Blanko 역시 사이올란은 너무 올드패션한 스타일을 고집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은 인정받아야 할 듯합니다.

(물론 지금 사용하고 있는 프레임워크가 그 당시 개발된 것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이올란에서 기본적으로 삼고 있는 원칙들은

MTA의 기본 원칙과 상당부분이 유사합니다.


'Learning by doing', 'sharing & team work' 등은

MTA가 설립되기 전부터 몬드라곤에서 기본으로 삼아온 원칙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암튼 사이올란은 1990년대 수많은 협동조합이 설립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가장 큰 성공요인은 더 이상 Caja Laboral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기관과 협력했다는 점입니다.


몬드라곤 대학뿐만 아니라 바스크 주 정부 기관, 이켈란 같은 연구소,

몬드라곤 내 다양한 협동조합 그룹들과 연계를 맺어 실용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자금도 Caja Laboral은 물론이고 다른 기관들도 참여할 수 있는 펀드를 조성하게 되고,

오히려 협동조합들이 사이올란 센터에 역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학생들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1985~1999년까지 사이올란을 통해 만들어지 사업체는 48개로,

매년 3~4개 정도의 사업체가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5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신사업 개발 프로젝트가 Caja Laboral을 벗어나면서 더 많은 기관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연구소와 학교에서 체계화 시켜줌으로써 종합적인 지식 시스템으로 만들어냅니다.


사이올란은 이렇게 다양한 기관들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모여진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회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중요할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규모와 비중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기술이 너무 빨리 변화하고 개별 협동조합들이 자체적인 활동도 많이 하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몬드라곤 대학에서 내의 창업 교육에 대한 관심이

경영대학 내에 있는 MTA로 넘어간 것도 영향이 있을 듯합니다.

(사이올란은 공업대학 내에, MTA는 경영대학 내에 있는 창업교육 프로그램입니다.)


MTA에 대한 내용은 다음 포스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